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use he's a player that always wins,I didn't know whether I should congratulate him on finishing second."(그는 늘 이기는 선수였기 때문에,나는 그가 2위로 끝났을 때 뭐라고 축하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랐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운동을 직업으로 선택한 선수가 한 말이다.
그것도 즉석에서.
짐작했겠지만,그 주인공은 프로골퍼 양용은 선수(34)다.
양 선수는 지난 12일 중국 상하이 인근 골프장에서 벌어진 유럽프로골프투어 HSBC챔피언스대회에서 타이거 우즈,짐 퓨릭,레티프 구센,콜린 몽고메리,마이클 캠벨 등 세계적 선수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해 세계 골프계를 놀라게 했다.
이 대회 2위는 우즈였고,양용은은 시상대에 우즈와 나란히 앉아 이 말을 옆사람에게 한 것이다.
'골프 황제'는 이 말을 듣고 미소로 화답했다고 한다.
그 대회에는 최경주 선수(36)도 출전해 9위를 했다.
양용은 선수의 우승이 아니었더라면,최 선수의 9위도 칭찬받을 만한 것이었지만,양용은의 선전에 가려 크게 빛나지 않았다.
한국골프가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8년 박세리 선수가 미국에 진출해 메이저대회인 맥도날드LPGA챔피언십과 US오픈에서 잇따라 우승한 뒤 한국여자골프는 세계무대에서 미국 스웨덴 호주 등과 함께 '강호'로 자리매김해왔다.
하지만 남자골프는 달랐다.
최경주 선수 외에 재미교포 나상욱 선수(23)가 미국프로골프투어에서 활약하고 있으나 최 선수만이 2000년 이후 계속 시드(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권리)를 잃지 않고 세계랭킹 50위권 이내를 유지해오고 있다.
'한국 남자골프=최경주'라는 등식이 6년째 자리잡고 있을 무렵,이름조차 생소한 양용은 선수가 세계무대에 버젓이 이름을 알린 것이다.
미국투어에서 4승을 올린 최 선수와는 달리 양 선수는 유럽투어에서 이제 1승을 달성했기 때문에 세계적 선수가 됐다고 말하기에는 이르지만,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고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는데는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세계무대를 노크할 만한 선수가 없었던 한국남자골프.그런 불모지에서 일군 두 선수의 '성공 스토리'는 흡사한 점이 많다.
그러기에 골프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역경과 '핸디캡'을 딛고 일어섰다
최경주 선수는 전남 완도,양용은 선수는 제주 출신이다.
모두 고등학교만 졸업한 뒤 20세 전후로 골프에 뛰어들었다.
골프선수로서는 '늦깎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뒤늦게 골프에 입문한 것.그러다 보니 두 선수 앞에 가로놓인 장애물도 많았다.
한국에서는 비싼 운동인 골프를 하는 데 필요한 돈이 턱없이 부족했고,스승은커녕 변변히 라운드조차 할 형편이 못됐다.
어쩌다가 마음씨 좋은 스폰서가 나타나면 그들을 따라 골프장에 가는 것이 전부일 정도였다.
두 선수는 또 그 흔한 레슨 한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했다.
이른바 '독학파'였기 때문에 정규코스를 거친 다른 선수들에 비해 두세 배의 노력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골프연습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손님들이 다 간 뒤 '죽어라'고 볼을 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것은 돈이 안 들었고,'젊음'과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두 선수는 서양 선수들에 비해 체구가 작다.
키가 최경주 선수는 174㎝,양용은 선수는 177㎝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런 신체적 '핸디캡'을 탓할 한가로움도 그들에게는 없었다.
◆한 눈 팔지 않고 한 우물만 팠다
프로골퍼가 돈이 없을 때 빠질수 있는 가장 큰 유혹은 '골프 레슨'이다.
연습장에 오는 아마추어나 주니어 선수들에게 레슨을 해주면 먹고사는 데는 큰 지장이 없을 정도의 수입이 보장된다.
그러나 레슨을 하면 자신에게 투자하는 시간은 그만큼 줄어든다.
그외에도 '아마추어의 스윙을 고쳐주다 보면 자신의 스윙도 망가진다'는 불문율도 전해온다.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의 스윙을 지켜보다 보면 정상적이던 자기 스윙도 엉망이 돼버린다는 속설이다.
대부분의 프로골퍼들은 금전적 이유보다는 이런 이유 때문에 레슨을 금기시한다.
양용은 선수는 한때 집에 쌀이 떨어져 레슨을 할까,직업을 바꿀까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레슨을 하면 할수록 내 골프인생은 짧아진다'는 다짐 하나로 그 유혹을 참고 이겨냈다.
그때 월 50만원 안팎의 레슨비에 눈이 팔려 '토너먼트 프로'가 아닌 '레슨 프로'로 전업했더라면 오늘날 한 대회에서 8억원의 우승상금을 거머쥘 수 있었을까? 최경주 선수도 1993년 국내 프로데뷔 후 1995년 첫 우승까지 '무명시절'에 레슨 유혹을 받았으나 세계적 골프선수가 되겠다는 목표 하나로 단호히 뿌리쳤다.
실제 최경주가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프로 동기생)는 지금 국내에서 레슨 프로를 하고 있다.
◆세계화에 대한 준비를 착실히 했다
두 선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긴 했지만 그 또래의 국내 운동선수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공부나 제대로 했겠는가.
최경주는 2000년 미국 진출 뒤 영어가 달리자 한국 학생들이 보는 영어교과서를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호텔이나 비행기 안에서 보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언제까지나 통역을 두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하고 생각했을 법하다.
최경주는 지금 유창하지는 않지만,의사소통이나 우승소감을 말하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영어를 구사한다.
양용은도 2004년 일본진출 후 아예 전담 캐디를 호주 사람으로 바꿨다.
캐디 역할은 물론 장차 미국무대 진출을 염두에 두고 '영어 교사' 역할까지 노린 포석이었다.
그때부터 틈틈이 영어를 익혀왔고,이번에 시상대에서 '감히' 우즈에게 먼저 말을 걸었던 것이다.
남아공 출신의 세계적인 프로골퍼 게리 플레이어는 "준비를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운(運)도 많이 따른다"고 했다.
세계적 선수가 되겠다는 큰 꿈을 지닌 사람은 준비하는 자세부터가 유달랐다.
◆기본 외에 '주특기'를 하나씩 갖고 있다
남들 만큼 해서는 돋보일 수 없다는 사실은 스포츠 세계에서 더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경쟁자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주특기가 있다면 역경에 처하거나 결정적 순간에 자신감의 원천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최경주 선수는 벙커(모래로 된 일종의 함정)에서 샷을 하는 능력이 출중하다.
양용은 선수는 제주 출신답게 바람이 세차게 부는 악조건속에서도 평상시와 같은 성적을 내곤 한다.
골프를 치는 사람들은 벙커에서 하는 샷과 바람속에서 하는 샷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골프가 직업인 프로라도 두 상황에서는 그다지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두 선수는 그러나 남들이 어려워하는 샷을 오히려 장점으로 키워 주무기로 만들었다.
차별화를 통해 성공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너무나도 멋진 두 남자가 아닌가!
김경수 한국경제신문 골프전문기자 ksmk@hankyung.com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운동을 직업으로 선택한 선수가 한 말이다.
그것도 즉석에서.
짐작했겠지만,그 주인공은 프로골퍼 양용은 선수(34)다.
양 선수는 지난 12일 중국 상하이 인근 골프장에서 벌어진 유럽프로골프투어 HSBC챔피언스대회에서 타이거 우즈,짐 퓨릭,레티프 구센,콜린 몽고메리,마이클 캠벨 등 세계적 선수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해 세계 골프계를 놀라게 했다.
이 대회 2위는 우즈였고,양용은은 시상대에 우즈와 나란히 앉아 이 말을 옆사람에게 한 것이다.
'골프 황제'는 이 말을 듣고 미소로 화답했다고 한다.
그 대회에는 최경주 선수(36)도 출전해 9위를 했다.
양용은 선수의 우승이 아니었더라면,최 선수의 9위도 칭찬받을 만한 것이었지만,양용은의 선전에 가려 크게 빛나지 않았다.
한국골프가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8년 박세리 선수가 미국에 진출해 메이저대회인 맥도날드LPGA챔피언십과 US오픈에서 잇따라 우승한 뒤 한국여자골프는 세계무대에서 미국 스웨덴 호주 등과 함께 '강호'로 자리매김해왔다.
하지만 남자골프는 달랐다.
최경주 선수 외에 재미교포 나상욱 선수(23)가 미국프로골프투어에서 활약하고 있으나 최 선수만이 2000년 이후 계속 시드(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권리)를 잃지 않고 세계랭킹 50위권 이내를 유지해오고 있다.
'한국 남자골프=최경주'라는 등식이 6년째 자리잡고 있을 무렵,이름조차 생소한 양용은 선수가 세계무대에 버젓이 이름을 알린 것이다.
미국투어에서 4승을 올린 최 선수와는 달리 양 선수는 유럽투어에서 이제 1승을 달성했기 때문에 세계적 선수가 됐다고 말하기에는 이르지만,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고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는데는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세계무대를 노크할 만한 선수가 없었던 한국남자골프.그런 불모지에서 일군 두 선수의 '성공 스토리'는 흡사한 점이 많다.
그러기에 골프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역경과 '핸디캡'을 딛고 일어섰다
최경주 선수는 전남 완도,양용은 선수는 제주 출신이다.
모두 고등학교만 졸업한 뒤 20세 전후로 골프에 뛰어들었다.
골프선수로서는 '늦깎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뒤늦게 골프에 입문한 것.그러다 보니 두 선수 앞에 가로놓인 장애물도 많았다.
한국에서는 비싼 운동인 골프를 하는 데 필요한 돈이 턱없이 부족했고,스승은커녕 변변히 라운드조차 할 형편이 못됐다.
어쩌다가 마음씨 좋은 스폰서가 나타나면 그들을 따라 골프장에 가는 것이 전부일 정도였다.
두 선수는 또 그 흔한 레슨 한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했다.
이른바 '독학파'였기 때문에 정규코스를 거친 다른 선수들에 비해 두세 배의 노력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골프연습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손님들이 다 간 뒤 '죽어라'고 볼을 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것은 돈이 안 들었고,'젊음'과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두 선수는 서양 선수들에 비해 체구가 작다.
키가 최경주 선수는 174㎝,양용은 선수는 177㎝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런 신체적 '핸디캡'을 탓할 한가로움도 그들에게는 없었다.
◆한 눈 팔지 않고 한 우물만 팠다
프로골퍼가 돈이 없을 때 빠질수 있는 가장 큰 유혹은 '골프 레슨'이다.
연습장에 오는 아마추어나 주니어 선수들에게 레슨을 해주면 먹고사는 데는 큰 지장이 없을 정도의 수입이 보장된다.
그러나 레슨을 하면 자신에게 투자하는 시간은 그만큼 줄어든다.
그외에도 '아마추어의 스윙을 고쳐주다 보면 자신의 스윙도 망가진다'는 불문율도 전해온다.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의 스윙을 지켜보다 보면 정상적이던 자기 스윙도 엉망이 돼버린다는 속설이다.
대부분의 프로골퍼들은 금전적 이유보다는 이런 이유 때문에 레슨을 금기시한다.
양용은 선수는 한때 집에 쌀이 떨어져 레슨을 할까,직업을 바꿀까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레슨을 하면 할수록 내 골프인생은 짧아진다'는 다짐 하나로 그 유혹을 참고 이겨냈다.
그때 월 50만원 안팎의 레슨비에 눈이 팔려 '토너먼트 프로'가 아닌 '레슨 프로'로 전업했더라면 오늘날 한 대회에서 8억원의 우승상금을 거머쥘 수 있었을까? 최경주 선수도 1993년 국내 프로데뷔 후 1995년 첫 우승까지 '무명시절'에 레슨 유혹을 받았으나 세계적 골프선수가 되겠다는 목표 하나로 단호히 뿌리쳤다.
실제 최경주가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프로 동기생)는 지금 국내에서 레슨 프로를 하고 있다.
◆세계화에 대한 준비를 착실히 했다
두 선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긴 했지만 그 또래의 국내 운동선수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공부나 제대로 했겠는가.
최경주는 2000년 미국 진출 뒤 영어가 달리자 한국 학생들이 보는 영어교과서를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호텔이나 비행기 안에서 보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언제까지나 통역을 두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하고 생각했을 법하다.
최경주는 지금 유창하지는 않지만,의사소통이나 우승소감을 말하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영어를 구사한다.
양용은도 2004년 일본진출 후 아예 전담 캐디를 호주 사람으로 바꿨다.
캐디 역할은 물론 장차 미국무대 진출을 염두에 두고 '영어 교사' 역할까지 노린 포석이었다.
그때부터 틈틈이 영어를 익혀왔고,이번에 시상대에서 '감히' 우즈에게 먼저 말을 걸었던 것이다.
남아공 출신의 세계적인 프로골퍼 게리 플레이어는 "준비를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운(運)도 많이 따른다"고 했다.
세계적 선수가 되겠다는 큰 꿈을 지닌 사람은 준비하는 자세부터가 유달랐다.
◆기본 외에 '주특기'를 하나씩 갖고 있다
남들 만큼 해서는 돋보일 수 없다는 사실은 스포츠 세계에서 더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경쟁자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주특기가 있다면 역경에 처하거나 결정적 순간에 자신감의 원천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최경주 선수는 벙커(모래로 된 일종의 함정)에서 샷을 하는 능력이 출중하다.
양용은 선수는 제주 출신답게 바람이 세차게 부는 악조건속에서도 평상시와 같은 성적을 내곤 한다.
골프를 치는 사람들은 벙커에서 하는 샷과 바람속에서 하는 샷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골프가 직업인 프로라도 두 상황에서는 그다지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두 선수는 그러나 남들이 어려워하는 샷을 오히려 장점으로 키워 주무기로 만들었다.
차별화를 통해 성공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너무나도 멋진 두 남자가 아닌가!
김경수 한국경제신문 골프전문기자 ksm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