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카메라 빳데리가 벌써 다 나갔네." "아빠는~ 빳데리가 뭐예요? 배터리지." "(앗! 한방 먹었네… -_-;::) 음,배터리는 문어(文語)고 빳데리는 구어(口語)야."

국어학자인 K교수가 집에서 무심코 '빳데리'란 말을 썼다가 딸에게 지적을 받자 머쓱해진 나머지 둘러댔다는 얘기다.

우리 외래어 표기법의 기본 정신은 '원음에 최대한 가깝게 적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선 다들 '빳데리'(실제 발음은 '빠떼리')라 하면서도 적을 때는 '배터리'만 허용된다.

이처럼 입말(구어)과 글말(문어)이 동떨어져 있는 예들은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스테인리스강이나 알루미늄 등을 재료로 만든 창틀은? '새시'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드물고 '샷시'로 알고 쓰는 경우가 훨씬 많다.

누구나 '추리닝'을 한두 벌 갖고 있을 것이다.

운동할 때는 물론이고 집에서나 동네 빵 가게에 다녀올 때 입어도 불편함이 없어서 즐겨 입는다.

때로는 잠옷 대용으로도 그만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렇게 쓸모가 많고 생활 속 깊이 들어온 '추리닝'은 글에서 쓰지 못한다. '연습복' '운동복'으로 순화돼 있다.

'슬리퍼'나 '텔레비전'도 한국 사람이 발음하기에 편한 말은 아니다.

그보다는 '쓰레빠'나 '테레비'가 음성학적으로 훨씬 자연스럽고 편하다.

물론 이는 단순히 실생활에서 그렇게 써왔기 때문에 오는 느낌상의 편견이 아니다.

음성학자인 유만근 성균관대 교수(영문학)의 견해다.

하지만 '쓰레빠'나 '테레비'는 쓰면 안 되는,틀린 말이다.

언어 규범이 그것을 강요하고 있다.

외래어 표기의 가치가 궁극적으로는 한국인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과감히 '빳데리' 같은 말을 외래어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외래어 체계에는 이미 그런 전례들이 많이 있다.

카메라,라디오,바나나,모델 따위가 그런 경우이다.

이들은 실제 영어 발음과는 매우 다르지만 오랫동안 관용적으로 굳은 말이기 때문에 인정받는다.

문제는 규범에서 빳데리나 쓰레빠,테레비,추리닝 같은 말은 그 관용의 범주에 넣을 수 없다고 판단하는 데에 있다.

그러니 아직까지는 글로 적을 때는 여전히 배터리 슬리퍼 텔레비전 운동복이라 해야 한다.

말은 의미의 기반이나 논리성을 해쳐가면서까지 변형해 써서는 안 된다.

하지만 발음이나 형태상의 단순한 바뀜이라면 굳이 인위적인 규범을 설정할 게 아니라 언어의 시장에 맡겨두는 게 상책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언중에 의해 채택되는 언어가 살아남는다는 것이 언어의 경험칙이다.

'만땅'이란 말이 그런 예에 속할 것이다.

주유소에서 자동차 기름을 넣을 때 오랫동안 우리는 "만땅이요"하고 주문해 왔다.

이 말의 정체는 '滿탕쿠'다.

일본어와 영어가 합쳐져 만들어진 기묘한 단어다.

'차다'라는 의미의 '滿(まん)'과 영어의 탱크(tank)를 옮긴 'タンク(탕쿠)'의 첫 음만 자른 '탕'이 합쳐진 말로,연료 등을 탱크에 가득 넣는다는 뜻이다.

'만땅'과 '가득'은 언어의 세력 다툼을 잘 보여준다.

'만땅'은 사실 무슨 말인지도,어떻게 생겨난 말인지도 모르고 그냥 전부터 들어온 말이니까 쓰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득'이란 말은 똑같이 두 글자인 데다 부드러우면서도 누구나 아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자연스럽게 '만땅'을 밀어내고 '가득'이란 말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는 중이다.

말은 억지로 틀 지울 필요가 없다.

말에도 경쟁력이 있는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이 있다.

사람들이 쓰다 보면 불편하거나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은 자연스레 힘이 약해진다.

그러다 사라지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