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9일 핵 실험을 단행하면서 핵 보유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10일 노동당 창건 61주년을 목전에 두고 '건드리면 다 죽는다'는 식의 마지막 카드를 뽑아든 것이다. 외부적으로는 핵 보유국 지위를 확보해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고 대내적으로는 강성 대국임을 선전하면서 체제 응집력을 높이겠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북한이 실시한 핵실험은 위력이 국제 평균에 한참 못 미쳤다는 평가다. 하지만 유엔이 대북 제재 수순을 밟고 있어 북한이 치러야 할 대가는 결코 적지 않아 보인다. 국제적 고립과 자연재해로 1995년부터 3년간 수백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던 소위'고난의 행군' 시기가 북한에 다시 닥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일고 있다.
주변국의 만류와 유엔이 국제적인 제재 가능성까지 예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데 대해 허문영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우리가 보기엔 지극히 비이성적인 선택이지만 북한 정권 당국자들은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내세우는 명분은 "미국이 대화를 계속 거부하면서 '핵전쟁 위협과 제재압력 책동'으로 우리를 고립 압살 시키려하기 때문에 '자위적 전쟁억제력 강화' 차원에서 핵실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북한은 6자회담이 가동되던 지난해 9월19일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와 '9·19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참가국들이 경제적 지원을 해주면 '행동 대 행동''말대 말'의 원칙에 따라 핵을 폐기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북한이 위조 달러를 찍어내고 마약을 밀매한 사실이 적발되면서 상황은 어긋나기 시작했다. 미국은 북한의 위폐 제조와 돈세탁을 도왔다는 이유로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게 된다. 이 조치로 BDA는 사실상 국제금융시장에서 고립됐고 부도를 막기 위해 출금을 중단시켰다. 북한 계좌에 들어있던 2400만달러도 동결됐다.
이 조치는 미국이 국제적인 달러 위조,특히 북한의 행위를 잡아내기 위해 3년간 진행했던 수사의 연장선상에 있었을 뿐이었으나 9·19 공동성명 채택과 시점이 겹쳤기 때문에 북한은 이를 '미국이 뒤통수를 친 행위'로 받아들였다.
김정일 위원장은 이후 지난 1월 중국을 방문해 중국에 BDA조치를 해결해달라고 요구했으나 당장 협조를 받아내지는 못했고,중국이 7월 저우융캉 중국 공안부장을 미국에 보내 재무·법무 장관을 만나 위폐제조와 마약거래 혐의를 자진 신고하겠다는 북한의 계획을 전달했으나 미국은 물러서지 않았다.
BDA은행이 뒤늦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자금이 들고나가던 창구로 밝혀지면서 미국은 김정일 정권의 자금줄을 파헤치는 새로운 수사에 착수하게 됐기 때문이다.
북한은 BDA조치가 파괴적이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미국의 '북한 정권 흔들기'가 계속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줄곧 미국과의 직접 담판 및 금융 제재 해제를 요구했으나 미국은 "BDA조치 등은 외교가 아니라 사법 영역"이라며 협상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된 것은 북한에 있어서 중대한 상황 변화를 의미했다. 1998년 9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가 본격적으로 출범했을 때 김정일 정권에는 두 가지 약점과 두 가지 강점이 있었다. 약점은 경제적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과 국제적인 연대가 약하다는 점,강점은 일당 독제에 힘입은 정치적 정통성과 이데올로기적 세뇌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통제였다. 김정일 위원장은 정권을 잡은 후 처음 몇 년 동안 약점을 강화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1998년 9월 헌법개정,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개최,2002년 7월 7·1경제관리개선조치와 9월 북·일 정상회담 개최 등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지연되고 일본과는 일본인 납치 문제가 불거지면서 기대했던 결과를 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경제난이 심화됐을 뿐 아니라 부정부패와 민심이반 등 각종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허 실장은 "결국 북한은 체제유지를 위해 경제난 해결을 통한 유효성 제고와 대미·일 관계정상화를 통한 연대성 강화를 추진해왔으나 이것이 어렵게 되자 다시 통제적 장치와 이데올로기적 정통성을 강화하는 정책으로 돌아가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했다는 것은 이 같은 정책 전환의 극단적인 증거다. 북한이 미국과는 협상의 여지가 희박하다고 판단하고 부시 정권이 교체될 때까지 내부 통제에 만전을 기하면서 버티기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홍익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은 앞으로 핵을 보유한 강성 대국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주민들을 설득하는 한편 외부 위기를 고조시키면서 체제 응집력을 높이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든 북한은 위조지폐를 만들고 마약을 밀매하며 이제는 핵 폭탄까지 손에 넣게 되었다.
북한이 실시한 핵실험은 위력이 국제 평균에 한참 못 미쳤다는 평가다. 하지만 유엔이 대북 제재 수순을 밟고 있어 북한이 치러야 할 대가는 결코 적지 않아 보인다. 국제적 고립과 자연재해로 1995년부터 3년간 수백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던 소위'고난의 행군' 시기가 북한에 다시 닥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일고 있다.
주변국의 만류와 유엔이 국제적인 제재 가능성까지 예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데 대해 허문영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우리가 보기엔 지극히 비이성적인 선택이지만 북한 정권 당국자들은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내세우는 명분은 "미국이 대화를 계속 거부하면서 '핵전쟁 위협과 제재압력 책동'으로 우리를 고립 압살 시키려하기 때문에 '자위적 전쟁억제력 강화' 차원에서 핵실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북한은 6자회담이 가동되던 지난해 9월19일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와 '9·19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참가국들이 경제적 지원을 해주면 '행동 대 행동''말대 말'의 원칙에 따라 핵을 폐기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북한이 위조 달러를 찍어내고 마약을 밀매한 사실이 적발되면서 상황은 어긋나기 시작했다. 미국은 북한의 위폐 제조와 돈세탁을 도왔다는 이유로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게 된다. 이 조치로 BDA는 사실상 국제금융시장에서 고립됐고 부도를 막기 위해 출금을 중단시켰다. 북한 계좌에 들어있던 2400만달러도 동결됐다.
이 조치는 미국이 국제적인 달러 위조,특히 북한의 행위를 잡아내기 위해 3년간 진행했던 수사의 연장선상에 있었을 뿐이었으나 9·19 공동성명 채택과 시점이 겹쳤기 때문에 북한은 이를 '미국이 뒤통수를 친 행위'로 받아들였다.
김정일 위원장은 이후 지난 1월 중국을 방문해 중국에 BDA조치를 해결해달라고 요구했으나 당장 협조를 받아내지는 못했고,중국이 7월 저우융캉 중국 공안부장을 미국에 보내 재무·법무 장관을 만나 위폐제조와 마약거래 혐의를 자진 신고하겠다는 북한의 계획을 전달했으나 미국은 물러서지 않았다.
BDA은행이 뒤늦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자금이 들고나가던 창구로 밝혀지면서 미국은 김정일 정권의 자금줄을 파헤치는 새로운 수사에 착수하게 됐기 때문이다.
북한은 BDA조치가 파괴적이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미국의 '북한 정권 흔들기'가 계속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줄곧 미국과의 직접 담판 및 금융 제재 해제를 요구했으나 미국은 "BDA조치 등은 외교가 아니라 사법 영역"이라며 협상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된 것은 북한에 있어서 중대한 상황 변화를 의미했다. 1998년 9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가 본격적으로 출범했을 때 김정일 정권에는 두 가지 약점과 두 가지 강점이 있었다. 약점은 경제적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과 국제적인 연대가 약하다는 점,강점은 일당 독제에 힘입은 정치적 정통성과 이데올로기적 세뇌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통제였다. 김정일 위원장은 정권을 잡은 후 처음 몇 년 동안 약점을 강화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1998년 9월 헌법개정,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개최,2002년 7월 7·1경제관리개선조치와 9월 북·일 정상회담 개최 등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지연되고 일본과는 일본인 납치 문제가 불거지면서 기대했던 결과를 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경제난이 심화됐을 뿐 아니라 부정부패와 민심이반 등 각종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허 실장은 "결국 북한은 체제유지를 위해 경제난 해결을 통한 유효성 제고와 대미·일 관계정상화를 통한 연대성 강화를 추진해왔으나 이것이 어렵게 되자 다시 통제적 장치와 이데올로기적 정통성을 강화하는 정책으로 돌아가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했다는 것은 이 같은 정책 전환의 극단적인 증거다. 북한이 미국과는 협상의 여지가 희박하다고 판단하고 부시 정권이 교체될 때까지 내부 통제에 만전을 기하면서 버티기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홍익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은 앞으로 핵을 보유한 강성 대국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주민들을 설득하는 한편 외부 위기를 고조시키면서 체제 응집력을 높이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든 북한은 위조지폐를 만들고 마약을 밀매하며 이제는 핵 폭탄까지 손에 넣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