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 졸보기] 15, 껍질과 껍데기 : 껍질은 깰 수 없다
'조개 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불가에 마주 앉아 밤새 속삭이네/저 멀리 달그림자 시원한 파도소리/여름밤은 깊어만 가고 잠은 오지 않네….'

1970년대 말 대학가에서 많이 불렸던 윤형주 작사·작곡의 '라라라'(일명 '조개 껍질 묶어')의 노랫말이다.

3절까지 이어지는 이 노래는 특히 농활(농촌 봉사활동)이나 MT 같은 데서는 당시 유행하던 포크댄스와 함께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그런데 따라 부르기 쉽고 감미로운 노랫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이 노랫말에는 어법적으로는 아쉬운 데가 한 곳 있다.

바로 '조개 껍질'이다.

조개에도 껍질이 있나? 노래는 무심코 부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어색하다.

사과 껍질,귤 껍질,바나나 껍질은 자연스러운데 조개 껍질은 낯선 것이다.

껍질의 사전적 정의는 '딱딱하지 않은 물체의 겉을 싸고 있는,단단하지 않으나 질긴 물질의 켜'이다.

이 풀이의 핵심은 '단단하지 않음'에 있다.

양파 껍질,수박 껍질,나무 껍질,손바닥 껍질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에 비해 비슷한 말로 '껍데기'가 있다.

껍데기는 '달걀이나 조개 따위의 겉을 싸고 있는 단단한 물질'이다.

그러니 조개나 굴,호두 따위의 겉은 모두 껍데기인 것이다.

달걀도 껍데기이다.

껍데기는 또 '알맹이를 빼내고 겉에 남은 물건'이란 뜻도 갖고 있다.

그래서 '이불의 껍데기를 갈다''베개 껍데기를 벗기다'란 말을 쓴다.

어차피 노랫말은 이미 만들어진 것이니 돌이킬 수는 없다.

더구나 이를 어법에 맞지 않는다고 '조개 껍데기 묶어…'라고 할 사람도 없다.

그러니 노랫말이야 박자를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물론 아예 모르고 만들었을 수도 있지만) '껍질'을 썼을 것이라고 좋게 해석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러나 일반적인 글쓰기에서 비유적으로 쓴다고 무심코 '껍질을 깨는 아픔을 딛고…'라는 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

껍질은 벗는 것이고 껍데기라야 깰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