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타계했다.

그는 온 생애를 바쳐 '경제를 살리려면 정부는 제발 가만히 있어라'고 주장해왔다.

우리나라는 사회주의권 국가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간섭을 많이 하는 큰 정부를 갖고 있다.

프리드먼의 공헌은 경제학계를 온통 지배하던 케인즈식 '정부 역할론'을 부정하고 자유시장에 대한 믿음을 되살려 놓은 데 있다.

그가 '부활한 애덤 스미스'라고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인플레이션은 장기적으로는 언제나 어디서나 통화량의 문제'라고 주장하며 현대 통화주의의 길을 열기도 했고 '개인의 창의성이야말로 사회 발전의 원천'이라는 주장을 다양한 연구를 통해 입증하기도 했다.

◆프리드먼 vs 케인즈

프리드먼은 경제학계는 물론 국가정책 결정 과정을 온통 장악하고 있던 케인즈 추종자들에 맞서 '작은 정부론'을 줄기차게 주장했다.

정부가 재정정책을 통해 국민경제의 총수요를 조절하면서 경기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케인즈의 이론이다.

하지만 프리드먼은 재정정책은 정치적으로는 그럴 듯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쓸모없는 정책이라며 반대를 분명히 했다.

자발적이고 합리적인 경제 주체들이 의사결정을 하고 시장이 이를 원만히 조정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맞섰다.

정부가 개입해 시장이 만들어 놓은 균형 상태를 인위적으로 고쳐놓으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케인즈는 1930년대 대공황이 전 세계 경제를 덮쳤을 당시 정부가 직접 돈을 쓰면서 수요를 창출하는 재정정책을 더 광범위하게 사용할 것을 주문했다.

공황 극복 과정에서 이 같은 주장은 상당히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케인즈의 이 같은 처방은 그 뒤 세계 각국이 정부 지출을 크게 늘리면서 경제를 조절하고 통제하게 된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프리드먼은 대공황의 원인을 유효 수요의 부족이 아니라 통화 공급의 부족에 따른 극심한 금융경색에서 찾으며 케인즈의 이론을 부정했다.

공황이 찾아온 것은 경제 활동이 위축되기 시작했는데도 중앙은행이 통화 공급량을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대폭 줄였기 때문이라는 것.그는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는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통화정책이 무력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큰 힘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해 재정정책이 정치논리에 따라 좌우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는 게 프리드먼의 핵심적인 주장이었다.

그는 이와 동시에 독립적인 중앙은행이 힘을 남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폐 공급량을 경제성장률을 따져 일정한 기준에 따라 매년 증가시켜 나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등 많은 전문가들이 신봉하는 '통화 준칙주의'다.

케인즈의 이론에 맞서면서 시작된 프리드먼의 경제이론은 어떻게 하면 정부의 이점을 살리면서 동시에 정부가 지닌 잠재적 위협을 극소화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발전됐다.

그가 평생을 두고 연구한 가격이론,중앙은행론,화폐이론,환율이론,실증주의적 경제학 방법론 등 학술적인 업적은 케인즈에 쏠려 있던 학계의 무게중심을 완전히 되돌려 놓는 성과를 거뒀다.

◆한국은 정부개입 홍수

프리드먼의 '작은 정부론'은 1980년대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대처 영국 총리의 정책의 근간이 됐다.

높은 세금과 비효율적인 정부 시스템이 경제의 활력을 죽이고 있다고 판단한 이들은 과감한 감세정책과 복지의 축소,노동시장 유연화 등을 통해 시장의 기능을 활성화시켰고 침체에 빠져있던 경제를 살려냈다.

현재 자유시장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대부분 국가의 경제전문가들은 프리드먼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게 문제다.

콜금리 결정을 코앞에 둔 한국은행을 청와대 비서관이 방문해 '압력'을 넣는 일까지 있었다.

또 한국은 '출자총액제한제' 등 기업 규제가 아직 살아 있는 나라다.

기업이 투자를 할 것이냐,말 것이냐는 선택의 문제에까지 정부가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집값을 잡겠다며 세금으로 부동산시장의 수요를 억제하려던 시도도 결국 물거품이 되어가고 있다.

정부조직의 비대화도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

2003년 136명이던 장·차관급이 이젠 150명을 헤아리게 됐고,청와대 비서실 직원 수만 500명을 넘겼다.

이름을 다 외우기도 힘든 각종 정부 위원회도 381개나 된다.

참여정부 4년 동안 공무원 월급으로 나간 돈만 75조원에 육박한다.

'시장의 실패'를 바로잡기 위한 정부의 역할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현 상황은 정부가 시장을 믿지 못하고,온갖 경제 문제에 모두 개입하는 것이 바로 문제임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프리드먼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이유다.

차기현 한국경제신문 생활경제부 기자 khcha@hankyung.com


프리드먼 누구인가

20세기 위대한 자유주의자 ‥ 1976년 노벨경제학상 받아

밀턴 프리드먼은 20세기 경제학계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자유주의 경제학자다.

그는 평생에 걸쳐 개인의 선택에 바탕을 둔 자유시장의 가치를 복권시키기 위해 학문적 정열을 불태웠다.

그에게는 '흔들림 없는 자유주의자''자유경쟁체제의 굳건한 옹호자''통화주의의 대부''작은 정부론의 기수''반(反) 케인즈 학파의 창시자' 등 다양한 이름이 따라다닌다.

미국 뉴욕의 유태계 헝가리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럿거스대와 시카고대 대학원(경제학)을 나와 루스벨트 대통령 때 연방정부 경제조사국에서 일했다.

당시만 해도 그는 철저한 케인즈주의자였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보는 경제현상이 케인즈 이론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뒤 '반 케인즈'의 선봉이 됐다.

1946년 컬럼비아대에서 박사를 받은 이후 1977년 은퇴할 때까지 줄곧 시카고대 교수로 있었다.

소비이론,통화정책 연구 등의 업적을 인정받아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고,아내 로즈 프리드먼과 함께 공영방송(PBS) 프로그램용으로 제작했던 '선택의 자유(Free to Choose)'를 1980년 책으로 펴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

1977년 "대학원생들의 답안지 채점하기가 점점 힘이 든다"는 말을 남기고 교수직을 내놓았고,샌프란시스코 부근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에서 연구생활을 계속해왔다.

지난 16일 샌프란시스코의 한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