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1853~90)를 모르는 중학생은 아마 없을 것이다.

네덜란드 출신의 후기인상파 화가.

'해바라기'와 '별이 빛나는 밤'을 남겼으며 어느 날 발작을 일으켜 한 쪽 귀를 뎅겅 자른 사람, 1890년 그 유명한 '자화상'을 그린 두 달 뒤 권총자살로 37세의 생을 끝낸 정신이상 증세의 화가.

고흐에 대한 이 정도는 외우기 좋게 교과서에 실린 정보이고 똑똑한 중학생에겐 퀴즈감도 안 된다.

조선시대 최북(崔北)이란 화가를 학생에게 물어보자. 학교 공부에만 열심이라면 고등학생이라도 대답이 궁할 수밖에 없다.

미술을 전공하는 대학생마저 "최북이 누구인지 긴가민가해 하더라"는 교수의 얘기도 있었다.

한 쪽 귀를 잘라버린 반 고흐는 알면서 한 쪽 눈을 제 손으로 찔러버린 조선의 최북은 왜 모르느냐는 한탄이었다.

최북.미술사가들의 최근 연구 결과로 보면 그는 1712년 생이다.

숙종대에 태어나 영조대까지 살다가 겨울밤 홑적삼을 입고 눈구덩이에서 동사(凍死)했다.

이름의 '北'자를 반으로 쪼개 자(字)를 칠칠(七七)이라 했고 호는 붓(毫) 하나로 먹고 사는(生)사람이라는 뜻에서 호생관(毫生館)으로 불렸다.

칠칠이 사십 구,그의 자를 따라 49세에 죽으니 연대 잘 외우는 학생들에겐 반 고흐보다 기억하기 오히려 쉬울 것이다.

[손철주-그림,아는 만큼 보인다.]


사실 제도권 교육 내에서 칠칠 최북과 같은 인물에 관해 배우기는 힘들다. 영웅 위주로 서술된 국사교과서 안에서는 찾아볼 수도 없는 인물일 뿐더러 장승업이나 김홍도, 신윤복 등 익히 알려진 화가들에 관해 배우면서도 정작 머리에 남는 그들의 미술작품은 없다. 고작해야 미인도, 금강전도 같은 아주 유명한 작품들에 관한 지식만 잔상처럼 남을 뿐이다. 학생들은 학교 국사 교육을 '시체'라고 표현하기를 서슴지 않으며 현 국사 교육의 가장 큰 문제로 암기식 교육과 시대에 맞지 않는 교과서 구성을 꼽는다.

신수빈(춘천여고1) 학생은 "역사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시험 위주로 학습해야 하는 학교 국사공부에는 전혀 흥미를 못 붙이겠다"고 말했다.

코시안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실정에서 여전히 '단일민족국가'만을 강조하는 국사책은 새로운 개념의 민족과 국가를 반영하고 있지 않아 국민적 통합을 위한 민족의식 함양의 의미에서 빗나가고 있다.

부적절한 수업 시수도 문제다.

현재 일주일에 2~3시간 정도 배당되어 있는 국사시간은 고교 1학년 학생들이 2cm 두께의 국사교과서를 1년간 공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말 그대로 '마라톤 수업'이다.

이과를 선택한 석수안(춘천여고1) 학생은 "이과생이라고 국사를 안 배우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만 경제 정치 등으로 나눠진 국사 교과서는 혼란을 느끼게 되고,결국 기억에 남는 것은 별로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현재 사회과에 포함된 국사는 동북공정,백두산 공정에 관한 위기감으로 과목 독립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에 국사 편찬 위원회는 최근 '역사교육 발전 토론회'를 열어 사회과에서 역사과를 독립하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제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을 소개했다.

박지영 춘천여고 교사는 "국민으로서의 기본인 정신적 토대를 세우는 것이 가장 큰 역사 교육의 소명"이라며 역사를 필수과목으로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교환학생 자격으로 수학하고 있는 오정현양(16)은 "미국 학생들은 아무도 그들의 역사를 소홀히 하지 않고 망각하려 하지도 않는다"며 한국과 대조적이라고 말했다.

최북과 달리 권총자살한 반 고흐는 지금도 살아 있다.

유행가 [빈센트]에 실려서,박제된 역사를 가지고 열심히 외우기보다 잠깐이라도 살아 있는 역사를 배울 수 있기를 학생들은 원하고 있다.

김새롬 생글기자(춘천여고 1년) a_bomb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