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보도하는 사람들은 참 흥미롭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다시피 이미 알려진 사실들이 있고,또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2002년 2월 기자회견에서)

배배 뒤틀린 럼즈펠드의 이 말은 당시 미국 언론에서 이라크 관련 추측 보도를 하는 것에 대해 미 국방부의 견해를 밝힌 것이다.

그는 이후에도 2003년 초 발발한 이라크전과 관련해 알 듯 모를 듯한 수식어를 남발해 그 해 말 영국의 '쉬운 영어 운동(Plain English Campaign)' 본부로부터 '올해의 말실수 상(foot in mouth)'을 받았다.

"동성 연애자의 결혼은 남자와 여자 사이의 결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I think that gay marriage is something that should be between a man and a woman)."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이 표현은 2003년 말 미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선출된 영화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동성 연애자의 결혼에 대한 질문을 받고 한 말이다.

그는 이 말로 그 해 '말실수 상' 후보자로 럼즈펠드와 경합을 벌였다.

2005년에는 영국의 집권 노동당이 '엉터리 영어'를 쓴다고 비난받았다.

당시 총선을 앞두고 노동당에서 심혈을 기울여 고안한 '영국 후퇴 없는 전진(Britain forward not back)'이란 캐치프레이즈가 "동사가 빠진 것은 물론 어법에도 맞지 않는다"며 영어순화운동 단체들로부터 집중타를 맞은 것.'쉬운 영어 운동' 본부는 "'Britain forwards not backwards'로 써야 어법에 맞다"며 "개혁을 말하기 이전에 영어 공부부터 해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우리 말글을 둘러싼 환경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말 우리말운동 시민단체인 한글문화연대는 '올해의 우리말 해침꾼'으로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인 앙드레 김을 선정했다.

시도 때도 없이 외국어와 우리말을 마구 뒤섞어 쓰는 그의 '판타스틱하고 엘레강스한~' 식의 말투가 국민들 언어 생활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게 선정 이유였다.

"행정서비스 기준을 외부에 공표하고 고객이 직접 행정 서비스를 평가·선택·불만 제기 등의 '고객 주권'을 합법적으로 행사함으로써,관리와 통제 지향적 행정서비스 전달 체계의 구조와 틀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왔습니다."

한 정부 부처에서 준비하고 있는 행정서비스 우수 사례집의 발간사 초안 일부이다.

무슨 말인지 대충 감은 잡겠는데 뜻이 명쾌하게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문장이다.

물론 몇 차례 수정을 거치면서 좀 더 표현이 자연스러워지겠지만 우리 주위에서는 여전히 이같이 난해하고 뒤틀린 글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남영신 국어문화운동본부 회장은 영국의 '쉬운 영어 운동'을 국내에 소개하고 그 이념을 우리 실정에 맞게 전파하는 데 앞장서 온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그에 따르면 영국에서 1979년 시작된 '쉬운 영어 운동'은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 쓰이는 어렵고 복잡한 영어를 버리고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영어를 써야 한다는 데서 출발했다.

따라서 이들은 '문장을 평이하게 쓴다'는 것을 덕목으로 삼는데,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수동태 문장과 명사형 문장(동사를 명사로 바꿔서 사용하는 문장),문어체 문장 등을 거부한다고 한다.

우리말과 글을 쓰는 데도 이 같은 과제는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말은 본래 수동태형 문장이 별로 없어 무의식적으로 이를 남발하면 글이 매우 어색해진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향후 정국의 험로가 예상된다'라고 하면 명사 남용으로 인해 표현도 딱딱할 뿐더러 의미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앞으로 정국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등 문맥에 따라 여러 형태로 쉽게 풀어 쓸 수 있을 것이다.

그 요체는 명사 사용을 자제하고 동사와 부사를 많이 쓰는 것이다.

'지원했다'라고 하면 될 것을 '지원을 실시했다'라고 하는 식의 문어투 표현도 마찬가지다.

'쉬운 우리말 쓰기'를 위해선 여기에다 무분별한 외래어 남용을 경계하는 일이 추가된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