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제]나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의 느낌과 생각을 과연 이해할 수 있는가?

아래 제시문들을 비교 분석하여 어떤 어려움들이 있는지 설명하고,그러한 어려움이 극복될 수 있는지 사회현실의 예를 들어 논하시오.(1800자 안팎)

(가) 장자가 혜자와 함께 호수(濠水)의 징검돌 근처에서 노닐고 있었다.

장자가 말했다.

"피라미가 한가롭게 헤엄치고 있소. 이게 물고기의 즐거움이오." 혜자가 말했다.

"당신이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가 즐겁다는 것을 안다는 말이오?" 장자가 말했다.

"당신은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가 즐겁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는 말이오?" 혜자가 말했다.

"나는 당신이 아니니까 물론 당신을 알지 못하오. 당신은 물고기가 아니니까 물고기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말이오." 장자가 말했다.

"자,처음으로 돌아가 봅시다.

당신은 '당신이 어떻게 물고기가 즐겁다는 것을 안다는 말이오?'라고 했지만,그것은 이미 내가 안다는 것을 알고서 그렇게 물은 것이오. 나도 호수(濠水)가에서 물고기가 즐겁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오." (『장자(莊子)』 '추수(秋水)편')


(나) 우리는 박쥐들이 주로 음파 반향 탐지를 통해,즉 미묘하게 변조시킨 초음파를 보내서 대상으로부터 반사되어 오는 것을 탐지함으로써 외부세계를 지각한다고 알고 있다.

박쥐의 두뇌는 송출된 파동을 그 반향과 상관시키도록 설계돼 있다.

그렇게 얻은 정보를 가지고 박쥐는 거리,크기,모양,운동,표면 조직들을 우리가 시각을 가지고 하는 것에 비견될 만큼 정밀하게 분간해낼 수 있다.

그러나 박쥐의 음파 반향 탐지는 분명히 지각의 한 형태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가진 그 어떤 감각과도 비슷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이 우리들 인간이 경험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것과도 주관적 느낌의 측면에서 유사하리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바로 이러한 점이 박쥐의 입장에서 느낀다는 것이 어떠한지를 알기 어렵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중략)

우리 상상의 기본적 재료는 우리 자신의 경험이기에 이러한 상상은 제한돼 있다.

내 팔에 날개가 달려 있어서 저녁과 새벽에 날아다니며 입으로는 벌레를 잡아먹고,시력은 형편없이 나쁘지만 초음파 신호를 통해 주위 환경을 지각하고,또 낮에는 다락방에 거꾸로 매달려 지낸다고 상상한들 그것은 박쥐의 느낌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이런 상상을 한다면 (이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상상인데),이는 단지 내가 한 마리의 박쥐처럼 행동한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를 알려줄 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아니다.

내가 알고 싶은 바는 박쥐가 박쥐의 입장에서 느끼는 것이 어떠할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갖고 있는 정신적 자원들은 제한되어 있고 그 자원들만으로는 이러한 상상을 하기 어렵다.

나는 현재의 내 경험에 무엇을 더 보태거나 빼면서 상상하거나 또는 더하고 빼고 고치기를 여러 번 반복해 보아도 박쥐의 느낌을 알 수 없다.

(토마스 네이글,『박쥐의 입장에서 느낀다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다) 점순네 수탉(은 대강이가 크고 똑 오소리같이 실팍하게 생긴 놈)이 덩저리 적은 우리 수탉을 함부로 해내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해내는 것이 아니라 푸드득,하고 면두를 쪼고 물러섰다가 좀 사이를 두고 또 푸드득,하고 모가지를 쪼았다, 이렇게 멋을 부려가며 여지없이 닦아놓는다.

(중략)

이번에도 점순이가 쌈을 붙여 놨을 것이다.

바짝바짝 내 기를 올리느라고 그랬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고놈의 계집애가 요새로 들어서서 왜 나를 못 먹겠다고 고렇게 아르릉거리는지 모른다.

나흘 전 감자 쪼간만 하더라도 나는 저에게 조금도 잘못한 것은 없다.

계집애가 나물을 캐러 가면 갔지 남 울타리 엮는데 쌩이질을 하는 것은 다 뭐냐. 그것도 발소리를 죽여가지고 등 뒤로 살며시 와서,

"얘! 너 혼자만 일하니?"

하고 긴치 않은 수작을 하는 것이다.

(중략)

잔소리를 두루 늘어놓다가 남이 들을까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그 속에서 깔깔대인다.

별로 우스울 것도 없는데 날씨가 풀리더니 이놈의 계집애가 미쳤나 하고 의심하였다.

게다가 조금 뒤에는 즈 집께를 할금할금 돌아다보더니 행주치마의 속으로 꼈던 바른손을 뽑아서 나의 턱밑으로 불쑥 내미는 것이다.

언제 구웠는지 아직도 더운 김이 홱 끼치는 굵은 감자 세 개가 손에 뿌듯이 쥐였다.

"느 집인 이거 없지."

하고 생색 있는 큰소리를 하고는 제가 준 것을 남이 알면은 큰일 날 테니 여기서 얼른 먹어버리란다.

그리고 또 하는 소리가,

"너 봄 감자가 맛있단다."

"난 감자 안 먹는다,니나 먹어라."

나는 고개도 돌리려지 않고 일하던 손으로 그 감자를 도로 어깨 너머로 쑥 밀어버렸다.

그랬더니 그래도 가는 기색이 없고 뿐만 아니라 쌔근쌔근 하고 심상치 않게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이건 또 뭐야,싶어서 그때에야 비로소 돌아다보니 나는 참으로 놀랬다.

우리가 이 동리에 들어온 것은 근 삼 년째 되어 오지만 여지껏 가무잡잡한 점순이의 얼굴이 이렇게까지 홍당무처럼 새빨개진 법이 없었다.

게다 눈에 독을 올리고 한참 나를 요렇게 쏘아보더니 나중에는 눈물까지 어리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바구니를 다시 집어 들더니 이를 꼭 악물고는 엎더질 듯 자빠질 듯 논둑으로 힝하게 달아나는 것이다.

(김유정,『동백꽃』)


(라) 우리는 보통 다른 존재의 행동(언어적 행동까지 포함해서)을 관찰함으로써,그 존재가 의식을 가지고 있고 생각을 하는 존재라는-즉 또 다른 마음을 가진 존재라는-판정을 내린다.

우리는 신체의 상해와 신음 소리에서 고통을 추론하고,미소와 웃음에서 기쁨을 추론하며,날아오는 눈덩이를 피하는 행동에서 지각이 있음을 추론한다.

그리고 환경을 복합적이고 적절하게 이용하는 것을 보고 욕구와 의도와 믿음이 있음을 추론한다.

또한 우리는 위에서 언급한 행동들과 언어 발화로부터 그 존재의 의식적 지능을 추론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추론들이 어떻게 정당화되는가"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면,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특정한 유형의 행동으로부터 특정한 유형의 심리 상태를 추론한다는 것은,A라는 유형의 행동과 B라는 유형의 심리상태 사이에 일반적인 연결관계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런 심리/행동의 일반화는 "천둥소리가 들린다면,근처 어딘가에서 번개가 친 것이다"와 같은 경험적 일반화와 동일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아마도 그런 일반화는 현상들 사이의 규칙적 연결관계에 대한 과거 경험을 통해 정당화될 것이다.

(중략)

그러나 심리/행동을 일반화하는 경우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연결관계의 한쪽,즉 행동밖에는 없다.

그렇다면 그 일반화가 다른 존재들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다는 우리의 믿음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만약 어떤 존재가 일정한 심리 상태에 있다고 한다면,그 존재의 심리상태는 오직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 직접적으로 관찰될 수 있다.

우리는 그의 심리상태를 관찰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일반화에 필요한 경험적 증거를 모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런 심리/행동의 일반화를 믿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므로 다른 존재의 행동을 보고 그가 어떤 심리상태에 있다고 추론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나는 나 자신을 제외한 어떠한 다른 존재에 대해서도 그 존재가 어떤 심리 상태에 있다는 믿음을 정당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

(폴 처칠랜드,『물질과 의식』)


[ 연세대 2007학년도 정시 논술문제 해설 ]

공통주제 주고 사회현실과 연결 … 통합논술의 기본형

연세대의 2007년 정시 논술은 2006년 정시 논술과 비슷한 틀을 유지하고 있어.2006년에는 제시문의 공통된 주제를 찾으라고 한 데 반해,이번에는 공통 주제를 제시한 점이 다르기는 하지. 아마 공통된 주제로부터 이탈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함으로써 수험생으로 하여금 일단 동일선상에서 출발케 한 후,그 외의 부분에서 수험생들의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

하지만 사회문화 현상에 적용하라는 2006년의 요구가 사회현실의 예를 들어 논하라는 요구로 토씨만 바뀐 채 동일한 방향성이 유지되고 있지? 이는 인간과 세계,현실에 대해 이성적으로 독자적으로 사고하게 한다는 논술의 가장 근본적인 취지를 구체적으로 반영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러한 취지는 2008년부터 시작되는 이른바 통합형 논술에서도 어김없이 관철될 수밖에 없어. 가장 근본적인 원칙이니까.

이는 '통합형 논술'이라는 유형상의 변화에 지나치게 민감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기도 해. 교과서와 고전을 읽고 이것들을 종합적으로 연관시켜 다양한 사회문화 현상에 대해 사고해보도록 해.

자,문제를 보자. 답안이 갖추어야 할 첫 번째 요소는 (1)'다른 존재의 느낌과 생각을 이해하는 데 생기는 어려움'이 되겠지? 제시문들에 대한 비교분석을 통해서 말이야. 다음으로는 (2)'그러한 어려움이 극복될 수 있는지'에 대한 답변이 필요해. 사회현실의 예를 들면서 답해야만 하고. 그럼 먼저 제시문들을 이해해 보기로 할까?

제시문을 분석할 때는 논제에 제시된 것과 관련시켜 생각해야만 해. 여기서는 '다른 존재의 느낌과 생각을 이해하는 데 생기는 어려움'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각 제시문이 무엇을 말해주는지를 분석해내야만 하지.

제시문 (가)에서 장자와 혜자의 차이는 물고기가 즐겁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다는 것과 알 수 없다는 것이야. 혜자는 장자가 물고기가 아니므로 물고기의 느낌을 알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 반면 장자는 물고기의 느낌을 어찌 알 수 있느냐는 혜자의 질문 자체가 장자의 무언가에 대한 혜자의 앎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어. 혜자는 장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장자의 무언가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이지. 장자는 그런 식으로 자신도 물고기가 아니어도 물고기의 느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

복잡한 말장난 같다는 생각이 들지? ♥장자(莊子)♥는 그 심오함만큼 다양한 해석을 낳는 글이야. 위의 해석도 그 중 하나에 지나지 않고. 여러분에게 중요한 것은 논제에 제시된 주제와의 관련성일 거야. 혜자의 주장을 통해 우리가 다른 존재의 느낌과 생각을 아는 데 어려움이 생기는 이유는 우리가 다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 수 있어. 반면에 장자는 그러한 측면 역시 절대화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다음 제시문 (나)는 인간인 우리가 진정으로 박쥐의 느낌을 알 수 있는가에 답하는 글이야. 인간과 박쥐는 서로 다른 생물학적 조건을 가지고 있어. 따라서 박쥐와 인간은 감각 등 외계에 대한 경험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어. 토머스 네이글은 그러한 경험방식의 차이 때문에 우리가 박쥐의 입장에서 박쥐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알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

우리는 흔히 역지사지,즉 다른 존재의 느낌과 생각에 대한 상상을 말하곤 해. 하지만 토머스 네이글은 우리가 상상을 통해서도 박쥐의 느낌을 완전하게 알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 우리 인간의 상상은 인간적 경험방식에 기초한 것일 수밖에 없어. 제 아무리 박쥐의 입장에 서려고 해봐도 결국은 인간적 경험방식에 기초한 상상에 불과하게 된다는 것이지.

논제에서는 제시문 각각을 비교분석하여 다른 존재의 느낌과 생각을 이해하기 힘든 어려움을 설명하라고 요구하고 있어. 이 말은 먼저 제시문 각각에 제시된 그 어려움의 양상과 원인을 분석해내라는 이야기야. 그런데 우리는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돼. 두 번째로,제시문들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만 해. 제시문들이 동일한 논지를 가지고 있는지, 또는 반대로 제시문들 사이에 쟁점이 형성되어 있는지를 포함해서 말이야. 이것은 (2)에 답하기 위해서 중요한 부분이야.

(가)가 혜자의 문제제기와 장자의 대답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나)는 혜자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식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을 거야. 한발 더 나아가 (나)에 개진된 사고의 흐름을 정확히 분석해낼 수 있다면 더 좋아. 저자의 주장은 '서로 다른 생물학적 조건→서로 다른 경험방식→인간이 박쥐의 느낌을 알 수 없음'의 흐름을 지니고 있어. 서로 다른 생물학적 조건과 경험방식이 결론을 위한 논거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지. 이 흐름을 (1)'다른 존재의 느낌과 생각을 이해하는 데 생기는 어려움'의 양상과 원인으로 제시할 수 있을 거야.

익숙한 글이므로 제시문 (다) 자체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을 거야. 하지만 거기서 나아가 (1)에 대한 답변을 도출해내는 데 이 제시문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해. 그러려면 먼저 이 제시문에 형상화된 갈등 양상을 정확히 파악해내야 해. 소설이 제시문으로 등장할 때는 늘 고려해야 할 사항이지. 이 제시문에서는 점순의 행위 동기를 '나'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갈등의 핵심으로 볼 수 있어.

한발 나아가 이 양상과 (1)의 관련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면 더 좋겠지. 또 이 양상을 제시문 (가)와 (나)의 주요 개념이나 논지에 연관시켜 생각해볼 수도 있어. (나)에서 제시된 존재들 사이의 생물학적 조건의 차이,경험방식의 차이는 (다)의 갈등양상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생각해본다는 뜻이지.

제시문 (라)는 자연현상과 인간의 의식세계를 비교하고 있어. 자연현상의 경우,어떠한 현상에 대한 어떠한 원인이 필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자연과학적 일반화가 가능해. 그 일반화를 통해 우리는 현상의 원인을 파악해낼 수 있게 되지. 반면 인간 행위의 경우,어떠한 행위에 어떠한 심리가 필연적으로 연관되어 있지 않아. 똑같은 행위임에도 각기 다른 심리적 요인이 작용할 수 있지. 과학적 일반화가 힘들다는 뜻이야.

이 주장 역시 (1)의 '어려움'과 관련시켜 생각해볼 수 있겠지? 그 어려움을 야기하는 원인으로서 과학적 일반화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지. 또한 타인의 마음을 섬세하게 이해하려 하지 않고 섣불리 일반적 결론에 입각해 생각할 때 생기는 갈등을 말할 수도 있을 거야. (1)에 해당하는 한 가지 양상이 제시되는 거지.

이번에는 제시문 (라)와 나머지 제시문들의 연관성을 파악해보도록 하자. 다른 존재의 느낌이나 생각을 이해하기 힘든 어려움과 관련해서 말이야. 먼저 (가)의 혜자의 주장, 그리고 (나)의 저자의 주장과 비교해보면 어떨까? 자연현상에 대해서는 과학적 일반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면,(라)의 저자는 인간이 물고기나 박쥐의 느낌을 알 수 없다는 주장에 찬성할까 반대할까? 또 인간의 의식에 대해서는 과학적 일반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면,(라)의 저자는 (다)의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인간이 타인의 느낌과 생각을 이해하는 데 생기는 어려움은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그는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할까?

제시문들을 비교분석하라는 논제의 요구에 맞추어 먼저 각 제시문이 담고 있는 어려움의 양상과 원인을 분석해보았어. 이로써 논제 (1)에 대해 대답하려 한 것이지. 그 다음으로는 제시문 각각의 논지가 어떤 식으로 연관될 수 있는지를 따져 보았어. 제시문 내적으로,혹은 제시문들 사이에 논지가 때론 일치하고 때론 상충한다는 점,아마 느꼈을 거야. 수험생은 그 부분들에 대해 나름대로 입장을 정리해내야 해. 그럼으로써 논제 (2)다른 존재의 느낌과 생각을 이해하는 데 생기는 어려움이 궁극적으로 극복가능한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주장과 논거를 제시할 수 있을 거야. 이 점에 대해서는 △극복 불가능하다거나 △극복 불가능하지만 완화시킬 수 있다거나 △극복가능하다는 식의 결론이 가능해. 만일 뒤의 두 가지 결론 중 하나를 택한다면,극복하거나 완화시킬 방법을 제시해야 하겠지.

물론 (2)에 답하면서 논제의 요구대로 사회현실의 예를 함께 들어야 해. 타인의 느낌과 생각에 대한 이해는 사회적 갈등과 관련된 주제이기도 하지. 따라서 계층 간,이해집단 간,세대 간,종교 간의 갈등 등 무수히 많은 사회적 갈등을 이 문제에 관련시켜 생각해볼 수 있어. 최근에 문제가 된 현대자동차의 노사분규도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이지. 또 이혼률 상승도 이와 무관치 않은 문제야.중요한 것은 우선 제시문들에 대한 비교분석을 통해 (1)에 답하며 최대한 다각적으로 '어려움'의 다양한 것이야. 그리고 (1)의 답안과 (2)'어려움이 극복될 수 있는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이 설득력 있게 연결되어 있어야 해. 물론 (2)에 대한 답안에 포함될 사회현실의 예 역시 이상의 논지 전개에 부합되는 내용이어야 하겠지.

이석연 S·논술 수원학원 원장 blachand@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