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파 주민을 집단 학살한 혐의로 기소돼 사형선고를 받은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사형선고 나흘 만인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전격적으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로써 1979년 대통령이 된 뒤 2003년 3월 이라크전쟁으로 축출될 때까지 24년간 이라크를 철권 통치한 후세인은 수많은 논란 속에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후세인이 2003년 12월13일 자신의 고향인 이라크 티크리트에서 미군에 생포된 지 3년17일만의 결말이었다.

하지만 후세인의 사형이 집행된 이후에도 이라크의 상황은 좀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후세인의 처형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지역에선 후세인 지지자들의 소행으로 보이는 차량 폭탄 테러가 일어나는 등 저항 테러가 본격화되고 있고,국제사회는 격렬한 찬반 논쟁에 휩싸이고 있다. 또 후세인 처형을 계기로 미국의 대(對) 이라크 전략이 어떻게 변화될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폭력사태 격화 조짐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언론들은 최근 "후세인의 사형 집행은 이라크의 새로운 불길한 시작을 알리는 것"이라며 우려의 뜻을 내비쳤다. AP,BBC 등 주요 외신들도 너무도 빠른 사형 집행으로 이라크 내 종파 갈등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전통적인 후세인 지지세력인 수니파의 강한 저항이 예상되고 있다. 실제로 사형 집행이 발표되자마자 바그다드 남부 쿠파에서 차량 폭탄 테러가 일어나 적어도 31명이 숨지고 58명이 다치는 등 저항 테러가 격화되고 있다.

지난 2일에는 후세인의 가짜 관과 사진을 받쳐든 수백명이 사마라의 시아파 사원에 몰려들어 출입구를 부수고 '시아에 대한 보복'을 다짐했다. 이 사원은 지난해 2월 수니파가 폭탄 테러를 가한 후 피의 보복전을 불러온 민감한 장소이기도 하다.

AP는 "저항세력을 제외한 대부분의 수니파 주민들은 후세인 처형 이전까지는 시아파 군인들이 공격을 해도 공개적으로 종파 분쟁에 나서는 것을 피했지만 이제는 전면전에 나서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바그다드 북부 수니파 지역에선 수백명의 시위대가 여기저기 운집해 '보복' 구호를 외쳤고,일부는 양을 도살해 제단에 올린 뒤 후세인의 '바트당'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미국의 이라크 전략 변화하나

전문가들은 후세인이 교수형 확정 나흘 만에 곧바로 처형된 것에 대해 부시 행정부가 새로운 이라크 전략을 내놓기 전에 일종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조치라고 분석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부시 행정부가 후세인 처형을 계기로 이라크 내 미군의 희생자 수를 억제하기 위해 1만5000~3만여명에 이르는 미군 증원을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또 이라크에 대한 경제적 지원 논의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미국 언론들은 이라크전 이후 실업률 급등 등 경제사정 악화로 이라크 민심이 미국에 등을 돌리게 됐다고 판단한 부시 행정부가 다양한 경제지원 정책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 같은 미국의 이라크 전략 변화가 먹혀들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미국 여론조사회사인 갤럽이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중 64%가 이라크 전쟁에 따른 손실이 후세인 제거보다 훨씬 크다고 응답해 후세인 처형이 이라크 전략에 큰 도움을 주진 못할 것이란 예측이 많다.

미국 행정부의 한 고위관리도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백악관은 후세인이 처형되는 극적인 상황을 맞았음에도 처형 소식이 이라크전에 대한 미국민의 지지를 얻는 계기가 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당장 이라크에선 극도의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우려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비책이 충분히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늘고 있다. 미국 언론은 "부시 대통령이 후세인 처형 이후 어떤 이라크 해법을 제시할지,그리고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전했다.

안정락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jran@hankyung.com

[ 후세인 처형 일지 ]

△2003.3.20=미국,이라크전 개시

△2003.4.9=미군 바그다드 점령,후세인 동상 파괴

△2003.7.22=후세인 아들 우다이 교전 중 사망

△2003.12.13=후세인,이라크 북부 티크리트에서 미군에 생포

△2004.1.9=미군,후세인이 전쟁포로 신분이라고 발표

△2004.7.1=후세인,이라크 특별 법정 출석

△2005.10.19=시아파 집단 학살 관련 후세인 재판 개시

△2006.8.21=쿠르드족 학살 관련 후세인 재판 개시

△2006.11.5=이라크 법원,후세인 교수형 선고

△2006.12.26=이라크 항소법원,후세인 교수형 선고 확인

△2006.12.30=후세인 사형 집행


[ "이라크에 민주주의 세우는 중대한 이정표" - "국제법 명백히 위반한 정치적 암살 행위" ]

* 국제사회 엇갈린 반응

후세인 처형에 대한 각국의 반응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라크전 당사자인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후세인에 대한 사형 집행을 이라크 내에서 민주주의를 세우는 데 '중대한 이정표'라고 평가하며 사형 집행을 반겼다. 부시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후세인에 대한 형 집행은 이라크 국민과 이라크에 주둔해 있는 미군이 어려운 해를 마감하는 때에 이뤄졌다"며 "후세인 처형은 이라크를 민주국가로 만드는 데 있어 중대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함께 후세인 축출 공격에 나섰던 영국의 마거릿 베케트 외무부 장관도 "후세인이 최소한 이라크인들에게 자행한 끔찍한 범죄 중 일부에 대해 이라크 법정의 심판을 받은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또 1991년 걸프전 때 이라크로부터 미사일 공격을 받았던 이스라엘과 1980년부터 이라크와 8년간 전쟁한 이란도 후세인의 처형을 환영했다.

그러나 후세인을 지지한 일부 아랍.이슬람권 정치세력들은 처형을 규탄하고 나서는 등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내각을 이끌고 있는 하마스는 후세인에 대한 사형 집행을 '정치적 암살'이라고 규정한 뒤 "이는 전쟁 포로를 보호하도록 돼 있는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비아는 후세인 처형 집행일부터 사흘간을 애도기간으로 선포했다.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 4개국도 후세인 처형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유럽연합(EU) 의장국인 핀란드의 에르키 투오미오야 외무장관은 "핀란드는 다른 EU 회원국들과 함께 이번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인 최초로 유엔 사무총장에 취임한 반기문 총장은 공식 첫 출근일인 지난 2일 후세인 처형과 관련,"사형은 각국이 결정할 일"이라며 사형제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언론들은 "반 총장의 발언은 사형제 비판론자이자 이라크 전범 재판에 대한 유엔 참여를 반대해온 코피 아난 전 사무총장과 현격한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라며 "많은 유엔 회원국들의 정치적 견해를 일부 무시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