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으로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던 지난 9일.국내 한 대기업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원 김한석씨(32)는 무디스 등 주요 신용평가회사들이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어떻게 조정할지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하루 종일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들 신용평가회사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내릴 계획이 당장은 없다'는 말에 한숨을 돌린 김씨는 그동안 갖도 있던 주식을 당분간 계속 보유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이처럼 북한 핵실험 이후 한국 경제가 불안한 양상을 보이면서 국가신용등급이 새삼 관심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국가신용등급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지,국가신용등급에 변화가 생기면 한국 경제에는 어떤 파장이 미칠지 살펴보자.

◆신용등급은 돈 갚을 능력 평가한 것

돈을 빌려줄 때 상대방이 돈을 갚을 능력(신용)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보고 빌려주게 마련이다.

'수,우,미,양,가'로 학생들의 성적을 매기듯 국가에도 신용등급이라는 성적을 매긴다.

통상 'A','BB' 등의 알파벳과 '+','-'를 조합해 표기한다.

돈을 떼일 가능성이 적은 우량 국가는 높은 등급을,돈을 떼일 가능성이 큰 국가는 낮은 등급을 주는 식이다.

삼성전자 같은 민간 기업이나 금융회사들의 신용등급도 국가신용등급을 토대로 매겨진다.

이 때문에 기업이 속한 나라의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아무리 우량한 기업도 덩달아 낮은 등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해외 투자자들은 신용등급이 낮은 국가나 기업에는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거나,빌려주더라도 높은 이자를 요구한다.

심지어 이미 빌려준 돈을 빨리 갚을 것을 요구하거나 아예 대출을 거부할 수도 있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지자 해외에서 빌려준 돈을 한꺼번에 갚으라고 요구해 생긴 게 1997년 외환위기다.

이처럼 국가신용등급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국가신용등급을 전문적으로 측정하는 곳이 신용평가회사다.

일종의 '경제 심판관'으로,투자자들이 판단하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국가신용등급을 매기는 국제 신용평가사로는 미국의 무디스(Moody's)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Standard & Poor's),영국의 피치(Fitch) 등이 있다.

이들은 세계 신용평가시장의 90%를 차지하는 '빅3'로 통한다.

국가신용등급은 한 국가를 파산까지 몰고갈 수 있을 만큼 파급력이 커 그 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심층 분석한 다음 결정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정치체제의 안정성과 정통성,안보상의 위험 요인,국내총생산(GDP)과 같은 소득 수준,외환보유액,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외채 규모 등이 모두 고려 대상이다.

이를 위해 신용평가 분석가들이 직접 해당 국가를 방문해 정부와 주요 기업들을 면담하고 현장조사를 벌이기도 한다.

◆중국보다 낮은 한국의 신용등급

미국의 S&P는 현재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위에서 5번째인 'A'로 매기고 있다.

이는 세계 최대 금융회사인 씨티그룹의 'AA'보다 낮은 수준이다.

또 무디스는 2002년 이후 현재까지 투자적격 등급 10단계 중 위에서 7번째인 'A3'를 주고 있다.

중국(A2)보다 한 단계 아래이고 말레이시아와 같은 수준이다.

통상 국가신용등급이 1단계 오르면 해외 차입금리가 0.35%포인트 하락,연간 5억달러를 아낄 수 있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인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말레이시아 수준에 그친 배경으로는 '북한 핵위협'과 '과거에 외환위기를 겪은 경험' 등이 꼽히고 있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이탈리아 호주 스웨덴과 비슷한 'AA-'(S&P 기준)였으나 외환위기로 인해 6개월여 만에 '투자부적격'(BB+ 이하) 등급인 'B+'까지 추락하고 말았다.

물론 경제 회복과 함께 조금씩 등급이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외환위기 이전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국가신용등급 올리려면

국가신용등급은 한국 경제에 대한 종합 성적표이기 때문에 정부는 물론 기업과 개인이 모두 함께 노력해야 올릴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경제가 꾸준히 성장하고 정치·사회적으로 안정돼야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다.

아울러 정부가 신용평가회사의 관심사항에 대해 대응논리를 개발하는 등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는 것도 등급을 높이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물론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등급이 낮아질 수도 있다.

이웃나라 경제를 참고해 지역별로 가산점을 매기기도 하는데,예컨대 아시아 경제의 핵심인 일본이 침체에 빠지면 한국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이를 등급 조정에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국내외 평가회사 기업발행 채권에 점수 ]

◆ 기업 신용등급은

국가에 대한 신용등급이 있는 것처럼 기업들에도 신용등급이 매겨진다.

국가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기업에 대한 신용평가를 하기도 하며,국내에도 기업에서 발행한 채권의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신용평가사들이 있다.

한국신용평가,한국신용정보,한국기업평가 등이 국내 기업들의 신용평가를 주로 담당하는 3대 신용평가 회사들이다. 그러나 각 회사마다 기업들의 신용평가 기준은 조금씩 다르다.

신용평가 등급상 위에서 2번째인 'AA' 등급을 예로 들어보자.한국신용평가의 경우 '원리금 지급 확실성이 매우 높아 투자위험도가 낮지만,AAA 등급에 비해 다소 열등한 요소가 있는' 회사채에 AA를 주고 있다.

반면 한국기업평가는 '원리금 지급 능력이 매우 우수하지만 AAA의 채권보다 다소 열위'인 회사채에 AA를 주는 방식으로 약간 차이를 두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국제 신용등급의 경우 통상 국가신용등급에 연동돼 그보다 밑에서 매겨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미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국내 몇몇 대기업들은 한국의 국가신용도보다 더 높은 등급을 국제 신용평가사들로부터 부여받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작년에 무디스로부터 장기 외환채권의 등급을 국가신용등급(A3)보다 두 단계 높은 A1을 받았으며,SK텔레콤과 포스코는 한 단계 높은 A2를 받았다.

이는 결국 이들 기업이 해외에서 정부보다 더 싼 값(이자)에 돈을 빌릴 수 있다는 것으로,해외에서 이들 기업의 자본조달 능력이 국가의 역량을 뛰어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핵 사태와 저성장 기조로 인해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제 자리를 유지하거나 하향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반면,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대기업들의 신용도는 점점 높아지는 추세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