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11월24일자 A1면


시중 은행들이 예금으로 받은 돈의 일정액을 떼내 무이자로 둬야 하는 지급 준비금이 늘어남에 따라 연간 2200억원 정도의 비용을 추가로 부담하게 됐다.

은행들이 이 같은 부담 증가분을 고객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큰 만큼 대출 금리가 0.1~0.2% 정도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23일 회의를 열고 요구불 예금과 수시입출식 예금의 지급 준비율을 현행 5%에서 7%로 올리기로 했다.

반면 장기주택마련저축 근로자우대저축 등 장기저축성 예금에 대해서는 지급 준비율을 현재 1%에서 0%로 인하,장·단기 예금의 지급준비율 격차를 종전 4%포인트에서 7%포인트로 확대하기로 했다.

바뀐 지급준비율 제도는 오는 12월23일부터 적용된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작년 10월부터 지난 8월까지 다섯 번에 걸쳐 콜금리를 인상했으나 금융회사의 여신이 비교적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며 "지준율 인상 조치로 금융회사의 신용공급 여력이 조금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현승윤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hyunsy@hankyung.com

-----------------------------------------------

[뉴스로 읽는 경제학] 지급준비율 인상하면 무엇이 달라지나?
한국은행이 16년 만에 지급준비율(지준율) 인상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오는 12월23일부터 요구불예금의 지준율을 현행 5%에서 7%로 올리겠다는 것이다.

지준율이란 시중은행에 대해 예금의 일정 비율을 한은에 예치케 하는 현금의 비율로,이를 높이면 은행이 대출 등에 운용할 수 있는 자금량이 줄어들어 결과적으로 시중의 유동성을 빨아들이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물론 한은 측은 콜금리 정책의 보완수단으로 지준율을 인상했다고 주장한다.

콜금리 목표와 시중 유동성은 기계적으로 맞아 떨어지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금리 위주의 통화정책을 그대로 유지하되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지준율 정책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견해 또한 만만찮다.

금리 등 간접적인 수단보다는 통화량 자체를 직접 통제하는 방식을 동원함으로써 갖가지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한은이 이례적으로 16년 만에 지준율을 인상하고 나선 까닭은 무엇인가.

이번 조치로 인한 부작용은 없을 것인가.


○한은,"지준율 인상은 금리정책의 보완 수단"

한은은 지준율을 인상하면 통화증가 속도가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하지만 콜금리를 인상할 때에 비해선 파급 효과가 상당히 작다고 주장한다.

콜금리 인상이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반면 지준율 조정은 은행의 유동성에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시장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은은 또 지준율 인상이 금융시장을 통한 자원 배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상당 기간이 걸릴 것이며,이번 조치를 콜금리 목표조정과 연결짓는 것은 무리라고 강조한다.

특히 지준율 인상이 주택담보 대출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부동산시장을 보고 지준율을 조정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이번 조치로 5조원 상당의 지급준비금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금융회사의 수지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아울러 콜금리 목표를 변경해 금융 흐름에 영향을 주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만큼 앞으로 지준율 정책을 자주 쓰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통화량 직접 통제에 따른 부작용 우려

물론 지준율 인상은 부동산투기 등 부작용을 낳고 있는 과잉 유동성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특히 통화안정에 대한 의지를 표명함으로써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해외를 통한 자금조달 증가로 콜금리조절 효과가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고 보면 지준율 조절을 새로운 정책수단으로 활용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금리 등 간접적인 수단보다는 통화량 자체를 직접 통제하는 방식을 동원할 경우 적지 않은 부작용이 유발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지준율 인상이 단기간에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지준율을 2%포인트 올리면 본원통화는 5조원이 줄어들게 되지만,이 본원통화가 시중은행에 흘러다니면서 창출하는 신용(통화승수는 25배 정도)까지 감안하면 125조원에 이르는 유동성을 빨아들이는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이는 시중 단기 유동성의 20%를 넘는 규모로,설비투자 등 실물경제로 흘러들어갈 돈을 줄여 경기침체를 심화시킬 수 있음은 물론 자칫 일본에서처럼 부동산 거품 붕괴를 초래할 위험성조차 배제하기 어렵다.


○시장 충격 줄이는 대책 마련 서둘러야

하지만 지준율 조절은 특정 예금은행을 대상으로 강제적으로 이뤄지고,예측을 하기도 어렵다.

한마디로 시장 친화력이 떨어지는 비상적 통화조치라는 얘기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번 조치로 인해 그동안 한은이 일관되게 견지해 온 '중앙은행은 부동산시장을 타깃으로 삼아 통화정책을 펴지 않는다'는 원칙이 흔들리게 됐다는 점이다.

따라서 통화당국은 지준율 정책이 안고 있는 이러한 부작용들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보완 대책을 마련하는 데 온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주택 실수요자에게 미칠 피해와 시장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하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시중자금이 생산적인 부문으로 흐를 수 있도록 투자환경을 개선하고,넘치는 외화를 밖으로 돌릴 수 있는 대책도 마련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hankyung.com

-----------------------------------------

[ 용어풀이 ]

◆지급준비율(reserve ratio)=고객의 예금인출에 대비,은행들이 예금의 일정부분을 한국은행에 맡겨두는 지급준비금의 적립비율을 말한다.

원래 예금자보호를 위해 도입됐지만 지금은 통화량을 조절하는 중앙은행의 금융정책수단으로 활용된다.

재할인제도,공개시장조작과 함께 3대 통화정책 수단으로 통한다.

중앙은행은 시중에 자금이 너무 많이 풀려 있다고 판단되면 지준율을 높여 통화량을 줄이고 반대의 경우 지준율을 낮춰 통화량을 늘린다.


◆콜금리(call rate)=금융회사 간 초단기로 돈을 빌리고 꿔줄 때 적용하는 금리를 뜻한다.

금융회사들이 돈이 넘치거나 모자랄 때 서로 돈을 꾸거나 빌려주는 콜시장에서 이자의 기준이 된다.

꿔주는 돈을 콜론(call loan),빌리는 돈을 콜 머니(call money)라 한다.

매월 첫째 목요일에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에서 그 달의 콜금리 운용목표가 결정된다.

물가가 상승할 우려가 있으면 콜금리를 인상해 시중자금을 흡수하며 반대의 경우 콜금리를 인하하게 된다.


◆통화승수(money multiplier)=본원통화(현금통화에 지불준비금을 합친 것)를 증가시킬 경우 시중은행에 의해 얼마나 많은 파생통화가 공급되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 통화량을 본원통화로 나눈 값으로,현금통화율과 예금은행의 지급준비율이 작을수록 통화승수는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