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1조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을 앞세워 세계 금융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거인(colossus)'으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의 외환보유액 중 70%(약 7000억달러)가 미국 달러화 자산이란 점에서 중국의 외환정책 변화는 미국 경제를 뒤흔들 수 있는 폭발력이 있다.

보유 외환에서 달러화의 비중을 줄이고 유로화의 비중을 높이거나 막대한 외환을 원자재 확보에 쏟아붓는다면 세계시장에 큰 파장을 몰고 올 수도 있다.

◆이달 중 1조달러 돌파 확실

중국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제금융시장에서 신인도 회복을 위해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데 힘을 쏟아왔다.

그 결과 지난해 말 현재 일본(8469억달러) 중국(8189억달러) 대만(2533억달러) 한국(2104억달러) 등이 국가별 외환보유액 순위에서 1∼4위를 차지했다.

이 밖에 홍콩 싱가포르 태국 등도 외환보유액을 급속히 늘리고 있어 동아시아 지역의 외환보유액은 약 2조5000억달러(2005년말)로 전 세계 외환보유액의 60%에 달했다.

이처럼 동아시아 국가들이 끊임없이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것은 기본적으로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이기 때문.매달 수백억 달러씩 무역수지 적자를 내는 미국의 달러가치가 떨어지면 당장 수출에 차질을 빚기 때문에 이들 국가는 수출로 번 외화를 외환보유액으로 쌓아둠으로써 달러가치를 떠받쳐야 하는 불가피한 형편이다.

이런 상황속에 중국은 올초 일본을 제치고 1위 국가로 부상했다.

지난 9월 말에는 9879억달러를 기록,1조달러를 눈앞에 뒀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무역수지 흑자에 힘입어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시간당 3000만달러,하루 7억2000만달러,한 달에 200억달러씩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10월 중 1조달러 돌파가 확실시된다.

1조달러는 지난해 중국 전체 수입액의 1.5배이고 중국 총 단기 대외 부채(외채)의 6배 수준이다.

◆중국도 미국경제와 한 배 탔다

중국은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보유 외환의 구성 내용을 거의 공개하지 않는다.

다만 전문가들은 미 달러화 자산 70%,유로화 자산 20%, 엔화 원화 등 기타통화 자산 10% 등으로 추정한다.

때문에 중국이 7000억달러로 추정되는 달러화 자산 중 3~4%만 내다 팔아도 200억~300억달러의 물량이 국제금융시장에 쏟아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중국이 보유 외환의 다변화(달러화 자산을 줄이고 엔화,유로화 등의 자산을 늘리는 것)를 시도한다면 미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결과적으로 막대한 달러화 자산을 보유한 중국에게도 큰 손해여서 자해행위나 마찬가지다. 결국 중국 경제는 미국 경제와 한 배를 탔다고 볼 수 있다. 미국 경제신문 월스트리트저널(WSJ)도 현 단계에서 중국이 보유 외환을 급격하게 변동시킬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미 정부 관계자들과 시장전문가들은 외환보유액이 급증하면서 중국이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보유 외환의 구성내역에 어느 정도는 변화를 줄 것으로 보고 있다. 큰 충격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서서히 달러화 자산에 대한 투자비율을 조절해나갈 것이란 분석이다. 또 안전하지만 수익률이 떨어지는 미 국채보다는 모기지 회사인 패니매, 프레디맥 등의 채권을 선호하고 이머징마켓(신흥시장국가) 채권에도 관심을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외환 파워' 어떻게 쓸까

중국 내에서도 보유 외환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원자바오 총리는 "외환보유액 중 일부는 중국 기업들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첨단기술 확보에 쓰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쩡칭홍 부주석은 경제 성장에 필요한 원자재를 사들이는 게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중국 내 일부 이코노미스트들은 신중한 선택을 주문하고 있다.

중국 사회과학원 이시안롱 연구원은 "석유 등 원자재에 보유 외환을 투자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며 "달러화 이외의 통화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인민은행 화폐정책위원인 판강은 중국이 달러화 자산의 대체물로 선택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정책 당국자들도 현 시점에서 중국이 급격하게 달러화 자산 매각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오히려 중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대출을 꺼리는 개발도상국들에 달러화 자산을 빌려주면서 이를 미끼로 천연자원이 풍부한 라틴아메리카 등지에서 영향력을 키울 것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이 엄청난 외환보유액에 기반한 파워를 어떻게 사용할지 주목된다.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longrun@hankyung.com

< 외환보유액 너무 많아도 '부담' >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지난 9월 말 기준 2270억달러다.

달러당 950원의 환율을 적용하면 215조원에 달한다.

외환보유액은 얼마나 갖고 있는 것이 적정할까.

국제통화기금(IMF)에서는 만기가 1년 이내의 외채(유동외채)에다 자본도피 예상액을 합친 규모를 적정 수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1년 이내 단기외채는 700억~800억달러 정도인데 자본도피 예상규모는 경제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점치기가 어렵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제안하는 적정 외환보유액은 3~6개월치 수입액에 만기 1년 미만의 외채,외국인 주식투자자금,외화예금 인출사태 예상액,해외 현지금융 보증액을 합친 금액을 기준으로 삼는다.

우리나라의 월 수입액이 250억달러이므로 3개월치 수입액은 750억달러,6개월치는 1500억달러 정도로 보면 된다.

여기에다 단기외채 700~800억달러를 합치면 대략 지금의 실제 외환보유액과 비슷한 2200~2300억달러가 된다.

물론 외국인 주식투자자금 등까지 감안하면 금액이 엄청나게 늘어나게 된다.

대외적으로 지급결제를 보장하기 위한 외환보유액은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으면 보유에 따른 비용도 커져 국민 부담이 된다.

예컨대 지난해 외환보유액을 운용해 얻은 순이익은 4조1000억원이었으나,보유 비용이라 할 수 있는 통화안정증권 이자로 나간 돈은 6조1000억원에 달했다.

외환보유액 운용에서 2조1000억원의 손실을 봤다는 얘기다.

물론 이 같은 손실액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가 외환보유액을 충분히 가졌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서 돈을 빌릴 때 금리가 싸지는 긍정적 측면도 있어서다.

너무 많아도,너무 적어도 곤란한 것이 바로 외환보유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