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대한결핵협회는 전국의 학교와 공공기관 등을 대상으로 크리스마스 실 판매를 개시했다. 올해로 54년째 이어지고 있는 실 모금운동은 결핵협회에서 결핵 퇴치 기금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전개하는 최장기 모금활동 중 하나이다. 그런데 사랑의 상징이었던 실의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 실 판매가 반강제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 학생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메일도 휴대폰 문자메시지에 밀려나는 세상에 누가 실을 붙여가며 우편을 씁니까? 언젠가는 써야지 하며 서랍 속에 방치하다가 결국 책상 정리할 때 버리는 거죠."(서울 개포고 K군) 학생 입장에서 실은 무용지물이다. 취지는 이해하지만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고 쓸모없다는 게 학생들의 여론이다.

결핵협회는 2003년부터 실을 스티커 방식으로 변경하여 팬시용품 등의 용도로 활용할 수 있게 했지만 학생들은 "3000원짜리 실을 살 바에야 차라리 문구점에서 예쁜 300원짜리 스티커를 사겠다"며 여전히 회의적이다. 학교 곳곳의 책상과 바닥에는 학생들이 3000원을 내고 구매한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학생들에게 실을 판매해야 하는 담임교사와 학급 임원 학생들도 고역이다. 서울 J고에서 학급 회장을 맡고 있는 주모 학생은 "12개의 실을 할당받았지만 아이들은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는다. 한 학생을 지명해서 사달라고 부탁하면 '왜 하필 나냐?'며 화를 내는데 할 말이 없다. 담임선생님 눈치가 보여 팔기는 팔아야겠는데 아이들한테 사라고 하기도 난감하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에 할당량을 자비로 구매하여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는 교사들도 생겨났다. 작년부터 제자들에게 실을 나누어 주는 서울 D고교의 한 선생님은 "부담은 되지만 아이들에게만 책임을 떠넘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이들에게 강매하면 도리어 '사랑의 실천'이라는 실의 근본 취지에 대한 반감마저 생겨날 수 있어. 그것만은 막아야지. 1년에 한 번인데 뭐"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반면 일부에서는 구매를 강권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서울 J고의 한 학급에서는 팔리지 않던 실이 '실을 구입하지 않은 학생은 생활기록부에 그대로 반영하겠다'는 담임교사의 강매 아닌 강매로 금세 동이 났다. 이 때문에 학생과 담임고사 간에 골이 깊어졌다. 대한결핵협회의 홈페이지에는 시대에 역행하는 실에 대한 누리꾼의 비난의 목소리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지만,협회는 '실은 강매가 아니며 자발적인 사랑의 실천이다'라는 말을 몇 년째 반복할 뿐이다.

실을 통해 주로 조성되는 결핵성금은 결핵환자 예방과 치료,북한 결핵 퇴치,취약계층 결핵환자 보호시설 지원 등에 사용된다. 크리스마스 실이 무엇인지,어디에 쓰이는지 등 그 존재가치를 다시 한 번 학생들에게 상기시키고 자발적 동참을 유도하기 위한 현실적이며 효율적인 모금방법이 절실한 때다.

최우석 생글기자(잠실고 2년) dear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