세계회고 명문이라는 미국 하버드대가 371년 역사상 첫 여성 총장을 임명했다는 소식이 지구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취임 기자회견장에서 "나는 하버드대 '여성 총장'이 아니라 하버드대 총장'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드루 갈핀 파우스트 총장(59)의 임명은 여성 권익 향상의 상징처럼 보여졌다.
하지만 파우스트 총장 임명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성이기 때문에 임명한 게 아니라 최적 후보를 찾다 보니 여성이 적임자로 부상했다"는 총장임명위원회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세계 최고 지성의 전당으로 여겨지는 하버드대지만 이곳에도 여러가지 복잡한 정치적 문제가 있게 마련이다.
파우스트 총장의 임명은 이런 여러 정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전임 총장의 '가벼운 입'이 여성 총장 탄생에 한몫
파우스트 총장 이전에 하버드대 총장을 맡았던 사람은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었다.
그는 불과 28세에 정규 교수로 임용될 만큼 수재였지만 입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2004년에 "1970년대 서울엔 미성년 창녀 수가 100만명에 달했다"는 말을 해 파문을 일으킨 게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 네티즌들이 이를 집중 비난하자 하버드대는 총장 비서실 명의로 사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학교 운영에서도 독단적 행정으로 말썽을 많이 일으켰다.
단과대학 예산 운영권을 제한하는 등 중앙집권적 정책을 펴다가 일선 교수들의 반발을 샀다.
특히 작년 비공개 학술회의에서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선천적인 능력이 뒤떨어져 과학이나 공학 분야의 진출이 적다며 여성 차별적 발언을 했다.
여성계의 항의가 잇따랐고 그동안 불만이 누적된 교수들이 불신임 투표를 하겠다고 나서자 서머스는 결국 사임했다.
서머스 전 총장의 여성 비하 발언 후 하버드 내에서는 여성 총장을 뽑아야 한다는 여론이 자연스럽게 확산됐다.
대학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고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여성 임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된 것이다.
◆335년 만의 비 하버드 출신 총장
파우스트 총장은 335년 만에 배출된 비(非) 하버드대 출신 총장이다.
하버드대는 전통적으로 하버드 출신이 총장을 맡아왔고,특히 문과 분야에서 총장이 수십년간 배출되면서 이공계나 예술대학 등 소외된 그룹에서 적지않은 불만을 터뜨리는 등 내부 갈등도 많았다는 전언이다.
또 교과과정 개편을 둘러싸고 전임 서머스 총장과 단과대 학장 간 갈등도 발생했었다.
따라서 하버드 출신이 기용될 경우 총장이 어느 쪽 출신이냐에 따라 내부 갈등이 더 심화될 수도 있었다는 분석이다.
결국 하버드 내 어느 그룹과도 인연이 없는 외부 출신이 특정 세력의 영향에서 벗어나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정책을 펴며 조용한 개혁을 통해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작용했다는 것이다.
본인은 달가워하지 않지만 세계 언론은 그를 '사상 첫 하버드대 여성 총장'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취임부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만큼 앞으로도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세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학내 갈등 해소,교과과정 개편,캠퍼스 확장 같은 산적한 현안을 잘 해결할 경우 그는 지성의 전당을 빛낸 지도자로 더욱 찬란한 영예를 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