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날씨가 눈발이라곤 거의 비치지 않은 채 마른하늘에 강추위로만 일관되는 걸 보고…."(윤흥길, 『완장』)

"봄보리는 겨울의 강추위에서 얼어 죽지 않고 아기손가락 같은 줄기를 파릇파릇 내밀고 있었다."(김원일, 『불의 제전』)

한동안 포근하던 날이 해가 바뀌는 며칠을 앞두고 이번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를 보이며 한 해를 마무리했다.

이런 매운 추위를 가리켜 사람들은 '강추위'라고 한다.

그런데 이 강추위는 순우리말일까,한자어일까.

대개는 한자어 '강(强)'을 생각하곤 '强추위'로 이해하는 것 같다.

하지만 '강(强)추위'는 나중에 생긴 말이고 본래는 고유어로서의 '강추위'가 있었을 뿐이다.

윤흥길의 『완장』(1983년)에 나오는 '강추위'가 고유어로 쓰인 것이다.

본래 '강추위'란 '눈도 바람도 없이(따라서 마른하늘이고 맑은 날씨이다) 몹시 매운 추위'를 말한다.

이런 부류의 말에는 강추위 외에도 강더위(비가내리지 않고 볕만 쬐는 더위),강마르다(살이 없이 매우 마르다),강다짐(밥을 국이 없이 팍팍하게 먹는 상태) 등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어떤 상태가 다른 것의 섞임 없이 한 가지만으로 돼 있다'는 것이다.

김원일의 『불의 제전』은 1997년 전 7권으로 완간된 장편소설이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강추위'는 고유어 '강추위'와는 매우 다르다.

이때의 '강추위'는 '눈이 오고 매서운 바람이 부는 심한 추위'를 뜻한다.

여기에 해당하는 말은 한자어 '강(强)추위'다.

이것은 '강한 추위,매우 심한 추위'의 뜻으로 통용되는 말이다.

겨울이면 단골손님처럼 나오는 방송뉴스에 "기습적인 강추위에 폭설까지 겹쳐 출근길 교통대란이 예상됩니다"라는 대목이 있다.

이때 쓰인 '강추위'가 전형적인 쓰임새다.

예전에는 이 말을 자의적으로 만들어 쓰는,잘못된 말로 보았으나 1999년 『표준 국어대사전』에서 고유어 '강추위'와 함께 한자어 '강(强)추위'도 표제어로 올림으로써 단어로 인정됐다.

'강(强)-'은 '매우 센' 또는 '호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로 '강염기,강타자,강행군' 등의 말이 있다.

'강(强)-'의 이 용법은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썼든,고유어 '강추위'의 개념을 정확히 모르고 무심코 쓴 것이든 결과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워낙 많이 사용돼 1990년대 후반 사전에 오른 것이다.

따라서 순우리말 '강추위'나 한자어 '강추위'나 글자로는 같지만 개념적으로는 매우 다른 말이다.

고유어 '강추위'의 핵심은 눈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마른 추위'라고도 한다.

한자어 '강추위'에는 '눈도 오면서 매우 춥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고유어로서의 접두사 '강-'은 이 밖에도 강술,강된장,강조밥,강기침,강서리,강호령 등 여러 말을 파생시켜 놨다.

시골 중에서도 아주 깊은 시골을 '깡촌'이라 하는데 이 역시 '강촌'에서 변한 말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깡촌'은 아직 사전에 올라 있지 않다.

'깡술(깡소주)을 벌컥벌컥 마신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안주도 없이 마시는 술(소주)'을 뜻한다.

그런데 여기서 '깡술,깡소주'는 아직까지는 규범적으로 '강술,강소주'가 바른 표기다.

'강-'이 붙어 만들어진 말 가운데 입말에서 된소리(깡)로 발음하기 십상인 말은 '깡술,깡소주,깡마르다' 정도다.

『표준 국어대사전』은 이 가운데 '깡마르다'만 '강마르다'의 센말로 인정하고,'깡술,깡소주'는 모두 '강술,강소주'의 잘못으로 처리했다.

사전은 보수적인 측면이 있어 어떤 말이 단어로 오르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깡촌이나 깡술,깡소주 같은 말은 이제 단어로 대접 받을 자격이 충분하지 않을까.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