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끝난 지난 9일 국내 증권시장에 메가톤급 악재가 터졌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것이다.

이후 언론지상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용어 중 하나가 바로 '컨트리 리스크(Country Risk·국가위험도)'다.

한국의 컨트리 리스크가 부가되면서 증시가 급락하는 '블랙 먼데이(검은 월요일)'가 재연됐다.

국내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이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한국 기업의 가치가 왜 해외기업에 비해 저평가되고 국내 증시가 할인(디스카운트)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도 컨트리 리스크에서 찾을 수 있다.


다시 부각된 컨트리 리스크

'컨트리 리스크'는 외국에 직접 투자하거나 차관을 빌려줄 때 그 채무변제 등을 둘러싸고 융자대상국 자체에서 야기되는 위험성, 해당국의 신용도 등을 포괄적으로 일컫는 용어다.

따라서 국제수지,외환보유액,대외채무 등의 경제적인 요소를 기초로 정치의 안전성과 국가 위상 등을 종합해 판단한다.

국내 증시에서는 분단된 상황에서 북한이 야기하는 '지정학적인 위기'를 일반적으로 지칭한다.

예컨대 이번뿐 아니라 전에도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실험을 실시한다든지 핵무기 보유 관련 발언을 하는 것 등이 컨트리 리스크를 부각시키는 행위에 속한다.

이번에는 증시에 핵구름이라는 컨트리 리스크가 드리워졌다.

북한은 9일 핵 실험을 실시했다고 발표했다.

국내 연구기관들도 북한에서 지진파를 감지했고 이는 핵 실험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정부는 이번 핵 실험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안정을 위협하는 중대사태로 규정하고 북한을 강력 규탄했고 국제사회도 대북제재에 나섰다.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 등 주변국들의 우려는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일본이나 대만도 핵 보유를 추진,동북아의 '핵 도미노' 사태가 걱정된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그 파장은 어디까지

이번 핵 실험 강행이 불러올 파장이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북핵 사태 해결 추이에 따라 증권시장의 변동성도 커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당분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란 점에서 향후 증시는 그야말로 '시계(視界) 제로'라는 진단도 제기된다.

미국의 대북 강경제재 여부에 따라 주가지수의 폭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단 북한의 핵실험 강행으로 증시는 당분간 지정학적 리스크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북핵 실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 양상에 따라 증시 향방이 좌우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예측 가능한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무력제재보다는 외교적 압박과 강도 높은 경제 제재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아니더라도 증시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처럼 국내 증시는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위험 요소가 부각될 때마다 큰 홍역을 치렀다.

국내 증시가 선진국이나 아시아 신흥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요인 중 하나도 바로 컨트리 리스크 때문이다.

잠재적인 불안요인이지만 한번 불거지면 정치권은 물론 경제권도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기 때문이다.

다가올 경제 상황을 미리 반영하는 증시는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일각에서는 학습효과를 거론하기도 한다.

과거에도 수차례 반복돼 온 컨트리 리스크여서 이번에도 단기 충격에 그칠 것이란 얘기다.

때문에 이런 상황이 오히려 투자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핵실험 이슈는 과거 컨트리 리스크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지금까지는 위협에 그쳤지만 이번에는 실제로 '액션'을 취했다는 점 때문이다.

사실 외국계 증권사들은 국내 전문가들보다 컨트리 리스크에 대해 훨씬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모건스탠리의 경우 이번 북한 핵실험 사태가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 2003년보다 더 크고 오래갈 수 있다며 최근 증시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어쨌든 컨트리 리스크라는 불확실성이 어떻게 방향을 잡아가느냐가 증시를 전망하는 좌표임에 틀림없다.

김진수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 true@hankyung.com


< 과거 사례 살펴보니 … >

북한의 핵 실험 강행으로 증시 주가가 큰 폭으로 빠지면서 이전 북핵 리스크가 부각됐을 때의 주가 움직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2002년 이후 북핵 리스크가 발생해 주식시장에 충격을 던진 경우는 모두 14차례에 달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이후 일주일간의 주가 움직임을 보면 주가가 내린 적은 단 한 차례에 그쳤다.

2002년 12월의 '북한 핵봉인 제거' 조치 개시 이후 일주일 동안 주가가 5.3% 하락한 것이 유일하다.

그만큼 국내 증시는 수차례의 학습효과를 통해 북핵 문제에 대해 내성을 갖춰 주가 변동성이 크지 않았다.

다시 말해 북핵 문제가 대부분 단기 충격에 그쳤고 며칠 내 정상을 회복한 것이다.

북핵 리스크가 터진 당일 주가 변동폭을 보면 2003년 3월17일 북한 전투기가 미국 정찰기에 접근했던 당시 코스피지수가 하루 새 4.17% 급락해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같은 해 북한이 핵 보유를 시인한 4월25일 3.69% 하락하며 두 번째 낙폭을 나타냈다.

또 같은달 29일 미국이 북핵 8기 보유를 확인한 날에는 2.93%,2002년 12월23일 북한 핵봉인 제거 당시에는 2.55% 각각 하락했다.

북핵 리스크 발생 후 주가지수 그 이전 수준으로 복원된 기간도 짧았다.

14차례 가운데 6번은 불과 하루 주가가 빠진 후 다음날 곧바로 반등했다.

이틀 내지 사흘간 조정을 거친 후 반등한 사례는 세 차례였다.

2002년 12월23일 7일 연속 조정받은 것이 역대 최대 기록이다.

북핵 리스크 발생에 따른 코스피지수의 평균 조정기간은 2.29일이었다.

외국인은 북핵 리스크가 일어난 날 대부분 매도 우위를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