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경제신문 1월26일자 A39면
지난 22일 새 지폐 발행은 여러 가지 화제를 뿌리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1만원짜리 뒷면을 장식한 과학 내용이다.
우선 조선왕조 초에 만들어진 돌에 새긴 천문도가 배경을 이루고,그 앞에 혼천의(渾天儀)가 부각돼 있다.
그 옆에는 보현산 천문대의 망원경도 들어있다.
모두 천문 관계지만,전통과 현대를 아우른 과학심포니를 연주하는 격이다.
하기는 옛 1만원 짜리에도 물시계를 넣었던 것을 생각하면,1만원권은 '과학 지폐'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 정신이 한국 과학기술의 발달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기 등장하는 세 가지 전통과학 유물은 모두 1985년 국보(國寶)로 지정됐다.
국보 228호 229호 그리고 230호 셋으로 과학 유물로서 '국보'라는 영예로운 자리를 얻은 것이다.
조선 초의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地圖)가 228호,물시계 '자격루'(自擊漏)가 229호,그리고 혼천의가 달린 추시계 '혼천시계'(渾天時計)가 230호였다.
지금은 308호까지 국보 목록이 늘어났지만 그 가운데 진정으로 과학유물로서 이만한 대접을 받기는 이것이 최초였다.
이들 세 점의 과학 국보 가운데 두 점이 새로 1만원권에 들어갔고,1979년 이래 거기 들어있던 물시계 '자격루'는 이제 거의 30년 만에 퇴역하는 셈이다.
1만원권을 장식한 국보 과학문화재 셋을 보면서 그 배경을 이룬 과학자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반성하게 된다.
이들 세 과학 유산을 만든 과학자로는 각각 유방택(柳方澤) 장영실(蔣英實) 송이영(宋以穎)을 들 수 있다.
이제 이들 세 과학 문화재는 1만원권 덕택에 한껏 유명해졌지만 그 주인공 과학자들은 잘 알려져 있지 못하다.
하기는 물시계를 만든 장영실은 지금 오히려 너무 유명해져 있다 할 지경이다.
일제 시기,특히 해방 이후 조금씩 과장되면서 그는 최고의 이름을 얻게 되었을 뿐 그 전까지는 장영실 역시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다.
실록에 나오는 기록으로는 그는 동래의 관노 출신이었고 자격루와 옥루 등을 만들었지만 말년에는 임금의 수레를 잘못 만들었다가 처벌됐다.
지금 우리들에게는 그렇게도 유명한 장영실이지만 그가 언제 어디서 태어나고 언제 죽었는지 조차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다.
유방택(1320∼1402)에 대해서는 작년에야 겨우 약간 연구도 되고 알려지게도 됐다.
1395년 천문도를 만든 인물들의 이름은 그 천문도에 이미 새겨져 있는데 천문도에 대한 설명의 글(跋文)을 쓴 사람은 당대의 대학자 권근(權近)이지만 그 천문도를 만든 대표적 천문학자는 유방택이었다.
하지만 고려 말의 천문학자였던 그는 분명히 이성계와는 다른 길을 갔고 그 때문에 새 왕조가 시작되자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다.
다만 몇 년 뒤 그의 전공을 살려 조선왕조의 개창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이 천문도를 위해 일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번에 주목받게 된 1만원권의 혼천의는 1669년 송이영이 만든 '혼천시계'의 한 부분이다.
그런데 막상 그 주인공 송이영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 것도 알려져 있지 않다.
실록과 승정원일기 등 옛 사료에 그의 이름이 몇 차례 등장하지만 1660년(현종1년)부터 1682년(숙종8년) 사이에 천문학 교수를 지내고 몇 가지 하위직 관직을 거쳤다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따름이다.
역시 언제 어디서 낳고 언제 죽었는지 알 길이 없다.
과학기술이 자꾸 중요해지는 오늘날 전통사회에서 천대받던 과학기술 유산이 이만큼이나마 대우를 받게 된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 과학 유산에만 주목하고 그것들을 만들어 낸 과학자와 기술자를 주목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전통과학은 미래 한국의 과학기술 발전에 아무 역할을 할 수 없을지 모른다.
언젠가 과학 유물만이 아니라 그것을 만든 과학자들의 초상도 지폐에 등장하는 날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유방택 장영실 송이영과 그 밖의 많은 전통 과학기술자들에 대해 더 알아내려는 우리의 노력이 절실하다는 것을 새 1만원권은 일깨워준다.
1만원권 신권 그림 '천상열차분야지도'
우리 과학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세계 각국의 지폐 도안은 그 나라의 역사·문화·철학적 유산을 엿볼 수 있는 거울과도 같다.
국민들이 매일 사용하는 지폐의 그림을 통해 조국에 대한 자긍심을 키우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다.
세계의 지폐 중 80%가량이 인물을 넣었다고 한다.
예컨대 미국은 존경받는 역대 대통령 초상화를 넣었고,중국은 55개 소수민족이 민속의상을 입고 있는 그림을 지폐에 담아 다양성 속의 국민통합을 도모하고 있다.
정치인 일변도이던 지폐 그림이 근래 들어선 문화·예술 인물들과 과학자들로 많이 바뀌고 있다.
지폐에 들어간 과학자는 이스라엘의 아인슈타인,영국의 아이작 뉴턴을 비롯 유로화 출범 이전 각국이 별도 화폐를 쓸 때 프랑스의 퀴리부부,이탈리아의 갈릴레오 갈릴레이,폴란드의 코페르니쿠스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도 새로 발행된 1만원권 뒷면에 과학문화 유산들을 담아 국민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그동안 외면당해 온 전통과학을 새롭게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를 테면 1만원 지폐 뒷면 배경 그림으로 들어간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천문도가 있었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게 사실이다.
과학사 분야의 원로학자인 박성래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새 지폐가 우리 조상들의 과학정신을 새삼 일깨운 것을 크게 반기면서도,한편으론 역사 속 과학자들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반성한다.
과학이 천대받던 시절 과학자들은 엄청난 성과를 이루고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
장영실 정도만 근래 유명해졌을 뿐 유방택,송이영 같은 인물은 1만원 신권을 통해 겨우 이름을 기억하게 된 수준이다.
새 지폐를 통해서라도 전통과학 유산과 이를 만들어낸 과학·기술자에 주목해 조상들의 과학정신을 현대에 되살리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박 교수는 강조한다.
여기에서 생각해 볼 점은 뿌리깊은 유교의 병폐로 사농공상이란 서열에 따라 과학·기술을 상업 못지않게 천대했던 역사가 지금도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되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수한 고교생들은 의대·한의대를 다 채우고 나서야 공대로 눈을 돌린다.
또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을 비롯 무수한 과학유산을 갖고 있으면서 스스로 서양과학에 치중해 우리 전통과학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는 과학의 사대주의라고도 할 수 있다.
매일 1만원 새 지폐를 보며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이 달라지길 기대해 본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
지난 22일 새 지폐 발행은 여러 가지 화제를 뿌리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1만원짜리 뒷면을 장식한 과학 내용이다.
우선 조선왕조 초에 만들어진 돌에 새긴 천문도가 배경을 이루고,그 앞에 혼천의(渾天儀)가 부각돼 있다.
그 옆에는 보현산 천문대의 망원경도 들어있다.
모두 천문 관계지만,전통과 현대를 아우른 과학심포니를 연주하는 격이다.
하기는 옛 1만원 짜리에도 물시계를 넣었던 것을 생각하면,1만원권은 '과학 지폐'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 정신이 한국 과학기술의 발달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기 등장하는 세 가지 전통과학 유물은 모두 1985년 국보(國寶)로 지정됐다.
국보 228호 229호 그리고 230호 셋으로 과학 유물로서 '국보'라는 영예로운 자리를 얻은 것이다.
조선 초의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地圖)가 228호,물시계 '자격루'(自擊漏)가 229호,그리고 혼천의가 달린 추시계 '혼천시계'(渾天時計)가 230호였다.
지금은 308호까지 국보 목록이 늘어났지만 그 가운데 진정으로 과학유물로서 이만한 대접을 받기는 이것이 최초였다.
이들 세 점의 과학 국보 가운데 두 점이 새로 1만원권에 들어갔고,1979년 이래 거기 들어있던 물시계 '자격루'는 이제 거의 30년 만에 퇴역하는 셈이다.
1만원권을 장식한 국보 과학문화재 셋을 보면서 그 배경을 이룬 과학자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반성하게 된다.
이들 세 과학 유산을 만든 과학자로는 각각 유방택(柳方澤) 장영실(蔣英實) 송이영(宋以穎)을 들 수 있다.
이제 이들 세 과학 문화재는 1만원권 덕택에 한껏 유명해졌지만 그 주인공 과학자들은 잘 알려져 있지 못하다.
하기는 물시계를 만든 장영실은 지금 오히려 너무 유명해져 있다 할 지경이다.
일제 시기,특히 해방 이후 조금씩 과장되면서 그는 최고의 이름을 얻게 되었을 뿐 그 전까지는 장영실 역시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다.
실록에 나오는 기록으로는 그는 동래의 관노 출신이었고 자격루와 옥루 등을 만들었지만 말년에는 임금의 수레를 잘못 만들었다가 처벌됐다.
지금 우리들에게는 그렇게도 유명한 장영실이지만 그가 언제 어디서 태어나고 언제 죽었는지 조차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다.
유방택(1320∼1402)에 대해서는 작년에야 겨우 약간 연구도 되고 알려지게도 됐다.
1395년 천문도를 만든 인물들의 이름은 그 천문도에 이미 새겨져 있는데 천문도에 대한 설명의 글(跋文)을 쓴 사람은 당대의 대학자 권근(權近)이지만 그 천문도를 만든 대표적 천문학자는 유방택이었다.
하지만 고려 말의 천문학자였던 그는 분명히 이성계와는 다른 길을 갔고 그 때문에 새 왕조가 시작되자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다.
다만 몇 년 뒤 그의 전공을 살려 조선왕조의 개창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이 천문도를 위해 일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번에 주목받게 된 1만원권의 혼천의는 1669년 송이영이 만든 '혼천시계'의 한 부분이다.
그런데 막상 그 주인공 송이영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 것도 알려져 있지 않다.
실록과 승정원일기 등 옛 사료에 그의 이름이 몇 차례 등장하지만 1660년(현종1년)부터 1682년(숙종8년) 사이에 천문학 교수를 지내고 몇 가지 하위직 관직을 거쳤다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따름이다.
역시 언제 어디서 낳고 언제 죽었는지 알 길이 없다.
과학기술이 자꾸 중요해지는 오늘날 전통사회에서 천대받던 과학기술 유산이 이만큼이나마 대우를 받게 된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 과학 유산에만 주목하고 그것들을 만들어 낸 과학자와 기술자를 주목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전통과학은 미래 한국의 과학기술 발전에 아무 역할을 할 수 없을지 모른다.
언젠가 과학 유물만이 아니라 그것을 만든 과학자들의 초상도 지폐에 등장하는 날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유방택 장영실 송이영과 그 밖의 많은 전통 과학기술자들에 대해 더 알아내려는 우리의 노력이 절실하다는 것을 새 1만원권은 일깨워준다.
1만원권 신권 그림 '천상열차분야지도'
우리 과학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세계 각국의 지폐 도안은 그 나라의 역사·문화·철학적 유산을 엿볼 수 있는 거울과도 같다.
국민들이 매일 사용하는 지폐의 그림을 통해 조국에 대한 자긍심을 키우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다.
세계의 지폐 중 80%가량이 인물을 넣었다고 한다.
예컨대 미국은 존경받는 역대 대통령 초상화를 넣었고,중국은 55개 소수민족이 민속의상을 입고 있는 그림을 지폐에 담아 다양성 속의 국민통합을 도모하고 있다.
정치인 일변도이던 지폐 그림이 근래 들어선 문화·예술 인물들과 과학자들로 많이 바뀌고 있다.
지폐에 들어간 과학자는 이스라엘의 아인슈타인,영국의 아이작 뉴턴을 비롯 유로화 출범 이전 각국이 별도 화폐를 쓸 때 프랑스의 퀴리부부,이탈리아의 갈릴레오 갈릴레이,폴란드의 코페르니쿠스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도 새로 발행된 1만원권 뒷면에 과학문화 유산들을 담아 국민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그동안 외면당해 온 전통과학을 새롭게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를 테면 1만원 지폐 뒷면 배경 그림으로 들어간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천문도가 있었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게 사실이다.
과학사 분야의 원로학자인 박성래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새 지폐가 우리 조상들의 과학정신을 새삼 일깨운 것을 크게 반기면서도,한편으론 역사 속 과학자들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반성한다.
과학이 천대받던 시절 과학자들은 엄청난 성과를 이루고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
장영실 정도만 근래 유명해졌을 뿐 유방택,송이영 같은 인물은 1만원 신권을 통해 겨우 이름을 기억하게 된 수준이다.
새 지폐를 통해서라도 전통과학 유산과 이를 만들어낸 과학·기술자에 주목해 조상들의 과학정신을 현대에 되살리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박 교수는 강조한다.
여기에서 생각해 볼 점은 뿌리깊은 유교의 병폐로 사농공상이란 서열에 따라 과학·기술을 상업 못지않게 천대했던 역사가 지금도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되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수한 고교생들은 의대·한의대를 다 채우고 나서야 공대로 눈을 돌린다.
또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을 비롯 무수한 과학유산을 갖고 있으면서 스스로 서양과학에 치중해 우리 전통과학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는 과학의 사대주의라고도 할 수 있다.
매일 1만원 새 지폐를 보며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이 달라지길 기대해 본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