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 논술은 제시문이 짧아 2006학년도 정시 및 2007학년도 수시 논제와 해설을 함께 게재합니다.

[논제] 아래 두 지문에 제시된 삶의 방식을 견주어 분석하고 그 의의 또는 문제점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가) 무릇 사대부 집안의 법도는 벼슬길에 높이 올라 권세를 날릴 때에는 빨리 산비탈에 셋집을 내어 살면서 처사(處士)로서의 본색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 벼슬길이 끊어지면 빨리 서울 가까이 살면서 문화(文華)의 안목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 내가 죄인이 되어 너희들에게 아직은 시골에 숨어서 살게 하였다만,앞으로의 계획인 즉 오직 서울의 십리 안에서만 살게 하겠다.

만약 집안의 힘이 쇠락하여 서울 한복판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다면 잠시 서울 근교에 살면서 과일과 채소를 심어 생활을 유지하다가 재산이 조금 불어나면 바로 도시 복판으로 들어가도 늦지는 않다.

화와 복의 이치에 대하여 옛날 사람들도 오래도록 의심해 왔다.

충과 효를 한다 해서 꼭 화를 면하는 것도 아니고 방종하여 음란한 짓을 하는 사람이라고 꼭 박복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착한 행동을 하는 것은 복을 받을 수 있는 당연한 길이므로 군자는 애써 착하게 살아갈 뿐이다.

옛날부터 화를 당한 집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반드시 먼 곳으로 도망가 살면서도 더 멀고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 못했음을 걱정하곤 했다.

그리 하면 마침내 노루나 산토끼처럼 문명에서 멀어진 무지렁이들이 돼버릴 뿐이다.

무릇 부하고 귀한 권세 있는 집안은 눈썹을 태울 정도의 급박한 재난을 당하여도 느긋하게 걱정 없이 지내지만,재난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먼 시골 깊은 산속에 들어가 사는 몰락하여 버림받은 집안은 겉으로는 태평이 넘쳐흐르는 듯하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근심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말이 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대개 그늘진 벼랑 깊숙한 골짜기에서는 햇볕을 볼 수가 없고 함께 어울려 지내는 사람은 모두 버림받은 쓸모없는 사람이라 원망하는 마음만 가득하기 때문에 그들이 가진 견문이란 실속 없고 비루한 이야기뿐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한번 멀리 떠나면 영영 다시 돌아오지 않게 된다.

진정으로 바라노니,너희들은 항상 심기를 화평하게 하여 벼슬길에 있는 사람들과 다르게 생활하지 말거라. 자손 대에 이르러서는 과거에 응시할 수 있고 나라를 경륜하고 세상을 구제하는 일에 뜻을 두도록 해라. 천리(天理)는 돌고 도는 것이니 한번 넘어진 사람이라서 반드시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하루아침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서둘러 먼 시골로 이사가 버린다면 무식하고 천한 백성으로 일생을 끝마치고 말 뿐이다.

(다산 정약용의 편지에서)

(나) 어둠 속에서 짐승이 울부짖고,수다스런 원숭이가 떠들썩하게 속세를 나무라고 있었다.

다사는 벌꿀을 찾는 일을 잊고 말았다.

호화롭게 깃털에 윤기가 반들반들 흐르는 몇 마리의 작은 새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까,마치 작은 밀림처럼 우거진 고사리 덤불 사이에 난 발자국이 그의 눈에 띄었다.

아주 작은 오솔길이었다.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헤치고 그 오솔길을 더듬어 가자니까 가지가 많은 나무 아래 조그만 움막 한 채가 보였다.

뾰족한 천막으로 고사리 덤불을 엮어서 만든 것이었다.

움막 옆의 땅바닥에서 한 사내가 몸을 바로 세우고 부동자세로 앉아서 가부좌한 다리 사이에 두 손을 가만히 올려놓고 있었다.

흰 머리칼과 넓은 이마 아래는 침착하면서 생기 없는 눈이 땅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을 뜨고는 있으나 자기의 내면을 성찰하는 눈이었다.

(중략)

나무는 가지와 잎으로 호흡하면서 움직이지만 요가 수도자는 미동도 하지 않고,신들의 조각처럼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를 본 순간부터 소년도 움직이지 않고, 땅에 박힌 듯이,사슬에 묶인 듯이 가만히 서서 마법에 홀린 듯 이 광경에 취해 있었다.

그는 선 채로 수도자를 바라보며,햇빛 한 조각이 어깨에도,쉬고 있는 두 손에도 비치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선 채로 감탄하는 동안에 햇빛도,숲에서 들리는 새의 지저귐도,원숭이 소리도,명상자의 얼굴로 다가와 살갗 냄새를 맡으며 볼 위를 조금 기어 다니다가 날아가고 날아오고 하는 갈색 꿀벌도,숲의 다양한 생활도,이 사람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것을 소년은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이들 모든 것은,아름답든 흉하든,사랑스럽든 공포감을 주든,그 모든 것은 수도자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다사는 알았다.

비도 그에게 한기를 느끼게 하거나 불쾌하게 할 수 없으며,불도 그를 태울 수가 없으리라.(중략)

여기는 모든 것이 옛날 그대로였다.

이곳에는 세월의 흐름도,살인도,고통도 없었다.

이곳에서는 시간과 생활이 수정처럼 견고하고,멈춰 있고,영원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수도자를 바라보았다.

첫눈에 보고 느끼던 감탄과 사랑과 존경이 그의 마음에 피어났다.

움막을 보고는 다음 장마철이 시작되기 전에 약간 고쳐야겠구나 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거기서 그는 겁 없이 몇 걸음 조심스럽게 걸어서 움막 안으로 들어가 안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많지는 않았다.

거의 아무것도 없는 상태다.

나뭇잎으로 엮은 침대,물이 조금 든 바가지,텅 빈 삼베 자루 등이 있었다.

그는 자루를 들고 나와 숲속에서 요기할 것을 찾아,과일과 달콤한 나무 속대 같은 것을 따오고,바가지를 가지고 가서 샘물을 길어다 놓았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물건만 있어도 되는 것이다.

다사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몽상에 빠졌다.

그는 숲속의 아늑한 고요와 꿈과 자기 자신에 만족하였고, 청년 시절에 평화와 만족과 고향 같은 안락함을 느꼈던 이곳에 그를 되돌아오게 해준 마음의 소리에 감사하였다.

(헤르만 헤세,'유리알 유희'에서)

[해설]

건국대의 논술고사 형식은 대조되는 내용의 제시문 두 개를 주고,그것을 해석하고 자기 의견을 쓰게 하는 거야. 그러니까 두 가지 관점을 제시문으로 제공하여,그 두 관점을 수험생 나름대로 소화하고 비판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지.

작년 건국대 정시 입시에서는 사회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내면으로 침잠하는 인간의 모습을 두 개의 제시문으로 나누어 보여줬어. 인간이 이런 양면성을 지녔으니까 삶의 태도도 분화되겠지. 그것은 서로 다른 사람에게서 나타나거나 모순되는 것은 아니겠지만,인생관이나 가치관에 따라 어느 한 쪽을 더 중시하여 선택할 수 있는 문제일거야.


◆제시문 해설

제시문 (가)는 다산이 유배지에서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서 발췌한 거야. 자기는 죄인이 되어 오지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지만,가족과 자손들은 속세를 피해 숨어살지 말고 양반으로서 문명을 누릴 수 있는 곳에 살기를 바라지.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주위환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버림받고 무지한 사람들 옆에서는 원망만을 배울 뿐이라는 게 다산의 주장이야.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에 따라 일시적인 기분은 물론이고, 생활 전체가 달라지는 경험은 여러 분도 많이 해봤을 거야. 맹자 어머니가 아들 교육을 위해 세 번씩 이사한 것도 이런 까닭이지.

제시문 (나)는 숲 속에서 홀로 내면을 성찰하는 요가 수도자의 모습을 통해,세상의 기준과 희로애락을 초월하고 오로지 하나의 존재로서의 '나'에 집중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지. 진정한 평화와 만족을 느끼며 사는 삶에는 어떠한 물질적 기반이나 사회적 조건도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어.

앞에서도 말했지만,이 두 관점은 모두 인간 존재의 본질에서 비롯한 거야. 인간은 남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살지만 소속 집단이나 성별,계급과 상관없이 하나의 단독자로서 의미를 가지잖아. 사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추구하면서 살고 있음을 새삼 알 수 있어.


◆답안 작성 요령

제시문 분석이 끝났으면,이제 거기서 보여주는 삶의 방식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혀야 해. 서로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의의나 문제점에 대해 쓰라고 했으니까,그 과제를 이행해야겠지. 그러니까 제시문에 대한 자기 나름의 해석이 필요한 부분이야.

채점할 때에 중요한 것은 수험생이 어떤 판단을 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자신의 판단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논증하는가에 있어. 문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명확한 판단을 회피한 답안,판단 기준에 일관성이 없거나 판단 근거가 부족한 답안은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이야. 또한 지문에 주어진 내용을 단순히 재정리하기에 급급한 답안이나,지문의 내용을 무시한 채 일반론 차원에서 교육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답안도 낮은 평가의 대상이 되지. 그러니까 반대로, 주어진 문제상황을 정확히 분석하고,일관된 기준과 근거에 입각하여 논리 정연하게 논지를 펼쳐나간 답안이 좋은 점수를 받게 될 거야.

임혜빈 S·논술 서대문학원 원장 imhaebin@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