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바탕은 나무랄 데 없이 좋으나 아깝게도 흠이 있음을 가리키는 말은?" '옥의 티.'

"몹시 밉거나 싫어 눈에 거슬리는 사람을 비유해서 말할 때 쓰는 것은?" '눈의 가시.'

"무엇을 얻거나 성취하기가 몹시 어려움을 이르는 말은?" '하늘에 별 따기.'

최근 TV를 통해 '우리말 겨루기' 따위의 프로그램들이 자주 방영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방송에서도 우리말과 글을 소재로 한 정규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런데 만일 퀴즈 프로그램에서 위와 같은 질문과 답이 나왔다면 어찌 됐을까? 유감스럽게도 모두 탈락했을 것이다.

틀린 답으로 처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답은 사실은 99%는 맞힌 것이다.

답 자체는 알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그러면 나머지 1%는 무엇일까? 그것은 조사 '에'와 '의'가 가져오는 작지만 큰 차이에서 비롯된다.

우선 정답부터 보면 '옥에 티' '눈엣가시' '하늘의 별 따기'이다.

이 같은 조사의 쓰임에 따라 말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엄격하고 과학적인 잣대로 말이 형성된 게 아니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관용적으로 형태가 굳어진 말은 그 나름대로 인정해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에 사전에서는 관용구로 올리고 있다.

그러다가 관용구가 보편성까지 갖추면 드디어 단어로 분류돼 정식으로 표제어가 된다.

단어가 된 대표적인 말에 '귀엣말(=귓속말),눈엣가시,웃음엣소리(=웃음엣말),웃음엣짓' 따위가 있다.

'눈엣가시'는 한자어로는 안중정(眼中釘)이라고도 하는데,이는 '눈에 못이 들어왔다'는 뜻으로 '눈엣가시'보다도 더 강렬한 표현이다.

"웃음엣소리로 한 말이니 마음에 두지 말게"처럼 쓰이는 '웃음엣소리'는 말 그대로 '웃느라고 하는 소리'다.

마찬가지로 '웃느라고 하는 짓'은 '웃음엣짓'이라고 한다.

이들은 모두 한 단어이므로 띄어 쓰지 않는다.

이에 비해 '옥에 티'나 '만에 하나''열에 아홉''개밥에 도토리' 같은 말은 아직 구의 형태로 쓰이는 관용어이다.

'옥에 티'는 '옥에(도) 티가 있다'라는 문장이 줄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극단의 경우를 가정하여 가리키는 말'인 '만에 하나'도 '만 가지 가운데에 하나'라는 통사 구조를 갖는 말로 설명된다.

'열에 아홉'은 '열 개 중에 아홉 개는'이라는 말에서,'개밥에 도토리'는 '개밥에 도토리가 있다'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본다.

이들은 모두 처소격 조사 '-에'로 연결돼 있다.

관형격 조사 '-의'를 쓰지 않는다.

원칙적으로는 '-에'에는 서술어가 뒤따라야 하고,명사와 명사가 결합하는 구성에서는 '-의'를 써야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모두 '-에'로 쓰이는 까닭은 문장의 형태가 줄어든 것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가령 '옥에 티'의 경우를 보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나 좋은 물건이라 하여도 자세히 보면 작은 흠이 있다'는 관용적 의미로 굳어져서 쓸 때에는 '옥에 티'로 쓰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말이 '옥에도 티가 있다'라는 관용적 표현에서 서술어 '있다'가 떨어져 나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의'로 연결되는 말은 문장으로 풀어지지 않고 명사구로 단단히 연결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것으로 단어화한 말로는 '별의별''반의반' 등이 있다.

따라서 '별에별''반에반' 또는 이를 띄어 '별에 별''반에 반'이라 하는 것은 틀린 말이다.

여기에도 구(句 )의 형태로 쓰이는 게 있다.

'하늘의 별 따기'가 대표적이다.

물론 이 역시 '하늘에 떠있는 별을 따다'란 문장이 준 말로 본다면 '하늘에 별 따기'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하늘의 별'이 하나의 명사구로 단단히 굳어진 말로 본다.

'발등의 불을 끄다'도 마찬가지다.

'눈앞에 닥친 어려움을 처리하여 해결하다'란 뜻으로 쓰이는 이 말 역시 '발등의 불'이 명사구로 자리잡은 말이다.

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지다'와 같이 통사 구조가 달라지면 '발등에…'로 변하기도 한다.

'그림의 떡(畵中之餠)' '새 발의 피(鳥足之血)' '천만의 말씀'이 모두 같은 범주의 말들이다.

이들을 '그림에 떡'이라거나 '새 발에 피''천만에 말씀'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