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통일가면을 쓰다
세계사에서 첩보전의 백미(白眉)는 '삼국지'의 적벽대전이다. 조조의 위(魏)나라가 대군을 몰고 손권의 오(吳)나라와 형주의 유비 연합군과 적벽에서 맞섰다. 조조는 채중·채화 형제를 오에 위장 귀순시켜 정세를 정탐케 했다.

수적으로 크게 열세였던 오의 대장 주유는 이들을 역이용했다. 심복인 황개에게 곤장을 때려 조조에게 거짓 항복케 하는 고육책(苦肉策)을 썼다. 조조는 밀정인 채중 형제의 보고를 믿고 받아들인다. 황개는 항복하는 척하면서 기름을 가득 실은 투항선단을 이끌고 조조의 대함대에 부딪친 뒤 불을 질렀다.

이에 앞서 유비의 수하인 방통은 배멀미로 고생하는 위나라 군사들을 위해 조조에게 배를 묶어놓는 연환계를 쓰도록 권유해뒀다. 하나로 묶인 조조의 대함대는 꼼짝없이 불에 타 침몰했고 조조는 크게 패했다. 조조에게 황개와 방통은 때려죽이고 싶도록 미운 첩자였지만 손권과 유비에겐 영웅이었다.

이렇듯 역사상 전쟁이 있는 곳에는 늘 간첩이 있었다. 간첩의 기원은 동서양 모두 4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역사가 기록되면서부터 간첩이 존재했다는 이야기다. 수시로 전쟁을 벌였던 고대 국가들의 경우 사전에 적국의 기밀을 빼내고 혼란을 유도하는 간첩의 활약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했다.

'손자병법'에선 전쟁에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상책으로 쳤고 적의 성을 공격하는 것을 최하책이라 했다. 최상책은 적의 전의를 꺾는 벌모(伐謨)이며, 이를 위해 용간(用間)을 제시했다. 간첩을 쓰는 것이다. 최근 인기를 끄는 TV사극 '주몽'에서도 부여의 금와왕을 습격하는 한나라 세작이 등장한다.

간첩은 비밀리에 적국의 내정을 탐지하여 보고하는 자이다. 거꾸로 자국의 비밀을 수집해 적국에 넘기는 것 역시 간첩이다. 간첩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첩자 세작 간자 밀정 제5열 스파이로도 불렸다. 나라 기밀을 넘긴 간첩은 조국의 반역자이지만 적국에선 훈장도 받고 영웅대접을 받는다.

최근 우리나라에선 일부 386운동권 출신들이 간첩혐의를 받으면서 논란이 뜨겁다. 1980년대 암울하던 군사독재정권 시절 민주화를 외쳤던 386세대(3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의 초심이 훼손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북한 핵실험에 이은 간첩사건은 우리의 안보태세에도 심각한 의문을 던진다. 현대사 속에 드러난 간첩의 실례와 386은 어떤 세대인지 자세히 알아보자.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