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는 모든 나라가 안고 있는 숙제다.

어떤 나라든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국민을 행복하게 살게 하고 싶지 않을 정부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수단으로서 복지에 대한 접근법은 천차만별이다.

복지정책의 지향점이 기회의 평등인가,결과의 평등인가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복지천국이란 유럽 국가들은 과도한 복지로 인해 사회활력이 떨어지는 '유럽병'을 앓고 있고,효율성을 강조한 영미식 복지는 빈곤층이 두터운 개도국이나 저개발국에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우리 옛말에 '가난은 나라도 구하지 못한다'고 했다.

정부가 복지를 다 책임질 수도 없으려니와 책임지려 해도 부작용만 낳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면 사회소외계층은 더욱 더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대 사회에 바람직한 복지정책은 무엇인지 해외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미국의 '30대 할머니들'

미국에는 30대 할머니가 있다.

극빈층 여성들 가운데 10대 중반에 미혼모로 첫 아이를 낳고,그 아이가 자라 10대 중반이 되면 다시 어머니처럼 아이를 낳으니 30대에 이미 손자를 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는 바로 미혼모의 자녀 수에 따라 보조금이 지급되는 복지제도에서 비롯된다.

자녀가 9~10명쯤 되면 보조금만으로도 충분히 생활이 된다.

이런 미혼모들은 자녀를 거의 돌보지 않는다.

보조금이 나오면 바로 뷰티숍(미용실)으로 달려가 자신을 치장하는 데 돈을 쓴다.

미혼모를 도우려는 좋은 취지가 실제 현실에선 수혜자를 더욱 타락시키는 것이다.

독일에선 실업자들이 실업수당으로 실직 전 임금의 50~70%,최장 3년까지 받는다.

부부가 함께 실업수당을 받으면 한 사람 임금의 최고 1.4배를 받는 셈이다.

일 안 하고도 먹고 살 수 있으니 애써 고생하며 직업을 가질 필요가 없다.

유럽의 실업률이 10%에 이르는 것은 과도한 복지제도가 빚어낸 그늘인 셈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요약되는 유럽의 복지정책은 필연적으로 국민 부담(세금)을 증가시키고 국가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렸다.

최근 스웨덴 총선에서 복지정책에 치중해온 집권 사회민주당이 패한 것도 그에 대한 반성의 결과로 분석된다.

◆일하는 사람보다 더 줄 순 없다

이른바 '영국병'으로 몸살을 앓던 1980년대 초 영국의 대처 정부는 복지정책에 '처우제한의 원칙(less eligibility principle)'을 세웠다.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 수준이 시장에서 제일 싼 임금으로 일하는 노동자의 생활수준보다 높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즉 일하는 것이 적어도 실업상태보다는 나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처 정부는 또 누구에게나 제공되던 보편적 복지혜택을 선별적 복지로 바꾸고 공영주택의 민영화,주택보조금 삭감 등을 밀고 나가 기나긴 영국병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1996년 미국 클린턴 대통령은 전통적으로 복지에 비중을 둔 민주당 정권이면서도 지지자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복지개혁법안을 통과시켰다.

내용은 빈곤가정에 대한 생계비 지원을 평생 5년으로 제한하고,그것도 일을 해야 준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1980년대 초 9.5%까지 치솟았던 실업률이 1998년에는 4.6%로 떨어졌다.

10년 새 복지 수혜자의 60%가 줄었고 80%는 어떤 식으로든 일자리를 잡았으며 복지혜택에서 졸업한 사람들의 수입이 25%가량 늘었다.

미혼모도 줄고,아동빈곤율도 낮아졌다.

복지혜택을 줄인 처방이 가난한 사람들을 더 가난하게 한 것이 아니라 일하게끔 유도해 되레 생활형편이 나아진 것이다.

◆최고의 복지는 일할 의욕을 북돋우는 것

이 같은 사례에 비춰볼 때 무조건 복지를 늘리는 것보다는 과도한 복지의 군살을 빼고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복지혜택을 줄 때는 확고한 원칙과 기준이 있어야 한다.

먼저 자기책임 원칙에 따라 자기 책임이 아닌 이유로 가난해진 사람들(소년소녀 가장,장애인 등)을 우선적으로 도와주는 것이다.

둘째 극빈층을 지원하되 일하는 것보다는 낮게 줘야 한다.

셋째 근로의욕을 꺾지 않도록 일하고 싶은 사람이 언제든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정치인들은 선거철만 되면 앞다퉈 빈곤·서민층에 대한 복지혜택 확대를 공약한다.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에 기초한 이 같은 '시혜적 복지'는 당장 듣기엔 좋은 말이지만 빈곤층의 자립의지를 약화시켜 결과적으로 불평등을 고착화하고 사회 전체를 가난하게 만든다.

따라서 최선의 복지정책은 경제를 활성화해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래야 복지혜택으로 풀어줄 재원도 생긴다.

복지문제로 고민했던 선진국들의 사례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


[ 자활근로사업.근로장려세제 등 ]

◆ 우리는 어떻게 하고있나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복지제도의 틀을 짜기 시작한 것은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다.

이 기간 동안 사회보장기본법이 제정되는 등 복지 수준의 확대를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구상됐다.

국민의정부(1998∼2002년) 때는 △전 국민 대상의 국민연금제 도입 △경로연금제 시행 △국민기초생활보장제 시행 등을 통해 복지의 기본 틀이 만들어졌다.

복지에 자활지원 개념이 도입된 것은 참여정부 들어서부터다.

양극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정부가 현금과 현물을 빈곤층에 직접 지원하는 방식을 유지하기엔 나라살림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자활근로사업이나 근로장려세제(EITC),사회서비스 일자리 대책 등이 그런 맥락에서 도입됐거나 추진 중인 정책들이다.

EITC란 현재 가진 것은 적지만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있는 빈곤 가정에 정부가 직접 현금을 주는 제도다.

정부가 일하지 않는 빈곤층과 일하는 빈곤층을 현금 지원을 통해 뚜렷하게 차별 대우함으로써 빈곤층이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일자리로 가게 만들자는 취지다.

이 제도는 2008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들을 위한 일자리도 많이 만들고 있다.

육아 도우미,가사 도우미,장애인 돌보미 등 특별한 전문기술이나 노하우가 필요 없으면서도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꼭 필요한 일자리(일명 사회서비스 일자리)들이 대상이다.

정부는 이런 일자리를 2010년까지 매년 20만개씩 꾸준히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빈곤층의 자활을 돕기 위한 기술 교육 프로그램이나 창업·취업 지원 사업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2만명이 이런 혜택을 봤으나 2009년께는 10만명으로 지원 대상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이런 자활지원 사업과 함께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를 차상위 계층으로까지 확대하고,장애수당 수급자를 늘리는 등의 현금·현물성 지원도 계속 확대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복지지원 확대에도 불구 아직 우리나라 복지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에 비춰볼 때 '낙제생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판단하고,2030년까지 획기적인 투자를 통해 복지 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미래 전략(비전 2030)을 발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