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결혼정보 업체에서 회원에게 전화를 했다.
"만나실 분 프로필을 넣어드리려고 하는데,이메일 주소 좀 알려주세요."
"아 그래요? 어디 좋은 물껀(사람) 나왔나요?"
회원이 부동산 중개업자라면 이렇게 반응할 것이라고 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인데 상당히 작위적이긴 하지만 직업에 따라 일상적으로 쓰는 어휘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 우스갯소리일 것이다.
우리의 관심은 물론 여기에 나오는 말 '물껀'이다.
'물껀'은 사전에 있는 낱말은 아니다.
아마도 여간해선 오르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말은 우리가 익히 아는 단어 '물건(物件)'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물건'을 [물껀]이라 발음할 때 이는 '동산 또는 부동산 등 매매나 거래의 대상물'을 가리킨다.
'물건'이라 적고 [물껀]으로 읽는 것이다.
하지만 사전적으로는 [물껀]이란 발음이 아직 [물건]에서 분화되지는 않았다.
사전은 발음 정보도 담고 있는데 [물껀]이라 소리 내고 '매매나 거래의 대상물'을 나타내는 쓰임새가 올라 있지 않다는 뜻이다.
따라서 적어도 규범적으로는 [물껀]으로 발음하는 말은 없고,단지 [물건]으로 발음이 통일돼 있을 뿐이다.
하지만 언중들은 이미 '물건'을 [물건]과 [물껀]으로 구별해 말하기 시작한 지 오래다.
[경기]와 [경끼]의 관계도 의미심장하다.
호황이나 불황 등 경제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은 '경기(景氣)'다.
읽을 때도 [경기]라 발음한다.
이에 비해 '사람이 경련을 일으키는 병의 일종'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은 '경기(驚氣)'라 적고 [경끼]라 읽는다.
같은 '-기(氣)'가 쓰이고 한글로는 똑같이 '경기'이지만(이는 음운 환경이 같다는 뜻이다) 발음을 [경기]로 하느냐 [경끼]로 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말이 된다.
우리말에는 이처럼 똑같은 음운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예삿소리로 나는 말이 있는가 하면 된소리로 발음하는 말도 있다.
'성과(成果),전과(戰果),결과(結果),인과(因果)' 네 단어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모두 '과(果)'자가 들어 있는 말들이다.
이 중 '성과가 있다','혁혁한 전과를 올렸다'라고 할 때는 누구나 [-꽈]로 발음한다.
그러나 '결과'나 '인과(관계)'를 말할 때는 아무도 '-꽈'라고 하지 않는다.
당연히 [-과]라고 읽는다.
'감기(感氣),혈기(血氣),용기(勇氣)'와 '광기(狂氣),윤기(潤氣)'의 관계는 앞에 나온 [경기]와 [경끼]의 차이와 마찬가지다.
'사건'이나 '안건','조건' 따위는 언제나 [-껀]으로 발음하지만 '물건'은 [-건]이다.
이마저도 앞서 본 것처럼 [물껀]으로 읽히기도 한다.
예삿소리가 된소리로 바뀌는 것을 '경음화 현상'이라고 한다.
경음화 현상은 단어의 음운 환경에 따라 일정한 규칙이 있긴 하지만,그 규칙에 담지 못하는 말들도 꽤 있다.
즉 똑같은 음운 환경에서 된소리로도,예삿소리로도 발음되는 것들이 많다는 얘기다.
그래서 현행 표준발음법에서도 (특히 한자어의 경우) 같은 음운 환경이라도 된소리로 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가령 공법(公法),사법(私法)에서의 '사법'은 [사뻐+ㅂ]처럼 뒷말이 된소리로 나지만 '사법부(司法府)'라고 할 때의 '사법'은 [사법]으로 뒷말이 예삿소리로 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해묵은 과제이면서 여전히 헷갈리는 '김밥'이나 '효과' '교과서'의 발음은 어떻게 해야 될지 생각해 보자.우선 규범적인 답.국립국어원은 이를 여전히 [김밥] [효과]로 발음해야 맞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언중은 이미 [김빱]이라야 제 맛을 느끼고 [효꽈]라고 해야 무언가 보람 있는 결과가 나왔음을 알게 된 지 오래다.
일부 방송에서 '교과서'나 '효과'를 규범에 맞게 한다고 [교과서]니,[효과]니 하는 발음을 의식적으로 사용해 일상적인 언어생활을 헷갈리게 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근래 들어 방송 아나운서들 사이에서 구태여 규범에 얽매일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발음인 [교꽈서]나 [효꽈],[김빱] 식으로 말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
"만나실 분 프로필을 넣어드리려고 하는데,이메일 주소 좀 알려주세요."
"아 그래요? 어디 좋은 물껀(사람) 나왔나요?"
회원이 부동산 중개업자라면 이렇게 반응할 것이라고 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인데 상당히 작위적이긴 하지만 직업에 따라 일상적으로 쓰는 어휘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 우스갯소리일 것이다.
우리의 관심은 물론 여기에 나오는 말 '물껀'이다.
'물껀'은 사전에 있는 낱말은 아니다.
아마도 여간해선 오르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말은 우리가 익히 아는 단어 '물건(物件)'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물건'을 [물껀]이라 발음할 때 이는 '동산 또는 부동산 등 매매나 거래의 대상물'을 가리킨다.
'물건'이라 적고 [물껀]으로 읽는 것이다.
하지만 사전적으로는 [물껀]이란 발음이 아직 [물건]에서 분화되지는 않았다.
사전은 발음 정보도 담고 있는데 [물껀]이라 소리 내고 '매매나 거래의 대상물'을 나타내는 쓰임새가 올라 있지 않다는 뜻이다.
따라서 적어도 규범적으로는 [물껀]으로 발음하는 말은 없고,단지 [물건]으로 발음이 통일돼 있을 뿐이다.
하지만 언중들은 이미 '물건'을 [물건]과 [물껀]으로 구별해 말하기 시작한 지 오래다.
[경기]와 [경끼]의 관계도 의미심장하다.
호황이나 불황 등 경제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은 '경기(景氣)'다.
읽을 때도 [경기]라 발음한다.
이에 비해 '사람이 경련을 일으키는 병의 일종'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은 '경기(驚氣)'라 적고 [경끼]라 읽는다.
같은 '-기(氣)'가 쓰이고 한글로는 똑같이 '경기'이지만(이는 음운 환경이 같다는 뜻이다) 발음을 [경기]로 하느냐 [경끼]로 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말이 된다.
우리말에는 이처럼 똑같은 음운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예삿소리로 나는 말이 있는가 하면 된소리로 발음하는 말도 있다.
'성과(成果),전과(戰果),결과(結果),인과(因果)' 네 단어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모두 '과(果)'자가 들어 있는 말들이다.
이 중 '성과가 있다','혁혁한 전과를 올렸다'라고 할 때는 누구나 [-꽈]로 발음한다.
그러나 '결과'나 '인과(관계)'를 말할 때는 아무도 '-꽈'라고 하지 않는다.
당연히 [-과]라고 읽는다.
'감기(感氣),혈기(血氣),용기(勇氣)'와 '광기(狂氣),윤기(潤氣)'의 관계는 앞에 나온 [경기]와 [경끼]의 차이와 마찬가지다.
'사건'이나 '안건','조건' 따위는 언제나 [-껀]으로 발음하지만 '물건'은 [-건]이다.
이마저도 앞서 본 것처럼 [물껀]으로 읽히기도 한다.
예삿소리가 된소리로 바뀌는 것을 '경음화 현상'이라고 한다.
경음화 현상은 단어의 음운 환경에 따라 일정한 규칙이 있긴 하지만,그 규칙에 담지 못하는 말들도 꽤 있다.
즉 똑같은 음운 환경에서 된소리로도,예삿소리로도 발음되는 것들이 많다는 얘기다.
그래서 현행 표준발음법에서도 (특히 한자어의 경우) 같은 음운 환경이라도 된소리로 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가령 공법(公法),사법(私法)에서의 '사법'은 [사뻐+ㅂ]처럼 뒷말이 된소리로 나지만 '사법부(司法府)'라고 할 때의 '사법'은 [사법]으로 뒷말이 예삿소리로 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해묵은 과제이면서 여전히 헷갈리는 '김밥'이나 '효과' '교과서'의 발음은 어떻게 해야 될지 생각해 보자.우선 규범적인 답.국립국어원은 이를 여전히 [김밥] [효과]로 발음해야 맞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언중은 이미 [김빱]이라야 제 맛을 느끼고 [효꽈]라고 해야 무언가 보람 있는 결과가 나왔음을 알게 된 지 오래다.
일부 방송에서 '교과서'나 '효과'를 규범에 맞게 한다고 [교과서]니,[효과]니 하는 발음을 의식적으로 사용해 일상적인 언어생활을 헷갈리게 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근래 들어 방송 아나운서들 사이에서 구태여 규범에 얽매일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발음인 [교꽈서]나 [효꽈],[김빱] 식으로 말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