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가 살포시 내린 가을 날 새벽.경주행 통학 기차는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까까머리 중학생들로 가득 차 있다.
이들 가운데 영어단어장을 꺼내 열심히 외우고 있는 한 학생이 있다.
또래 아이들보다 10㎝는 족히 커 보이는 그 학생이 대우증권을 증권업계 1위로 올려놓으며 '30년 증권 종가'의 자존심을 회복시킨 손복조 대우증권 사장(55)이다.
경북 경주에서 태어난 그는 토함산 정기가 깃든 불국사초등학교를 나와 경주중학교에 들어갔다.
경주시 외곽에 살았던 터에 30분씩 기차 통학을 했다.
손 사장은 영어 단어장 외우던 기억을 되살리며 "한 가지 일을 매일 반복해서 한다는 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정말 큰 결과를 낳게 된다"고 강조했다.
서울로 유학을 간 배재고등학교 시절 영어경시대회에서 서울 토박이들을 제치고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키(현재 181cm)가 큰 덕에 중학교 시절에는 교내 배구선수로 활약,시민체육대회에서 우승도 맛봤다.
그러나 고교와 대학시절은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말한다.
공부하고 남는 시간은 운동을 하면서 보냈다.
서울대 입시에 떨어진 후 1년간 경험한 재수생활도 그냥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는 한마디로만 요약했다.
하지만 서울대 문리대 재학시절 술을 마시다 통금위반에 걸려 유치장 신세를 진 건 그에게 소중한 경험으로 기억된다.
유치장에서 보낸 7~8시간 동안 손 사장은 앞으로 사소한 법이라도 절대 위반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맹세한다.
그래서 지금도 주변 사람들에게 준법정신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손 사장은 "양도세 내지 않겠다고 아무 생각 없이 위장전입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고교시절 'I had my head(hair의 오기) cut'이라고 칠판에 쓴 영어선생님을 보고 웃다 심하게 혼난 일도 그의 표정을 바꾼 계기가 됐다.
선생님은 비웃는 걸로 느끼신거다.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잘 웃는 사람이었다.
손 사장은 "웃음이 너무 헤퍼서도 안 되겠구나"하고 생각했다며 "표정도 때와 장소에 맞게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사장은 성공적인 삶에 대해 "우연한 계기나 사건,우연한 만남을 통해 어느 한 분야에 깨달음을 얻게 되고 지속적으로 노력해서 이뤄진다고 본다"며 "다양하게 경험하고 독서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면 소위 말하는 어떤 하나에 '필'(feel)이 꽂히게 될거라는 얘기다.
손 사장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인생의 맛을 알게 된다.
눈만 뜨면 회사 가고 토요일 일요일도 출근하면서 일에 대한 즐거움을 느꼈다.
자신의 존재가치도 그 때 깨달았다는 것이다.
8년간의 무역업계 생활을 끝내고 대우증권에 경력직원으로 입사한 그는 "증권맨이 나의 천직임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직장을 옮기지 않는다고 결심하고 "대우증권과 운명을 같이 하기로 했다"고 회고했다.
대우증권에서 새 출발을 하면서 받게 된 천주교 세례식에서 손 사장은 또 하나를 깨닫는다.
이미 고교시절 자신의 인생목표를 정해 열심히 사는 신부나 수녀들의 삶을 보면서 "내가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살아왔구나.
이제부터라도 증권산업 발전에 이바지하는 삶이 되어야겠구나"고 다짐했다.
손 사장은 대우증권에서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다.
기획과장에서 시작해 인사과장,국제영업부 차장을 거쳐 도쿄사무소장(부장)을 역임했다.
도쿄사무소장 재직 시절은 1년 365일을 일에 매달려야 했다.
주중에는 증권관련 일을 하고 주말이나 휴일은 도쿄사무소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한 시간이었다.
8년간 가족들과 일본 여행을 한 게 딱 한 번에 불과했다.
연말 하루 짬을 내 온천을 가게 됐다.
온천욕을 마친 후 저녁 때 아내,아들과 자리를 함께 하며 얘기를 나눈 일을 털어 놨다.
손 사장이 먼저 "그동안 미안해 몸은 힘들지만 당신과 호성(아들)이를 위해 온천에 오기로 마음 먹었소"라고 말하자,아내는 "일본 생활 중 처음으로 당신이 가자고 해 몸도 안 좋은데 따라왔다"고 답했다.
아들도 "실은 저도 일이 있는데 아빠가 처음으로 가자고 해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 식구는 "그럼 우리가 여기 왜 왔지?" 하고 서로에게 물으며 크게 웃었다.
도쿄사무소장을 마친 1995년 다시 본사 기획실장으로 복귀했다.
일본 증권사들의 선진 시스템을 접하다 들어와 보니 회사가 비합리적인 데다 리스크(위험) 관리도 제대로 안되고 있는데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누구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지만 그는 새로운 리스크 관리제도를 비롯해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
사내 반발이 적지 않았지만 서서히 성과가 나타나면서 보통 부장에서 4년 이상 걸리는 임원 승진을 2년 만에 이뤄냈다.
초특급 승진이었다.
하지만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1999년 대우그룹 사태가 불거지면서 초고속 승진 덕(?)에 당시 등기 임원이던 손 사장은 회사 부실의 책임을 지고 2000년 6월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는 대우를 떠나 IT회사 대표이사를 거쳐 LG투자증권,LG선물 등에서 보낸 4년여를 인생에 있어 가장 힘든 시기로 기억했다.
대우증권에서 뼈를 묻겠다고 했는데 그 목표가 좌절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직장생활이 곧 인생"이며 그 직장생활은 '대우'이여야 한다고 믿어왔다.
4년 뒤 대우증권 사장에 선임되던 날 "내 일생의 소원이 드디어 이루어졌구나"라고 스스로 되뇌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회사에 돌아와보니 증권업계에서 부동의 1위였던 대우증권은 4~5위권으로 추락해 있었다.
그는 모든 목표를 1등을 되찾는데 두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1등 기업은 강한 팀워크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직원들과 함께 '뛰고 마시면서' 강한 팀워크를 강조했다.
그 결과 대우증권은 손 사장 취임 4개월 만에 다시 1위를 되찾았다.
지난해에는 매출 1조8615억원,영업이익 3862억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냈다.
손 사장은 앞으로 대우증권을 '글로벌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그는 "삼성전자 포스코 등 제조업은 세계적인 회사가 나왔는데 금융에서는 아직 없다"며 "선진국일수록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손 사장은 요즘도 직원들에겐 혹독한 시어머니 역할을 자청한다.
그가 사장으로 복귀했을 때 직원들이 무척 힘들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묻자,그는 "우리 조직은 열심히 안하는 사람이 없고,열심히 하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도 "직원들은 괴롭겠지 뭐…"라며 큰 웃음을 지었다.
글로벌 대우증권의 실현을 위해 뛰는 자신을 직원들이 충분히 이해할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서정환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 ceoseo@hankyung.com
이들 가운데 영어단어장을 꺼내 열심히 외우고 있는 한 학생이 있다.
또래 아이들보다 10㎝는 족히 커 보이는 그 학생이 대우증권을 증권업계 1위로 올려놓으며 '30년 증권 종가'의 자존심을 회복시킨 손복조 대우증권 사장(55)이다.
경북 경주에서 태어난 그는 토함산 정기가 깃든 불국사초등학교를 나와 경주중학교에 들어갔다.
경주시 외곽에 살았던 터에 30분씩 기차 통학을 했다.
손 사장은 영어 단어장 외우던 기억을 되살리며 "한 가지 일을 매일 반복해서 한다는 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정말 큰 결과를 낳게 된다"고 강조했다.
서울로 유학을 간 배재고등학교 시절 영어경시대회에서 서울 토박이들을 제치고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키(현재 181cm)가 큰 덕에 중학교 시절에는 교내 배구선수로 활약,시민체육대회에서 우승도 맛봤다.
그러나 고교와 대학시절은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말한다.
공부하고 남는 시간은 운동을 하면서 보냈다.
서울대 입시에 떨어진 후 1년간 경험한 재수생활도 그냥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는 한마디로만 요약했다.
하지만 서울대 문리대 재학시절 술을 마시다 통금위반에 걸려 유치장 신세를 진 건 그에게 소중한 경험으로 기억된다.
유치장에서 보낸 7~8시간 동안 손 사장은 앞으로 사소한 법이라도 절대 위반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맹세한다.
그래서 지금도 주변 사람들에게 준법정신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손 사장은 "양도세 내지 않겠다고 아무 생각 없이 위장전입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고교시절 'I had my head(hair의 오기) cut'이라고 칠판에 쓴 영어선생님을 보고 웃다 심하게 혼난 일도 그의 표정을 바꾼 계기가 됐다.
선생님은 비웃는 걸로 느끼신거다.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잘 웃는 사람이었다.
손 사장은 "웃음이 너무 헤퍼서도 안 되겠구나"하고 생각했다며 "표정도 때와 장소에 맞게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사장은 성공적인 삶에 대해 "우연한 계기나 사건,우연한 만남을 통해 어느 한 분야에 깨달음을 얻게 되고 지속적으로 노력해서 이뤄진다고 본다"며 "다양하게 경험하고 독서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면 소위 말하는 어떤 하나에 '필'(feel)이 꽂히게 될거라는 얘기다.
손 사장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인생의 맛을 알게 된다.
눈만 뜨면 회사 가고 토요일 일요일도 출근하면서 일에 대한 즐거움을 느꼈다.
자신의 존재가치도 그 때 깨달았다는 것이다.
8년간의 무역업계 생활을 끝내고 대우증권에 경력직원으로 입사한 그는 "증권맨이 나의 천직임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직장을 옮기지 않는다고 결심하고 "대우증권과 운명을 같이 하기로 했다"고 회고했다.
대우증권에서 새 출발을 하면서 받게 된 천주교 세례식에서 손 사장은 또 하나를 깨닫는다.
이미 고교시절 자신의 인생목표를 정해 열심히 사는 신부나 수녀들의 삶을 보면서 "내가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살아왔구나.
이제부터라도 증권산업 발전에 이바지하는 삶이 되어야겠구나"고 다짐했다.
손 사장은 대우증권에서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다.
기획과장에서 시작해 인사과장,국제영업부 차장을 거쳐 도쿄사무소장(부장)을 역임했다.
도쿄사무소장 재직 시절은 1년 365일을 일에 매달려야 했다.
주중에는 증권관련 일을 하고 주말이나 휴일은 도쿄사무소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한 시간이었다.
8년간 가족들과 일본 여행을 한 게 딱 한 번에 불과했다.
연말 하루 짬을 내 온천을 가게 됐다.
온천욕을 마친 후 저녁 때 아내,아들과 자리를 함께 하며 얘기를 나눈 일을 털어 놨다.
손 사장이 먼저 "그동안 미안해 몸은 힘들지만 당신과 호성(아들)이를 위해 온천에 오기로 마음 먹었소"라고 말하자,아내는 "일본 생활 중 처음으로 당신이 가자고 해 몸도 안 좋은데 따라왔다"고 답했다.
아들도 "실은 저도 일이 있는데 아빠가 처음으로 가자고 해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 식구는 "그럼 우리가 여기 왜 왔지?" 하고 서로에게 물으며 크게 웃었다.
도쿄사무소장을 마친 1995년 다시 본사 기획실장으로 복귀했다.
일본 증권사들의 선진 시스템을 접하다 들어와 보니 회사가 비합리적인 데다 리스크(위험) 관리도 제대로 안되고 있는데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누구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지만 그는 새로운 리스크 관리제도를 비롯해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
사내 반발이 적지 않았지만 서서히 성과가 나타나면서 보통 부장에서 4년 이상 걸리는 임원 승진을 2년 만에 이뤄냈다.
초특급 승진이었다.
하지만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1999년 대우그룹 사태가 불거지면서 초고속 승진 덕(?)에 당시 등기 임원이던 손 사장은 회사 부실의 책임을 지고 2000년 6월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는 대우를 떠나 IT회사 대표이사를 거쳐 LG투자증권,LG선물 등에서 보낸 4년여를 인생에 있어 가장 힘든 시기로 기억했다.
대우증권에서 뼈를 묻겠다고 했는데 그 목표가 좌절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직장생활이 곧 인생"이며 그 직장생활은 '대우'이여야 한다고 믿어왔다.
4년 뒤 대우증권 사장에 선임되던 날 "내 일생의 소원이 드디어 이루어졌구나"라고 스스로 되뇌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회사에 돌아와보니 증권업계에서 부동의 1위였던 대우증권은 4~5위권으로 추락해 있었다.
그는 모든 목표를 1등을 되찾는데 두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1등 기업은 강한 팀워크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직원들과 함께 '뛰고 마시면서' 강한 팀워크를 강조했다.
그 결과 대우증권은 손 사장 취임 4개월 만에 다시 1위를 되찾았다.
지난해에는 매출 1조8615억원,영업이익 3862억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냈다.
손 사장은 앞으로 대우증권을 '글로벌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그는 "삼성전자 포스코 등 제조업은 세계적인 회사가 나왔는데 금융에서는 아직 없다"며 "선진국일수록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손 사장은 요즘도 직원들에겐 혹독한 시어머니 역할을 자청한다.
그가 사장으로 복귀했을 때 직원들이 무척 힘들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묻자,그는 "우리 조직은 열심히 안하는 사람이 없고,열심히 하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도 "직원들은 괴롭겠지 뭐…"라며 큰 웃음을 지었다.
글로벌 대우증권의 실현을 위해 뛰는 자신을 직원들이 충분히 이해할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서정환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