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10월31일자 A30면

이규민 동아일보 대기자

북한이야 원래 별난 사회라 그렇다지만 남한은 또 왜 이렇게 이상해졌는지 모르겠다.

지척에서 핵실험을 당한 이 나라 대통령의 모호한 표정과 처신이 의아스럽던 차에 여당 대표는 곧바로 북한을 격려 방문하고 돌아왔다.

그는 평소 우유부단하다는 평을 많이 들었지만 이번 방북만큼은 당 내외의 반대를 무릅쓰고 단호하고 신속하게 실천해 냈다.

남한에 있을 때는 침울한 표정을 자주 보이던 그가 북한에 가서는 심각한 국가 위기 상황에서도 파안대소하며 춤까지 추는 배포를 세계 만방에 과시했다.

과연 이 나라 앞날이 어찌될 것인가 불안하던 중에 이들로부터 바통이라도 넘겨받은 듯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이라는 사람은 "국가로서 존재한 연도에 비해 인류 역사상 전쟁을 가장 많이 한 나라는 미국이다"라고 일갈해 국제적 분란을 자초했다.

대강 이런 것들이 북한 핵실험 이후 나타난 남한 권부의 반응이다.

외국인들 눈에는 남쪽이나 북쪽이나 집권세력은 모두 (대다수 국민 또는 인민과 동떨어져 행동하는) 비정상적 집단으로 비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역사 기록을 뒤져 보면 송민순 실장의 주장은 그 자체가 맞지도 않는 말이다.

그러나 발언의 사실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을 한 속뜻이 무엇인지,그 말이 청와대의 안보분야 최고위 인사가 동맹국에 할 말인지,또 지금이 그런 소리를 할 때인지 하는 것들이다.

미국이 참전한 전쟁의 내용들도 그렇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우리나라를 해방시켰고 6·25전쟁에서 남한을 적화통일로부터 막아 준 것이 미국이다.

'전쟁광'이 취미 생활 하려고 참전해 피 흘린 것이 아니라면 수혜자들은 미국에 고마워 하지는 못할망정 비방만은 말았어야 했다.

송 실장 식으로 말하면 폭력에 가장 많이 개입하는 집단은 조폭이 아니라 경찰이다.

그렇다고 '한국 역사상 가장 폭력을 많이 행사한 집단은 경찰'이라고 주장하는 멍청이는 없다.

동아리 토론방에서 학생이 한 말이라면 어려서 그러려니 하지만 그는 명색이 청와대의 외교안보실장이다.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도 북한을 전쟁광 미국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국내 불순분자들의 책동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이 외교안보실장의 임무가 아니다.

미국이 아니라 북한과 (최근 체포된 정치권 내 386 간첩들을 포함해) 남한 내 친북세력들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것이 송 실장의 임무다.

이 땅에 전쟁을 원하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국민이 북한 정권의 잘못에 단호하게 대응하라는 말만 하면 남북한 정권은 한목소리로 "그렇다면 전쟁을 하자는 것이냐"며 달려든다.

전쟁을 하지 않는 가장 쉬운 방법은 국방의 요체인 군대를 없애고 아까운 청춘을 산업체로 돌리는 것이다.

군이 없어지면 전쟁은 저절로 사라지니까.

문제는 그때 국가의 운명도 함께 스러진다는 것이다.

야수의 공격을 받고도 '폭력은 싫다'며 처절하게 물려 죽는 희생이 과연 살신성인인가.

정권이 바라는 것은 그런 평화인가.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선조는 왜적의 위협에 10만 양병설을 외면하고 '설득하고 무마하자'는 설유위무(說諭慰撫) 방책을 취했다.

그 결과가 어땠는가.

지금 일부 정치인들은 나라를 만신창이로 만든 선조의 잘못된 본보기를 따르자고 우기고 있다.

영국이 히틀러의 군사력에 위협받을 때 보수당 주류파의 유화책에 반대하면서 '대가가 어떤 것이든 우리는 싸울 것이며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던 윈스턴 처칠은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전쟁광이다.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라고 부하들의 전의를 북돋우던 이순신 장군 역시 집권세력 논리로는 후손의 추앙을 받을 성웅이 아니라 호전적인 인물일 뿐이다.

'인류가 전쟁에 종지부를 찍지 않으면 전쟁이 인류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며 전쟁을 반대했던 미국의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은,그러나 구소련이 쿠바에 미사일기지를 건설하려 했을 때는 전쟁을 각오하고 해상을 봉쇄해 미국을 지켜 냈다.

'전쟁을 막는 가장 확실한 길은 전쟁을 겁내지 않는 것'이라는 미국 노동운동가 필립 랜돌프의 말을 실천해 성공한 사례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해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달린 요즘,전쟁을 혐오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이 나라 대다수 국민이 전쟁을 막기 위해 정권에 요구하는 것은 바로 그런 불굴의 용기와 건전한 판단력이다.

kyumin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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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만으로 평화를 지킬수 있을지…

북한 핵실험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각은 극단에서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같은 문제를 보면서도 정반대의 원인분석과 해법을 내놓는다. 이는 비단 북핵문제뿐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도사린 현안들마다 재연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느 나라든지 지도자의 국민통합 노력이 절실해지는 것이다.

정치적 입장이 무엇이건 간에 한반도에서 핵은 사라져야 하고 전쟁은 안 된다는 최소한의 공감대는 분명히 있다. 국민들 대다수가 한반도의 안보현실에 대해 불안해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운동권 일각에선 북핵을 자위용이라거나 우리민족도 핵을 갖게 됐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극소수의 의견일 뿐이다.

북핵을 평화·반핵의 관점에서만 보면 그 해법도 단순해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만저만 복잡한 게 아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해 줄곧 대북 포용정책을 펴온 현 정부로선 진퇴양난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남쪽의 무수한 지원을 넙죽넙죽 다 받으면서 정작 중요한 한반도의 평화문제를 논의할 때는 번번이 남한을 왕따시켜온 게 북한 김정일 정권이다. 지난달 31일 북한의 6자회담 복귀 논의도 미국 중국과만 합의했을 뿐,그 자리에 한국은 아예 초대받지도 못했다. 열심히 구애하고 있는데 상대는 쳐다도 안 보고 자꾸 딴 데 눈길을 주는 셈이다.

이규민 동아일보 대기자는 이 칼럼에서 과거 역사에서 어떻게 해서 평화를 지켜냈는지를 예시하고 있다.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 영국의 처칠 수상은 불퇴전의 의지로 맞서 싸워 침략을 막아냈다. 케네디 대통령은 소련이 미국의 턱밑인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려 한 쿠바사태 때 전쟁을 각오하고 소련에 맞서 끝내 일촉즉발의 위기를 넘겼다.

과연 이순신이나 처칠, 케네디가 국민들 안전은 아랑곳 않는 전쟁광이고 호전적이어서 그랬을까? 왜적을 설득하고 무마하자며 대비를 소홀히 한 선조처럼, 침략의지를 노골화하는 적에게 화해 제스처를 써서 전쟁이 막아졌는가? 필자는 강하게 반문하고 있다.

지도자나 정치인들은 스스로 살신성인할지언정 국민들에게 살신성인을 요구할 권리는 없다. 국민들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권력을 위임한 국민들에 대한 의무이자 책임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반도는 핵으로 안전을 위협받고,냉혹한 국제질서 속에 놓여 있다. 현 정부나 국민이나 전쟁은 안 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들(김정일 정권)의 비위를 건드릴까봐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안으로만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도울 것은 돕되, 잘못한 것은 고치도록 단호히 요구하는 게 진정한 포용정책이 아닐까?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