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 졸보기] 16. 표준어 다시보기 : '경우' 와 '경위'
'경우가 밝다' 맞는 말 인가?


'그이는 경우가 참 바르다'라는 말을 흔히 쓴다.

이때의 '경우'는 그동안 '경위'를 바른 말로 해왔다.

'경위(涇渭)'란 '사리의 옳고 그름이나 이러하고 저러함에 대한 분별'을 뜻하는 말이다.

중국 징수이(涇水) 강의 물은 항상 흐리고 웨이수이(渭水) 강의 물은 맑아 뚜렷이 구별된다는 데서 온 말이다.

'경위가 밝다' '경위가 없다' '경위를 따지다'와 같이 쓰인다.

그런데 『표준 국어대사전』에서 올림말 '경우(境遇)'에 이 풀이를 올려놨다.

그래서 '경우가 밝다'라는 말도 가능하게 됐다.

본래 '경우(境遇)'는 '놓여 있는 조건이나 놓이게 된 형편,사정'이란 뜻으로 '만일의 경우''경우에 따라'처럼 쓰이는 말이다.

이처럼 경위와 경우는 전혀 다른 말이다.

따라서 그 쓰임새도 구별해 써야 할 말이고 구별해 써 왔던 것이다.

『표준 국어대사전』에서 '경우'의 풀이에 '경위'의 뜻을 함께 올린 것은 아마도 어원적으로는 비록 잘못 쓰는 말이지만 사람들의 입에 많이 굳어졌다고 판단해 이를 수용한 듯하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보면 지금까지 '경우'와 '경위'를 구별해 사용해온 사람들에겐 당혹스러운 일이다.

'조개껍질'도 같은 선상에서 들여다 볼 수 있다.

껍질과 껍데기는 본래 용도가 서로 다른 말이다.

(생글생글 82호 본란 참조) 따라서 그 쓰임새도 구별돼 있었는데 사전에서 '조개껍질'을 허용하는 순간 껍질과 껍데기는 경계선이 모호해지게 됐다.

말의 세분화는 언어의 풍부함(어휘)이란 측면에서 긍정적인 현상이다.

더구나 말을 과학적,합리적으로 써야 한다는 점에서 개념의 분화에 따라 말도 그에 맞춰 정교하게 파생돼 나가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역으로 세분화해 있던 개념을, 그리고 그에 따라 구별해 써오던 말들을 뭉뚱그려 그 쓰임새를 뒤섞이게 해놓으면 이는 우리말의 어휘력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게 아닐까.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