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제] 제시문(가)와 제시문(나)의 관점을 참조하여 아래 예시한 상황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하시오.

(1101~1200자)

거대 제약회사들이 약 가격을 개발국의 수준으로 유지하기 때문에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비싼 약값을 감당하지 못해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고 하자.비판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그것은 사악한 사람들이 이익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끔찍한 사례다.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게 되면 제약회사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행동에 내포된 윤리를 의문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약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약값 때문에 약을 구할 수 없다는 것도 잘못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제약회사들이 자선행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데 사태의 복잡성이 있다.

그 이유는 누구나 안다.

신약을 개발하는 일은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들며,안전성 검사도 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더더욱 어렵다.

또한 자칫하면 막대한 개발비를 들이고도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모험적인 일이기도 하다.

이를 상쇄하기 위해 제약회사들은 시장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뽑아내려 하고 자신들의 특허를 보호받으려 하는 것이다.

(가) 치열한 글로벌 경쟁도,시장(고객의 요구,상품서비스,기술)의 급격한 변화·부침·탄생·사멸도,돈 되는 곳에 돈과 사람이 재빨리 몰려가고 돈 안 되는 곳에서 돈과 사람이 재빨리 빠져 나오는 것을 의미하는 금융유동성과 고용유연성도,주주가치 중시주의도,산업·인력 구조조정도 원인은 동일하다.

무역자유화도 투자자유화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현상의 저변에 흐르는 정신은 어디까지나 '법과 관습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최대한의 이윤을 올리려는 자본의 합리성'이요,'자본운동의 자유화,활성화'이다.

폭넓은 선택권을 가진 사람들의 변화무쌍하고 까다로운 요구에 응하여 가치를 창출하고 일자리 창출을 주도하는 것은 아무래도 자본이기 때문이다.

(나) 일반적으로 자유주의에 있어 평등은 실제적이라기보다는 권리에 있어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권리를 평등하게 부여할지라도 이미 주어진 경제적 상황이 불평등하다면 사회적 평등이라는 우리 시대의 이념은 별다른 의미를 띨 수 없게 될 것이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다는 우화는 단순히 우화일 따름이다.

그래서 자연적,사회적으로 혜택 받은 개인의 재능이나 능력을 사회의 공동재산으로 보고 이것을 사회의 최소 수혜자의 최대이익을 도모하는 데 이용하자는 것으로서,예컨대 평등문제를 사회복지의 문제로 보는 새로운 시각을 모색해 볼 수 있다.

비록 사회적 최다 수혜자들이 역차별 방식이라고 불만을 터뜨릴지라도 이러한 방식은 기회의 형식적 균등으로부터 결과의 실질적 평등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의 이론적 기초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방식의 정당한 근거는 자연적,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인 쪽으로부터 자발적인 협력을 기대할 수 있을 뿐 아니라,그들의 파괴적 심리를 제거함으로써 호혜성에 바탕을 둔 사회적 협동과 공동체적 통합을 확립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해설]

이제 입시도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지? 모두들 수고했다는 인사 먼저 건네고 싶어.논술고사는 학교마다 유형이 다르고,같은 학교라도 수시랑 정시 유형이 다른 경우가 많아 정말 준비하기 힘들지.그래도 건국대의 경우는 수시·정시 유형이 같고,그래서 기출문제를 보면서 준비하기가 훨씬 수월하지.제시문도 너무 난해하거나 길지 않은 합리적인 수준에서,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정보나 현상을 이용하여 출제하는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어. 건국대는 '다'군 중 유일하게 논술고사를 치르는 학교라 오는 23일 2007학년도 정시전형을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정리를 해보자.

건국대의 2007학년도 수시 2학기 논술고사 형식은 예시문 하나와 두 개의 제시문의 결합이야.예시문을 통해 갈등하는 양상을 제시해 주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두 가지 관점을 제시문으로 제공해,그 두 관점을 수험생 나름대로 소화하고 예시문의 갈등을 해결해 보도록 한 것이지.

예시문에는 거대 제약회사의 약 가격이 저소득층에게 상당한 경제적 부담을 주고 있는 상황이 제시되어 있어. 제약회사의 경우 신약개발의 비용과 시간,안전성 검사 대비,판매 저조에 대한 불안 등을 감안하여 약 가격을 개발국,즉 선진국 수준으로 유지할 수밖에 없는 반면 전 세계의 저소득층은 자신들의 열악한 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고가의 약을 구입할 수 없어 육체적,물질적으로 이중의 고통을 감수할 수밖에 없지.최대한 이윤을 뽑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제약회사와,소득에 맞게 그것을 저렴하게 구입하고자 하는 저소득층은 필연적으로 갈등의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어.

이런 다국적 거대 제약회사 관련 내용이 논술고사에 많이 등장하고 있어. 고려대 2007학년도 수시 1학기 논술고사가 이와 유사한 주제였지(생글생글 61,62호를 봐).가상의 상황이기는 했지만 전염병이 창궐한 개발도상국에 치료약을 공급하는 가격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공리주의와 정의론이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줬어. 여기 제시문 (나)도 정의론에 입각한 주장이니까 고려대의 경우와 비슷한 부분이 많지. 2006학년도 숙명여대 정시 자연계 논술고사에서도 우울증을 예로 들어 질병의 원인이나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예방에 힘쓰지 않고 증상 치료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연구를 비판하며,그 원인을 제약회사가 연구자금을 대는 것에서 찾고 있어. 즉 인류의 건강을 생각하기보다는,감춰진 수요를 개발하고 거기 약을 팔아서 이익을 남기려는 제약회사를 공격하고 있어.

이런 내용의 논제나 제시문이 등장하는 것은 요즘의 사회적 상황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 거대 제약회사들은 개발도상국에서 꼭 필요한 주사액이나 항생제 등은 이윤이 많이 남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산을 중단하고,평생 약을 팔 수 있는 만성질환 관련 약만 개발하고 공급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 게다가 얼마 전 미국과의 FTA 협상 중에 있었던,보험의약품 선별등재방식(포지티브 리스트)에 대해 미국 거대 제약회사가 반발했던 예도 이러한 사안들과 연결하여 생각해볼 수 있지.

이번 건국대 수시 2학기 논술고사의 출제의도는 이 갈등을 비단 제약회사에 국한되지 않는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사회적 갈등으로 상정하고,이 갈등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가에 대해 수험생의 논리적 접근을 기대해 보는 것이지.


◆제시문 해설

제시문 (가)와 (나)는 각각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에 토대를 두고 경제적 문제를 바라보는 입장이야.

(가)는 이윤을 최대한 올리는 것이 자본의 합리성이요 자유화,활성화라고 주장하고 있어.그 주장은 돈 되는 곳에 돈과 사람이 몰리는 현상이 곧 자본의 합리성,자유화,활성화이므로 그것을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는 입장을 대변하지. 말하자면 가치를 창출하고 일자리 창출을 주도하는 것은 자본이므로 노동에 대한 자본의 우위성을 확실하게 강조하고 있어.

(나)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은 불가피한 현상이므로 이것을 인위적으로 조정하지 않으면 더불어 사는 사회의 건설이라는 이념을 달성할 수 없다고 보고 있어. 따라서 최다 수혜자가 수혜받은 것을 사회의 공동재산으로 삼자는 것은 그것을 최소 수혜자와 같이 나누어야 한다는 의미를 띤다는 점에서 사회복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어.롤즈의 정의론을 아주 쉽게 풀어썼지.


◆답안 작성 요령

수험생은 제시문 (가),(나) 중 어느 한쪽의 관점에 동의할 수 있고,또는 두 관점을 절충할 수도 있어.

(가)에 기울었을 경우를 보자.제약회사의 이윤과 특허권을 보장하지 않으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인력이 필요한 신약개발을 할 수 있는 곳이 없어져. 인류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 질병을 퇴치할 약품을 개발하는 측에게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지.

(나)의 경우는 인본주의의 입장에서 생명이 걸린 문제를 단순히 선진국의 기준으로 비용을 지불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을 펼쳐야 해.고려대 논술고사에서는 개발도상국 정부가 선진국 제약회사와 협정을 맺어 싼 값에 복제약을 공급하는 경우를 보여줬는데,실제로 이러한 일도 많이 실행되고 있지.그 외에도 사회보장이나 의료보험 등의 공공부조를 통해 사회·경제적 약자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도록 도와야 한다는 주장을 펼칠 수 있겠지.

어떤 경우든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정했는가가 중요해. 그리고 예시문에 나타난 갈등과 그 해결 방안에 대하여 수험생이 얼마만큼 논거를 제시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논술했는지가 관건이 되겠지.그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좋은 결과 얻기를 바란다.

임혜빈 S·논술 서대문학원 원장 imhaebin@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