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파워 집단,어린이들을 공략하라.' 최근 미국에서 어린이들이 장난감은 물론 자동차 TV 컴퓨터 가구 등 가정의 각종 제품 구입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가계 소비의 결정권자'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기업들은 인터넷이나 케이블TV를 통해 아이들 마음 잡기에 전력을 쏟아붓고 있다.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1조달러 키즈(Trillion-dollar kids)'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마케팅 전문가인 제임스 맥닐의 분석을 인용,"지난해 미국의 14세 이하 어린이들이 소비에 관여한 규모가 7200억여달러로 1조달러에 육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미국 전체 가계 소비의 47%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다.

특히 아이들이 구매에 영향력을 행사한 7200억여달러 중 정작 어린이용 제품 구입은 400억달러 정도에 그쳤다.

그만큼 어린이들이 부모의 소비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얘기다.

기업들은 이러한 어린이들 마음을 잡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 혼다는 디즈니의 ABC 키즈 채널에서 자동차 광고를 조만간 내보낼 예정이다.

GM은 고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허머'를 홍보하는 어린이용 사이트(Hummerkids.com)도 만들었다.

이 사이트는 '허머 색칠공부','허머 컴퓨터 게임','나만의 허머 만들기' 등 어린이를 끌어들이기 위한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4륜 오토바이(ATV) 생산회사인 캔암도 GM과 비슷하게 자사 웹사이트에서 어린이용 홍보게임을 제공하고 있다.

케이먼군도 관광청은 어린이들이 가족 여행지를 정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한다는 점을 감안,어린이 케이블 채널 니켈로디언에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호텔업체인 비치 리조트도 어린이 TV 방송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를 활용해 자사 리조트를 홍보하고 있다.

기업들의 이러한 동심 잡기는 가전제품과 바비큐용 석쇠에서 보트에 이르기까지 산업 전체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특히 요즘 아이들이 과거에 비해 미디어를 접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기업들의 어린이 마케팅은 주로 인터넷과 케이블TV 채널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기업들이 이 같은 광고와 마케팅을 통해 미래의 최대 소비자이기도 한 어린이를 '가정 내 마케팅 담당자'로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키즈 산업'의 확대는 인구 대국인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중국에선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 때문에 형제가 없이 독자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른바 '소황제'로 불리는 이러한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가계 소비의 중심이 되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 14살 이하 어린이는 약 3억명으로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이들 소황제 소비시장도 매년 20% 이상 커지고 있다.

도시 지역에서는 어린 자녀에게 들어가는 돈이 부모 자신들을 위한 지출보다 많은 경우도 허다하다.

홍콩 무역발전국 보고서를 보면 완구류의 경우 지난해 총 판매액이 100억위안(약 1조3000억원)을 넘어섰고,매년 판매액이 40%씩 늘고 있다.

이는 전체 소비증가율 10%를 훨씬 웃도는 것이다.

중국의 아동교육시장 역시 호황이다.

1998년 중국에 진출한 다국적 유치원 'RYB'는 연간 매출액이 2000만위안(약 260억원)에 이른다.

이 유치원은 하루 8시간,주 5일 수업에 한 달 수업료가 1만위안(약 130만원)으로 무척 비싸지만 돈 있는 젊은 부모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키즈산업이 명품화되고,아이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기업들의 광고 공세가 이뤄지는 것에 대해 지나친 상업주의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아동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데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 시민단체 CCFC의 관계자는 "상업주의가 부모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코노미스트 역시 "어느 기업이 허위·과장광고로 어린이들을 속일 경우 이들이 이를 쉽게 잊지 않아 그 기업은 미래 고객을 영원히 잃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정락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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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키즈산업은… 매년 20%씩 성장 올해 18조원규모

저출산 문제를 겪고 있는 한국에서도 아이 수는 줄고 있지만 '키즈산업'의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 키즈산업의 규모는 2003년 10조원에서 매년 약 20%씩 성장해 올해엔 18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출판계의 경우 어린이 출판 시장의 규모가 학습참고서 시장에 이어 두 번째를 차지할 정도로 키즈시장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최근엔 어린이 시장이 따로 형성되지 않았던 분야에서도 키즈산업이 특화되고 있다.

아동 전문병원이 이러한 경우다.

아이들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라 하면 으레 소아과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최근엔 한의원,치과 등도 아이들만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병원들은 중앙 홀을 원형의 놀이공간으로 꾸며 놓고,벽에는 애니메이션 스크린 등을 설치하며 아이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의사들도 만화 캐릭터를 새겨 넣은 가운을 입고 진료한다.

어린이 미용실도 새로운 틈새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다.

서울 강남 등지에 있는 어린이 전용 미용실에선 아이들이 모형 자동차에 올라탄 채로 머리를 자르거나 파마를 한다.

기다리는 동안엔 미용실 한쪽에 마련된 놀이공간에서 책을 읽거나 컴퓨터 게임도 즐길 수 있다.

일부 백화점에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키즈 카페'가 생겨나고 있다.

또 어린이 화장품 시장도 독자적인 영역으로 성장하고 있다.

현재 어린이 화장품 시장 규모는 성인 시장의 약 30%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밖에 어린이용 펀드와 같은 금융상품이나 어린이용 헬스기구,휴대폰과 같은 키즈 상품들이 속속 나오면서 키즈산업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