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차례상 음식으로는 뭐니뭐니 해도 '전'을 빼놓을 수 없다.
얇게 저민 고기나 생선 따위에 밀가루를 바르고 달걀을 입혀 기름에 지진 음식이 '전'이다.
재료에 따라 굴전 동태전 새우전 버섯전 호박전 파전 부추전 녹두전 김치전 감자전 등 이름도 부지기수이다.
'전(煎)'은 물론 한자어이다.
본래 우리 고유어는 '저냐'이다.
한자어인 전에 밀려 요즘 저냐란 말을 쓰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지만 어원적으로 보면 저냐가 앞선 말이다.
다시 말해 고유어 저냐를 한자로 바꿔 쓴 게 '전'이란 얘기다.
'천엽'은 알아도 '처녑'은 잘 모른다면 이 역시 마찬가지다.
소나 양처럼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은 위(胃)를 몇 개씩 갖고 있는데,그 가운데 제3위(胃)를 음식으로 가리킬 때 '처녑'이라 부른다.
처녑은 수많은 잎 모양의 얇은 조각으로 구성돼 있는데,예부터 이를 볶기도 하고 즙을 내거나 날로 먹기도 했다.
이를 각각 처녑볶음,처녑즙,처녑회라 한다.
이 처녑을 한자로 나타낸 게 '천엽(千葉)'이다.
따라서 처녑과 천엽은 같은 말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형태가 비슷한 말로 '천렵'이란 게 있는데,이는 전혀 다른 것이다.
'천렵(川獵)'은 냇물에서 고기 잡는 일을 뜻한다.
지금은 하천 물이 오염돼 천렵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곳이 드물지만 아직도 시골에서는 동네 어귀를 흐르는 맑은 개울에 들어가 작은 어망으로 물고기를 잡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로 이런 고기잡이가 '천렵'이고 그렇게 고기 잡는 사람을 '천렵꾼'이라 한다.
흔히 이렇게 잡은 물고기는 냇가에서 바로 끓여 먹기도 하는데 그 음식이 '천렵국'이다.
우리말의 여러 유형 중에는 이처럼 고유어를 한자로 나타낸 말이 꽤 많다.
지난 호에서 살펴본,한자어에서 유래해 고유어처럼 변한 말들과는 반대되는 경우이다.
우리 글자가 없던 옛날에는 한자를 이용해 소리를 옮기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바로 취음(取音)이다.
취음은 우리말을 한자의 뜻과는 상관없이 음을 취하여 한자로 적는 것인데 간혹 이를 원말로 잘못 아는 경우가 많다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가령 주전자나 남편,야단법석 같은 말은 우리 고유어일까 한자말일까.
사전에는 이런 것들이 酒煎子,男便,野壇法席으로 올라 있다.
하지만 이는 취음일 뿐 본래 말이 아니다.
한글학자인 정재도 선생은 사전에서 잘못 올린 이런 말들을 모아 취음의 한자는 본래 의미를 지닌 게 아니므로 이젠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야단법석'은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 서로 다투고 떠들고 시끄러운 판'이다.
여기에 한자 野壇과 法席을 합성해 '야외에 베푼 설법 강좌'라는 식으로 풀이를 해 우리말에 한자를 덮어씌우지만,이는 문헌적 근거도 없는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결국 주전자니 남편이니 야단법석이니 하는 말은 우리 고유어이므로 한글로만 적어야지 한자는 단지 과거에 취음으로 이용하던 허깨비라는 것이다.
우리말의 뿌리를 찾는 과정은 그나마 있는 고유어를 온전히 지키고 살려가는 길이기도 하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
얇게 저민 고기나 생선 따위에 밀가루를 바르고 달걀을 입혀 기름에 지진 음식이 '전'이다.
재료에 따라 굴전 동태전 새우전 버섯전 호박전 파전 부추전 녹두전 김치전 감자전 등 이름도 부지기수이다.
'전(煎)'은 물론 한자어이다.
본래 우리 고유어는 '저냐'이다.
한자어인 전에 밀려 요즘 저냐란 말을 쓰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지만 어원적으로 보면 저냐가 앞선 말이다.
다시 말해 고유어 저냐를 한자로 바꿔 쓴 게 '전'이란 얘기다.
'천엽'은 알아도 '처녑'은 잘 모른다면 이 역시 마찬가지다.
소나 양처럼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은 위(胃)를 몇 개씩 갖고 있는데,그 가운데 제3위(胃)를 음식으로 가리킬 때 '처녑'이라 부른다.
처녑은 수많은 잎 모양의 얇은 조각으로 구성돼 있는데,예부터 이를 볶기도 하고 즙을 내거나 날로 먹기도 했다.
이를 각각 처녑볶음,처녑즙,처녑회라 한다.
이 처녑을 한자로 나타낸 게 '천엽(千葉)'이다.
따라서 처녑과 천엽은 같은 말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형태가 비슷한 말로 '천렵'이란 게 있는데,이는 전혀 다른 것이다.
'천렵(川獵)'은 냇물에서 고기 잡는 일을 뜻한다.
지금은 하천 물이 오염돼 천렵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곳이 드물지만 아직도 시골에서는 동네 어귀를 흐르는 맑은 개울에 들어가 작은 어망으로 물고기를 잡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로 이런 고기잡이가 '천렵'이고 그렇게 고기 잡는 사람을 '천렵꾼'이라 한다.
흔히 이렇게 잡은 물고기는 냇가에서 바로 끓여 먹기도 하는데 그 음식이 '천렵국'이다.
우리말의 여러 유형 중에는 이처럼 고유어를 한자로 나타낸 말이 꽤 많다.
지난 호에서 살펴본,한자어에서 유래해 고유어처럼 변한 말들과는 반대되는 경우이다.
우리 글자가 없던 옛날에는 한자를 이용해 소리를 옮기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바로 취음(取音)이다.
취음은 우리말을 한자의 뜻과는 상관없이 음을 취하여 한자로 적는 것인데 간혹 이를 원말로 잘못 아는 경우가 많다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가령 주전자나 남편,야단법석 같은 말은 우리 고유어일까 한자말일까.
사전에는 이런 것들이 酒煎子,男便,野壇法席으로 올라 있다.
하지만 이는 취음일 뿐 본래 말이 아니다.
한글학자인 정재도 선생은 사전에서 잘못 올린 이런 말들을 모아 취음의 한자는 본래 의미를 지닌 게 아니므로 이젠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야단법석'은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 서로 다투고 떠들고 시끄러운 판'이다.
여기에 한자 野壇과 法席을 합성해 '야외에 베푼 설법 강좌'라는 식으로 풀이를 해 우리말에 한자를 덮어씌우지만,이는 문헌적 근거도 없는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결국 주전자니 남편이니 야단법석이니 하는 말은 우리 고유어이므로 한글로만 적어야지 한자는 단지 과거에 취음으로 이용하던 허깨비라는 것이다.
우리말의 뿌리를 찾는 과정은 그나마 있는 고유어를 온전히 지키고 살려가는 길이기도 하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