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제]다음 네 개의 제시문에 공통되는 주제를 말하고 제시문들 사이의 관계를 밝히시오. 그리고 그 주제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시오.(1600±100자)
[제시문1]
우리가 가진 근본 욕구들 중에는 도덕적 충동에 따라 행동하려는 욕구가 있다.
그러나 큰 조직에서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유를 불가피하게 억압받고,조직의 규칙을 준수하도록 강요받는다.
그 규칙은 인간에 의해 고안되었지만 인간 자체는 아니다.
아무리 세심하게 만들어졌어도 거기에는 '사람의 손길(human touch)'과 같은 유연성이 없다.
조직이 크면 클수록 조직의 구성원은 도덕적 존재로서 자유롭게 행동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들은 흔히 이렇게 말하게 된다.
"미안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 옳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이것은 제가 받은 지시 사항입니다." 이처럼 큰 조직들은 아주 불량하고 부도덕하게,또는 아주 어리석고 비인간적으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이는 그 구성원들이 본래 그래서가 아니라 그들이 조직의 크기에서 오는 하중을 받기 때문이다.
큰 조직 안에 있는 사람들은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게 되지만 이런 비판은 마치 자동차가 배기가스를 배출한다고 해서 운전자를 나무라는 것과 같다.
천사라도 공기를 더럽히지 않고 차를 운전할 수야 없지 않겠는가? 결국 잘못은 조직의 구성원들에게 있다기보다는 조직의 크기에 있는 것이다.
개인들로 하여금 도덕적 충동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구조를 가진 사회는 부도덕하다.
조직이 지나치게 커지면 그런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그래서 '거대주의에 의한 합리화'에 중독된 현대인들은 너무 커진 규모 속에서 좌절감을 느끼고 무기력해지는 것이다.
[제시문 2]
야구공은 큰 공인가 작은 공인가? 야구공은 탁구공에 비해서 크지만 축구공에 비해서는 작다.
강은 개울보다 크지만 바다보다는 작다.
야구공도 크다고 말할 수 있고, 강도 작다고 말할 수 있다.
개울만 보던 사람에게는 강이 커 보이지만,바닷가에서 살던 사람에게 강은 작아 보일 것이다.
어른이 되어 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 갔을 때,우리는 모든 것들이 너무 작아 보여 깜짝 놀라기도 한다.
어릴 때는 그렇게 커 보이던 대문이 이제는 작아 보인다.
그런가 하면 어린이들의 그림에서는 종종 사람의 얼굴이 몸보다 크게 그려진다.
아마도 어린이의 심리적 경험 속에서는 얼굴이 그만큼 크고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신라의 고승 의상 대사는 "한 티끌 속에 온 우주가 들었다"고 갈파했고,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도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한 송이 들꽃 속에서 천국을 본다"고 노래했다.
티끌이 곧 우주요 모래가 곧 세상이라면 큰 것과 작은 것의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오늘날 조그만 메모리칩 하나에 거대한 도서관을 담을 수도 있으니 그것이 큰 것인지 작은 것인지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치열한 극소화 경쟁을 벌이고 있는 반도체 산업에서 새로 개발된 메모리칩이 더 작아진 것인지 더 커진 것인지 말하기 곤란하다.
외형이 작아져도 용량은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조그만 나비의 날갯짓이 바다 건너 거대한 허리케인을 일으킨다는 '나비효과'에 대해서 말한다.
또 원자보다 작은 극소의 세계와 우주와 같은 극대의 세계가 매우 유사한 구조를 지닌다는 견해도 있다.
그렇다면 의상 대사와 블레이크가 노래한 바가 문학적 수사만은 아닐 것이다.
[제시문 3]
구체적인 삶의 현장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국가나 민족은 물론 지역과 도시까지도 지나치게 크고 추상적인 조직체로 보인다.
사르트르는 오늘의 사회가 '잡히지 않는 전망'을 이룬다고 설명한 바 있다.
즉 오늘날의 사회에서 어떠한 사람이나 집단도 독자성을 갖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나 다른 집단과의 관계에 의하여 제약을 받게 되어 있지만,이 관계의 정확한 포착은 우리 손을 벗어나 계속적으로 도망가게 마련이라는 말이다.
우리의 구체적인 삶을 제한하면서도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잡히지 않는 현대사회의 기괴한 조직은 도시에서 잘 나타난다.
문화의 참 생명력이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향상과 해방과 풍요화에서 온다면, 우리의 문화에 대한 생각도 '잡히지 않는 전망'을 넘어가는 것이라야 한다.
이렇게 생각할 때,참으로 핵심적인 문화공간은 민족이나 도시보다도 더 작은 집단이어야 할 것처럼 보인다.
즉 우리가 보고 듣고 이야기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가능한 집단,사회학자들이 '대면집단'이라고 부르는 사회공간이 우리의 문화적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문화공간은 하나의 확정된 물리적 구획으로보다는 여러 집단의 유기적인 상호관계 속에 구성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것은 대면집단을 중심으로 하여 한편으로는 개인적 자아의 내면공간에 이어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 또는 도시로 번져나가고 국가나 민족 그리고 세계의 지평으로 둘러싸인다.
소집단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구체적 삶의 공간으로서 구체적 인간관계가 성립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지역이나 도시는 이 소집단에 다양성과 객관성을 부여하는 필수적 요인이 된다.
도시든,지역이든,국가든,이러한 것들은 소집단의 구체성의 원리가 확대될 수 있는 것으로 성립되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테두리는 '잡히지 않는 전망' 또는 제약으로서만 작용하는 조직이기를 그칠 것이다.
[제시문 4]
북녘 바다에 곤(鯤)이란 물고기가 있다.
그 몸집은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 물고기가 화(化)해서 새가 되는데,이름 하여 붕(鵬)이라 한다.
붕의 몸집 또한 몇 천 리나 되는지 헤아릴 수 없이 크다.
그런데 이놈이 한 번 화가 나서 날았다 하면 그 날개는 마치 하늘을 가린 구름처럼 모든 것을 뒤덮는다.
괴이한 이야기만 적어 놓은 『제해(齊諧)』라는 책에서는,"대붕(大鵬)이 남녘 바다로 날아가려면 물 위를 삼천 리나 달려야 비로소 날아오르게 되고,그런 뒤 다시 날개로 바람을 치면서 구만 리를 올라가서야 항로를 잡는다.
그러고는 그대로 육 개월을 날아 목적지인 남녘 바다에 도달한다"고 말한다.
몸집이 크면 그를 받아들일 공간도 커야 하고 정신이 위로 비상하려면 그 경지 또한 높아야 한다.
바람의 공간이 넓지 않으면 큰 새가 날 수 없다.
대붕이 바람을 치며 구만 리 창공을 날아오르는 것도 그래야만 푸른 하늘을 등에 지고 아무런 장애 없이 남녘 바다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이치를 모르는 매미와 새끼 비둘기가 비웃으며 말하기를,"나는 뽕나무 그늘에서도 얼마든지 힘껏 날 수 있고 잠깐 사이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는데,무엇 때문에 구만 리나 날아올라서 남쪽으로 가는 것일까? 불과 두어 길 되는 공간에서도 뛰놀 수 있고 쑥대밭 사이에서도 자유로이 날 수 있으니,이 또한 최대의 소요(逍遙)가 아닌가? 어째서 대붕처럼 날아야만 제일이란 말인가?"라고 한다.
작은 지혜(小知)는 큰 지혜(大知)에 미치지 못하고,짧은 시간(小年)은 긴 시간(大年)에 미치지 못한다.
하루살이가 밤과 새벽을 알 리 없고 여름벌레가 눈과 얼음을 알 리 없는 것이다.
이것이 큼(大)과 작음(小)의 차이이다.
새끼 비둘기가 어찌 대붕의 뜻을 알겠는가?
* 고려대 2005학년도 정시 논술문제 해설
독창적인 답안보다 독해력ㆍ이해분석력을 요구해!
이제 본격적인 정시 논술 시즌이 다가왔어. 이번엔 2005학년도 고려대학교 정시 문제를 볼텐데,고려대는 매년 거의 고정된 형태로 출제되기 때문에 반드시 살펴볼 필요가 있어.우선 고려대 입학처에서 밝힌 출제 방향을 들어보자.
"수험생들의 독해력과 사고력 및 문장력을 합리적이며 객관적으로 평가하고자 합니다.
지나치게 어려운 내용의 제시문이나 고등학생 수준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는 피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아주 독창적인 답안을 요구하는 문제도 피하고자 합니다.
평소 일정 수준 이상의 독서 경험을 가지고 있고, 또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사고하면서 공부했으며,아울러 자신의 생각을 정확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학생이라면 충분히 좋은 답안을 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고려대학교 논술고사는 어떤 문제에 대해 주체적이고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과 정확한 문장력을 평가해 수학능력시험과 상호 보완적인 선발방식이 되고자 합니다."
입학처가 밝힌 출제 방향처럼 고려대는 독창성보다는 독해력과 이해분석력을 중시한다고 볼 수 있어.고려대 입학설명회에서도 매번 강조하는 게 이해분석력과 치밀함이거든.제시문을 주며 공통된 주제를 찾고,제시문들 간의 관계를 밝히라고 주는 문제 자체가 수험생이 얼마나 제시문을 제대로 이해했는가 하는 이해분석력을 많이 묻는 문제라고 봐야겠지.
◆ 제시문 분석
첫 번째 제시문은 '단순하고 작은 것이 합리적'이라는 거야.오늘날에는 거대조직을 지향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당연하게 보일 수는 있어.하지만 이러한 거대주의는 개인을 큰 기계의 일개 부품으로 전락시키고,도덕적 충동에 따라 행동하려는 개인의 자유를 빼앗으며,그들에게 좌절감과 무기력감만 심어준다는 거야.
두 번째 제시문은 '큰 것과 작은 것의 차이는 상대적'이라는 거야.크고 작음은 상대적인 것으로,대상의 크기는 인식 주체의 상황과 대상의 배경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다는 것이지.또한 극미하거나 극대의 상태에서는 크기의 비교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내용도 담고 있어.
세 번째 제시문은 '작은 단위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어.이 제시문에서는 대면관계가 가능한 단위에서 생성되는 구체성의 원리가 도시,국가와 민족,그리고 세계 등 보다 큰 규모의 집단에까지도 확대될 수 있길 기대하고 있어.
네 번째 제시문은 '큰 것의 위대성'에 대해 말하고 있어.이 제시문은 현실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려고 할 때 정신은 크고 넓은 세계를 향한 포부와 기상을 지닌다는 '장자' 원문의 의미를 살리면서,대(大)의 가치를 예찬하는 방향으로 재구성된 거야.
제시문들을 종합해 보면 제시문 (1)은 큰 것의 한계를 주장하고 있고,제시문 (2)는 큰 것과 작은 것에 대한 인식의 상대성을, 제시문 (3)은 작은 단위의 중요성을,제시문 (4)는 큰 것의 절대적 우위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어.그리고 제시문들의 공통 주제는 '큰 것과 작은 것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지.
◆ 고려대 논술 문제의 특징
고려대만큼 다양한 주제를 두루 다룬 대학은 아마 없을거야.주제로만 봐서는 워낙 방대해 어떻게 대비할지 막막하고 손을 놓게 되는 경우가 생겨.하지만 내면을 보면 주제는 다양하지만 언제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사회 문제를 다룬다고 볼 수 있어.일반적인 논술의 소재나 주제가 그렇듯이 말야.
고려대 논술 문제에서는 보통 크게 세 가지를 요구해.'제시문의 공통 주제를 밝히고''제시문 간의 관계를 설명하고''그에 대한 자기 견해를 논술하라'는 것이지.이 중 핵심이자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이 '제시문 간의 관계'야.그런데 그 관계의 가장 큰 뼈대는 '일반(원리)'-구체(적용)라고 할 수 있어.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다양한 제시문이 배치되고.이러한 관점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자.이 문제의 키 포인트인 제시문 (2)를 잘 활용하면,'큰 것'과 '작은 것'은 상대적일 뿐만 아니라 우주 만물의 무한한 연결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거야.
이를 제시문 (1)에 적용하면 거대조직이 개인을 무기력하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거대조직을 만들고 기꺼이 거기에 종속되는 것은 개인들이라 할 수 있지.즉 개인과 사회를 구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거야.제시문 (3)은 비록 나약한 개인일 뿐이지만 그들의 구체적인 삶과 만남(작음)의 확장(큼)으로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어.그런데 문제는 제시문 (4)야.갑자기 '큰' 대붕이 나오잖아.하지만 대붕의 크기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지.즉 거대조직이 끼치는 폐단조차 대붕처럼 우주를 품는 자세를 가진 개인이라면 극복가능하다는 거야.정리하자면,현대인의 문제(제시문 1),큼과 작음을 이해하기 위한 원리(제시문 2),원리의 구체적인 적용(제시문 3),이를 위한 자세(제시문 4)의 연관관계라고 볼 수 있을거야.
아니면 이런 식의 접근도 가능할 거야.
1. 제시문 (1),(3)에 동의하는 경우
우선 제시문 (1)과 (3)을 묶어 '작고 단순한 것이 합리적'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경우야.이 입장에서는 제시문 (1)에 동조하면서 제시문 (4)의 주장인 '큰 것의 위대함'을 비판할 수 있겠지.
2. 제시문 (4)에 동의하는 경우
제시문 (4)와 같이 '큰 것은 위대하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경우야.이 경우 제시문 (1)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거대 조직의 장점을 부각시켜야 할 거야.
3. 제시문 (2)에 동의하는 경우
끝으로 제시문 (2)와 같이 크고 작은 것의 개념은 상대적이니 구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경우야.이 경우는 제시문 (1)과 (3)의 '작고 단순한 것이 합리적'이라는 주장과 제시문 (4)의 '큰 것이 위대하다'는 주장 모두를 비판하고 있으므로 조직의 크기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강조하면 될 거야.이 경우는 흑백논리의 갈등을 조정할 수 있을거야.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크기가 아니라는 거지.
소형 반도체칩 하나에 도서관 하나 크기의 정보가 들어갈 수 있듯이 단순히 물리적인 크기는 의미가 없고 그것의 파급효과 크기를 중시하는 태도야.따라서 앞서 논한 각 주장의 문제점을 모두 거론하면서 크고 작은 것의 개념이 상대적인 것이라는 주장으로 마무리할 수 있겠지.
고려대 논술 문제는 논제가 정형화되어 있어.그러니 우선 공통 주제를 찾는 연습을 많이 하고, 제시문들 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 집중해야 될거야.제시문들 간의 관계를 파악할 때는 단순히 제시문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말고,어떤 유기적인 관계를 찾아내는 게 중요해.그래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야겠지.
이기드온 S·논술 선임연구원 LKDO@nonsul.com
[제시문1]
우리가 가진 근본 욕구들 중에는 도덕적 충동에 따라 행동하려는 욕구가 있다.
그러나 큰 조직에서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유를 불가피하게 억압받고,조직의 규칙을 준수하도록 강요받는다.
그 규칙은 인간에 의해 고안되었지만 인간 자체는 아니다.
아무리 세심하게 만들어졌어도 거기에는 '사람의 손길(human touch)'과 같은 유연성이 없다.
조직이 크면 클수록 조직의 구성원은 도덕적 존재로서 자유롭게 행동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들은 흔히 이렇게 말하게 된다.
"미안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 옳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이것은 제가 받은 지시 사항입니다." 이처럼 큰 조직들은 아주 불량하고 부도덕하게,또는 아주 어리석고 비인간적으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이는 그 구성원들이 본래 그래서가 아니라 그들이 조직의 크기에서 오는 하중을 받기 때문이다.
큰 조직 안에 있는 사람들은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게 되지만 이런 비판은 마치 자동차가 배기가스를 배출한다고 해서 운전자를 나무라는 것과 같다.
천사라도 공기를 더럽히지 않고 차를 운전할 수야 없지 않겠는가? 결국 잘못은 조직의 구성원들에게 있다기보다는 조직의 크기에 있는 것이다.
개인들로 하여금 도덕적 충동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구조를 가진 사회는 부도덕하다.
조직이 지나치게 커지면 그런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그래서 '거대주의에 의한 합리화'에 중독된 현대인들은 너무 커진 규모 속에서 좌절감을 느끼고 무기력해지는 것이다.
[제시문 2]
야구공은 큰 공인가 작은 공인가? 야구공은 탁구공에 비해서 크지만 축구공에 비해서는 작다.
강은 개울보다 크지만 바다보다는 작다.
야구공도 크다고 말할 수 있고, 강도 작다고 말할 수 있다.
개울만 보던 사람에게는 강이 커 보이지만,바닷가에서 살던 사람에게 강은 작아 보일 것이다.
어른이 되어 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 갔을 때,우리는 모든 것들이 너무 작아 보여 깜짝 놀라기도 한다.
어릴 때는 그렇게 커 보이던 대문이 이제는 작아 보인다.
그런가 하면 어린이들의 그림에서는 종종 사람의 얼굴이 몸보다 크게 그려진다.
아마도 어린이의 심리적 경험 속에서는 얼굴이 그만큼 크고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신라의 고승 의상 대사는 "한 티끌 속에 온 우주가 들었다"고 갈파했고,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도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한 송이 들꽃 속에서 천국을 본다"고 노래했다.
티끌이 곧 우주요 모래가 곧 세상이라면 큰 것과 작은 것의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오늘날 조그만 메모리칩 하나에 거대한 도서관을 담을 수도 있으니 그것이 큰 것인지 작은 것인지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치열한 극소화 경쟁을 벌이고 있는 반도체 산업에서 새로 개발된 메모리칩이 더 작아진 것인지 더 커진 것인지 말하기 곤란하다.
외형이 작아져도 용량은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조그만 나비의 날갯짓이 바다 건너 거대한 허리케인을 일으킨다는 '나비효과'에 대해서 말한다.
또 원자보다 작은 극소의 세계와 우주와 같은 극대의 세계가 매우 유사한 구조를 지닌다는 견해도 있다.
그렇다면 의상 대사와 블레이크가 노래한 바가 문학적 수사만은 아닐 것이다.
[제시문 3]
구체적인 삶의 현장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국가나 민족은 물론 지역과 도시까지도 지나치게 크고 추상적인 조직체로 보인다.
사르트르는 오늘의 사회가 '잡히지 않는 전망'을 이룬다고 설명한 바 있다.
즉 오늘날의 사회에서 어떠한 사람이나 집단도 독자성을 갖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나 다른 집단과의 관계에 의하여 제약을 받게 되어 있지만,이 관계의 정확한 포착은 우리 손을 벗어나 계속적으로 도망가게 마련이라는 말이다.
우리의 구체적인 삶을 제한하면서도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잡히지 않는 현대사회의 기괴한 조직은 도시에서 잘 나타난다.
문화의 참 생명력이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향상과 해방과 풍요화에서 온다면, 우리의 문화에 대한 생각도 '잡히지 않는 전망'을 넘어가는 것이라야 한다.
이렇게 생각할 때,참으로 핵심적인 문화공간은 민족이나 도시보다도 더 작은 집단이어야 할 것처럼 보인다.
즉 우리가 보고 듣고 이야기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가능한 집단,사회학자들이 '대면집단'이라고 부르는 사회공간이 우리의 문화적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문화공간은 하나의 확정된 물리적 구획으로보다는 여러 집단의 유기적인 상호관계 속에 구성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것은 대면집단을 중심으로 하여 한편으로는 개인적 자아의 내면공간에 이어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 또는 도시로 번져나가고 국가나 민족 그리고 세계의 지평으로 둘러싸인다.
소집단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구체적 삶의 공간으로서 구체적 인간관계가 성립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지역이나 도시는 이 소집단에 다양성과 객관성을 부여하는 필수적 요인이 된다.
도시든,지역이든,국가든,이러한 것들은 소집단의 구체성의 원리가 확대될 수 있는 것으로 성립되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테두리는 '잡히지 않는 전망' 또는 제약으로서만 작용하는 조직이기를 그칠 것이다.
[제시문 4]
북녘 바다에 곤(鯤)이란 물고기가 있다.
그 몸집은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 물고기가 화(化)해서 새가 되는데,이름 하여 붕(鵬)이라 한다.
붕의 몸집 또한 몇 천 리나 되는지 헤아릴 수 없이 크다.
그런데 이놈이 한 번 화가 나서 날았다 하면 그 날개는 마치 하늘을 가린 구름처럼 모든 것을 뒤덮는다.
괴이한 이야기만 적어 놓은 『제해(齊諧)』라는 책에서는,"대붕(大鵬)이 남녘 바다로 날아가려면 물 위를 삼천 리나 달려야 비로소 날아오르게 되고,그런 뒤 다시 날개로 바람을 치면서 구만 리를 올라가서야 항로를 잡는다.
그러고는 그대로 육 개월을 날아 목적지인 남녘 바다에 도달한다"고 말한다.
몸집이 크면 그를 받아들일 공간도 커야 하고 정신이 위로 비상하려면 그 경지 또한 높아야 한다.
바람의 공간이 넓지 않으면 큰 새가 날 수 없다.
대붕이 바람을 치며 구만 리 창공을 날아오르는 것도 그래야만 푸른 하늘을 등에 지고 아무런 장애 없이 남녘 바다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이치를 모르는 매미와 새끼 비둘기가 비웃으며 말하기를,"나는 뽕나무 그늘에서도 얼마든지 힘껏 날 수 있고 잠깐 사이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는데,무엇 때문에 구만 리나 날아올라서 남쪽으로 가는 것일까? 불과 두어 길 되는 공간에서도 뛰놀 수 있고 쑥대밭 사이에서도 자유로이 날 수 있으니,이 또한 최대의 소요(逍遙)가 아닌가? 어째서 대붕처럼 날아야만 제일이란 말인가?"라고 한다.
작은 지혜(小知)는 큰 지혜(大知)에 미치지 못하고,짧은 시간(小年)은 긴 시간(大年)에 미치지 못한다.
하루살이가 밤과 새벽을 알 리 없고 여름벌레가 눈과 얼음을 알 리 없는 것이다.
이것이 큼(大)과 작음(小)의 차이이다.
새끼 비둘기가 어찌 대붕의 뜻을 알겠는가?
* 고려대 2005학년도 정시 논술문제 해설
독창적인 답안보다 독해력ㆍ이해분석력을 요구해!
이제 본격적인 정시 논술 시즌이 다가왔어. 이번엔 2005학년도 고려대학교 정시 문제를 볼텐데,고려대는 매년 거의 고정된 형태로 출제되기 때문에 반드시 살펴볼 필요가 있어.우선 고려대 입학처에서 밝힌 출제 방향을 들어보자.
"수험생들의 독해력과 사고력 및 문장력을 합리적이며 객관적으로 평가하고자 합니다.
지나치게 어려운 내용의 제시문이나 고등학생 수준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는 피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아주 독창적인 답안을 요구하는 문제도 피하고자 합니다.
평소 일정 수준 이상의 독서 경험을 가지고 있고, 또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사고하면서 공부했으며,아울러 자신의 생각을 정확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학생이라면 충분히 좋은 답안을 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고려대학교 논술고사는 어떤 문제에 대해 주체적이고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과 정확한 문장력을 평가해 수학능력시험과 상호 보완적인 선발방식이 되고자 합니다."
입학처가 밝힌 출제 방향처럼 고려대는 독창성보다는 독해력과 이해분석력을 중시한다고 볼 수 있어.고려대 입학설명회에서도 매번 강조하는 게 이해분석력과 치밀함이거든.제시문을 주며 공통된 주제를 찾고,제시문들 간의 관계를 밝히라고 주는 문제 자체가 수험생이 얼마나 제시문을 제대로 이해했는가 하는 이해분석력을 많이 묻는 문제라고 봐야겠지.
◆ 제시문 분석
첫 번째 제시문은 '단순하고 작은 것이 합리적'이라는 거야.오늘날에는 거대조직을 지향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당연하게 보일 수는 있어.하지만 이러한 거대주의는 개인을 큰 기계의 일개 부품으로 전락시키고,도덕적 충동에 따라 행동하려는 개인의 자유를 빼앗으며,그들에게 좌절감과 무기력감만 심어준다는 거야.
두 번째 제시문은 '큰 것과 작은 것의 차이는 상대적'이라는 거야.크고 작음은 상대적인 것으로,대상의 크기는 인식 주체의 상황과 대상의 배경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다는 것이지.또한 극미하거나 극대의 상태에서는 크기의 비교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내용도 담고 있어.
세 번째 제시문은 '작은 단위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어.이 제시문에서는 대면관계가 가능한 단위에서 생성되는 구체성의 원리가 도시,국가와 민족,그리고 세계 등 보다 큰 규모의 집단에까지도 확대될 수 있길 기대하고 있어.
네 번째 제시문은 '큰 것의 위대성'에 대해 말하고 있어.이 제시문은 현실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려고 할 때 정신은 크고 넓은 세계를 향한 포부와 기상을 지닌다는 '장자' 원문의 의미를 살리면서,대(大)의 가치를 예찬하는 방향으로 재구성된 거야.
제시문들을 종합해 보면 제시문 (1)은 큰 것의 한계를 주장하고 있고,제시문 (2)는 큰 것과 작은 것에 대한 인식의 상대성을, 제시문 (3)은 작은 단위의 중요성을,제시문 (4)는 큰 것의 절대적 우위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어.그리고 제시문들의 공통 주제는 '큰 것과 작은 것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지.
◆ 고려대 논술 문제의 특징
고려대만큼 다양한 주제를 두루 다룬 대학은 아마 없을거야.주제로만 봐서는 워낙 방대해 어떻게 대비할지 막막하고 손을 놓게 되는 경우가 생겨.하지만 내면을 보면 주제는 다양하지만 언제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사회 문제를 다룬다고 볼 수 있어.일반적인 논술의 소재나 주제가 그렇듯이 말야.
고려대 논술 문제에서는 보통 크게 세 가지를 요구해.'제시문의 공통 주제를 밝히고''제시문 간의 관계를 설명하고''그에 대한 자기 견해를 논술하라'는 것이지.이 중 핵심이자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이 '제시문 간의 관계'야.그런데 그 관계의 가장 큰 뼈대는 '일반(원리)'-구체(적용)라고 할 수 있어.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다양한 제시문이 배치되고.이러한 관점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자.이 문제의 키 포인트인 제시문 (2)를 잘 활용하면,'큰 것'과 '작은 것'은 상대적일 뿐만 아니라 우주 만물의 무한한 연결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거야.
이를 제시문 (1)에 적용하면 거대조직이 개인을 무기력하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거대조직을 만들고 기꺼이 거기에 종속되는 것은 개인들이라 할 수 있지.즉 개인과 사회를 구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거야.제시문 (3)은 비록 나약한 개인일 뿐이지만 그들의 구체적인 삶과 만남(작음)의 확장(큼)으로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어.그런데 문제는 제시문 (4)야.갑자기 '큰' 대붕이 나오잖아.하지만 대붕의 크기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지.즉 거대조직이 끼치는 폐단조차 대붕처럼 우주를 품는 자세를 가진 개인이라면 극복가능하다는 거야.정리하자면,현대인의 문제(제시문 1),큼과 작음을 이해하기 위한 원리(제시문 2),원리의 구체적인 적용(제시문 3),이를 위한 자세(제시문 4)의 연관관계라고 볼 수 있을거야.
아니면 이런 식의 접근도 가능할 거야.
1. 제시문 (1),(3)에 동의하는 경우
우선 제시문 (1)과 (3)을 묶어 '작고 단순한 것이 합리적'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경우야.이 입장에서는 제시문 (1)에 동조하면서 제시문 (4)의 주장인 '큰 것의 위대함'을 비판할 수 있겠지.
2. 제시문 (4)에 동의하는 경우
제시문 (4)와 같이 '큰 것은 위대하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경우야.이 경우 제시문 (1)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거대 조직의 장점을 부각시켜야 할 거야.
3. 제시문 (2)에 동의하는 경우
끝으로 제시문 (2)와 같이 크고 작은 것의 개념은 상대적이니 구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경우야.이 경우는 제시문 (1)과 (3)의 '작고 단순한 것이 합리적'이라는 주장과 제시문 (4)의 '큰 것이 위대하다'는 주장 모두를 비판하고 있으므로 조직의 크기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강조하면 될 거야.이 경우는 흑백논리의 갈등을 조정할 수 있을거야.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크기가 아니라는 거지.
소형 반도체칩 하나에 도서관 하나 크기의 정보가 들어갈 수 있듯이 단순히 물리적인 크기는 의미가 없고 그것의 파급효과 크기를 중시하는 태도야.따라서 앞서 논한 각 주장의 문제점을 모두 거론하면서 크고 작은 것의 개념이 상대적인 것이라는 주장으로 마무리할 수 있겠지.
고려대 논술 문제는 논제가 정형화되어 있어.그러니 우선 공통 주제를 찾는 연습을 많이 하고, 제시문들 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 집중해야 될거야.제시문들 간의 관계를 파악할 때는 단순히 제시문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말고,어떤 유기적인 관계를 찾아내는 게 중요해.그래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야겠지.
이기드온 S·논술 선임연구원 LKDO@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