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들의 자사주 매입이 잇따르고 있다.

자사주란 말 그대로 자기 회사의 주식이다.

한국경제신문 증권면을 보면 지난 10월 한 달 동안에만 10여개 기업이 자사주 매입을 결의했다.

금액으로 따져도 1조원어치가 넘는다.

사실 자사주 매입 사례가 늘어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벌써 수년째 지속되고 있는 현상이다.

직접금융시장으로 불리는 주식시장은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 등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기업들은 기업공개(IPO:Initial Public Offering)나 증자(增資:자본금 늘림),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한다.


하지만 최근 수년 새 증시를 통한 자금 조달 기능이 현저히 약해지고 있다.

기업공개 숫자가 줄어들 뿐 아니라 증자나 회사채 발행 건수도 감소하고 있다.

대신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등을 통해 기업들이 거꾸로 증시에 쏟아붓는 돈이 훨씬 더 많아지고 있다.

이러다 보니 증시가 기업들에 자금을 공급하는 기능보다는 오히려 기업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기업들은 왜 자사주를 사들이고 있으며,자사주 매입은 주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자세히 알아보자.

○자사주 매입은 다목적용

기업들이 자사주를 매입하는 데는 여러가지 목적이 있다.

우선 가장 흔한 것이 주주가치 증대 목적이다.

실제 상당수 기업들은 연말이나 연초에 연간 사업계획을 내놓으면서 '올해나 내년에는 주주가치 증대를 위해 얼마만큼의 돈을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에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다.

어떤 기업은 아예 '작년에 벌어들인 이익의 50%를 주주가치 증대에 투입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한다.

자사주를 매입하면 주가를 끌어올리는 효과가 생겨 결과적으로 주주가치 증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자사주 매입의 또다른 이유는 경영권 방어다.

대주주 지분이 취약한 우량 기업들에 대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노리는 세력들이 많아지면서 경영권 방어는 기업들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대주주들이 경영권을 방어하는 최고 수단은 우호지분을 늘리는 것이다.

자사주 매입도 그 중 하나다.

물론 자사주는 상법상 의결권이 없다.

따라서 경영권 분쟁이 벌어질 경우 직접적인 우호지분으로 활용할 수는 없지만 자사주를 제3자 우호세력(백기사)에 넘기면 의결권이 부활하면서 경영권 방어에 이용할 수 있다.

○주가에는 긍정적 효과

자사주 매입은 주가에 긍정적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목적 중 하나가 주가 부양을 통한 주주가치 증대에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흔히 시장이 침체기에 들어서거나 악재가 터져 주가가 하락할 경우 자사주를 매입하는 식으로 주가 하락 방어에 나선다.

주가는 수요(매수세)와 공급(매도세)에 의해 결정되는데 기업이 자기 주식을 장내에서 대량으로 매입해들어가면 매수세가 그만큼 탄탄해져 주가 하락을 막을 수 있다.

또 기업들이 자사주를 사들이면 시중에 유통되는 주식 수가 그만큼 줄어들어 희소성에 따른 주가 부양 효과도 생긴다.

실제 대규모 자사주 매입 발표가 나오면 해당 기업의 주가는 오름세를 보이는 경향이 강하다.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을 결의하면 보통 매입 규모와 기간,매입 단가 등을 공개한다.

기간은 한 달이 될 수도 있고,길게는 3개월이 될 수도 있다.

이 기간에 매일 장내에서 정해진 물량을 사들이는 것이다.

매입 단가는 일반적으로 전날 종가가 기준이다.

이 때문에 매입하기로 한 날 주가가 전날 종가보다 높으면 체결이 안 되고,전날 종가 수준이거나 그보다 낮아야 체결이 된다.

○부작용은 없나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 규모를 늘리면 주주 입장에서도 무조건 좋은 것일까.

단기적으로는 주가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되니 좋을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반드시 좋다고 볼 수 없다. 왜 그럴까? 기업들은 보통 잉여자금을 주주가치 증대와 기업의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에 쓴다.

기업들은 항상 이 두 가지의 비중을 놓고 고민한다.

만약 당장 여유현금이 넘쳐난다고 해서 주가 부양이나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자사주 매입 규모를 지나치게 늘리면 그만큼 투자여력이 줄어들고,이는 기업의 미래 성장가치를 훼손하게 된다.

기업의 미래가치가 줄어들게 되면 주가도 결국 하락하게 마련이다.

당장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더 큰 이익을 놓치는 꼴이다.

정종태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 jtchung@hankyung.com


< 자사주 매입이냐 … 배당이냐 … '고민' >

기업들이 주주가치 증대를 위해 사용하는 두 가지 방법이 바로 자사주 매입과 배당이다.

주주가치 증대에 각별히 신경쓰는 것으로 알려진 KT는 매년 초 이사회에서 그 해의 자사주 매입과 배당계획을 미리 확정 발표한다.

KT처럼 상당수 기업들도 자사주 매입과 배당 두 가지를 모두 이용한다.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만 하더라도 매년 2조원어치의 자사주를 사들이는 것과 동시에 1조원가량을 별도로 배당으로 주주들에게 돌려준다.

주주 입장에서는 두 가지 모두 대환영이다.

배당은 직접 주머니로 현금이 입금되므로 좋고,자사주 매입은 주가 부양 효과가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자사주 매입과 배당이 결코 같을 수는 없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아마 대주주들은 연말연초가 되면 자사주 매입과 배당의 적정 비율을 놓고 고민하느라 머리를 싸맬지도 모른다.

예컨대 1000억원을 주주가치 증대에 쓰기로 했다 하더라도 자사주 매입과 배당의 비율을 5 대 5로 할지,7 대 3으로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주주자본주의에 한 발 앞선 선진국에서조차 이런 고민은 마찬가지다.

최근 추세를 보면 당장 주주들에게 욕을 먹더라도 배당보다는 경영권 방어 등 여러가지 용도에 사용할 수 있는 자사주 매입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