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 · 경제학 >


->한국경제신문 9월29일자 A39면

험한 항해 길에 올라 숱한 시련을 잘 견뎌 이겨낸 율리시스지만 암초가 널린 물목이 겁났다. 뱃사람의 넋을 빼앗아 난파시키려는 못된 요정 사이렌의 노래소리 유혹을 이겨내기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다. 선원들에게 자기 몸을 배 한가운데 돛에 단단히 밧줄로 결박하도록 했다. 사이렌의 노래가 유혹적이더라도 암초 쪽으로 배를 몰고 가지 않도록 미리 단속하기 위함이었다.

한국경제호의 항해는 어떠한가? 근년 경제성장실적이 달성 가능한 잠재수준을 밑돌고 있다. 왜 이런가? 해외시장 사정이 나쁜 탓으로,자원부족과 높은 국제원자재 가격 탓으로 핑계될 수 없다.

자원 부족은 지난날 권위주의 정부에서도 겪었지만 1차,2차 세계적 원유파동을 극복하면서도 고도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근래 원유 구리 등 원자재가격 폭등은 분명 악재이지만 경쟁국가들도 모두 공통적으로 당면한 문제이지 유독 한국경제만 겪는 게 아니다.

경제의 큰 어려움은 국내에서 조성되고 있다. 바다 물밑에 널려 있는 암초가 움직여 와서가 아니라 배가 다가가 난파하기 때문에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는 것이 율리시스 신화의 가르침이다. 요즘 한국은 스스로 암초에 다가가고 있다.

작은 예 하나를 들면 공기업의 민영화 문제다. 국책금융기관들의 고삐 풀린 예산집행이 세인의 지탄을 받고 있다. 이 틈에 재정경제부가 슬쩍 우리금융지주의 민영화 계획을 접을 속셈을 드러냈다.

외환은행 매각과정에 있는 먼지,없는 먼지 모두 털겠다는 사직당국의 경직된 수사에 시달려온 관계당국의 고충은 십분 이해된다. 그렇다고 향후 우리은행 기업은행 민영화와 산업은행 구조조정을 아예 백지화하겠다는 발상은 잘못된 것이다.

그 경우 모든 은행들은 국책기관들과의 불평등 경쟁에 시달리게 될 것이고,결국 민간은행들조차 국책기관 시늉을 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체신금융도 정부에서 떼어내 민영화 조치를 해야 시종 일관된 금융자율화를 이룩할 수 있다. 그래야 금융부실화로 빚어진 1997년과 같은 위기를 사전에 방비할 수 있다.

정부 스스로 암초를 만들고 있다. 대표사례는 부동산 정책에 있다. 몇 차례에 걸친 정부 부동산대책으로 얻은 것은 인기지역 주택공급을 위축시키는 한편,지역균형발전 등의 명분으로 전국 각지에 살포한 수십조원의 자금 가운데 일부가 인기지역으로 환류되도록 물꼬를 터놓은 꼴이다. 이처럼 공급과 수요의 비대칭적 압력이 축적되면 불원 시장이 폭발할 우려가 있다.

종합부동산세 등 관련세의 인상은 요즘 전세가의 급등을 초래해 비주택소유의 서민층은 물론 중산층마저 살림살이가 위협받고 있다. 서민 주거생활 안정의 목표를 스스로 역행하는 조치가 서민의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다.

경제의 엔진은 어디인가? 예전처럼 정부가 아니다. 기업,그것도 '참여정부'의 미운털 박힌 대기업의 몫이 크다. 해외에서는 삼성 현대 LG 포스코 등이 나라의 얼굴이다.

그러나 기업인들은 조그만 비리혐의가 있어도 출국금지 조치가 예사다. 그러나 강성노조와 NGO들은 자유롭다. 노조의 불법시위 때 사직당국은 수수방관하고 있고,최근 해외 투자유치설명회가 개최된 현지에 원정시위에 나선 약방에 감초격인 인물들에게는 출국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홍콩 시위 원정 때는 쇠막대기도 휴대할 수 있도록 보안이 허술했다. 이만저만한 불공평이 아니다.

율리시스는 선상반란은 겪지 않았기에 암초 물목을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한.미 FTA협상의 경우 청와대 전직 및 측근인사들이 반기를 들고 있지만 정부는 통제 불능이다. 이래가지고서야 난파를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국민은 정부의 초심을 믿고 싶다. 서민이 마음 편하고,잘 살게 하겠다는 초심이 관철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일자리가 제대로 만들어지고 있는가? 아무리 좋은 뜻으로 착수했던 일도 결과가 나쁘면 그만이다.


< 정부 의도와는 달리 결과는 부작용만 … >

세계 어느 나라에도 경제가 잘못되길 바라는 정부는 없을 것이다. 경제는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다. 경제분야의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고선 성공한 정부라고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제란 것이 묘해서,자꾸 인위적인 수단을 강구할수록 이상하게 꼬인다. 정부는 끊임없이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기 일쑤다. 하지만 경제에선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진 않는다. 차라리 아무 것도 안한 것만 못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몇 년 전 정부와 국회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을 만들어 잦은 임대료 인상으로 영세 상인들이 고통받지 않게 하겠다고 장담했다. 영세 상인들이 무조건 2년 이상 임대료 인상없이 가게를 빌려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이 법이 시행되자 상가 주인들은 2년 동안 임대료를 못 올릴테니 아예 계약할 때 앞으로 올릴 것까지 미리 붙여 임대료를 대폭 올려받았다. 영세 상인들은 급작스레 늘어난 임대료 부담에 허덕대다 문을 닫는 경우가 속출했다.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는 다산칼럼에서 '한국경제호'라는 배가 처해있는 암초 같은 현실을 조목조목 짚고 있다. 정부는 율리시스처럼 한국경제호의 선장인데,국민이 탄 배를 암초로 몰고가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경제상황을 살펴보면 배의 엔진 역할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특히 대기업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내수 경기가 좀체 살아나지 못해도 대기업의 적극적인 수출이 한국 경제에는 큰 버팀목이 되고 있다. 그런데 조금만 혐의가 있어도 해외에선 나라의 얼굴과도 같은 기업인들에게 출국금지 조치부터 내리고 보자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이래서는 기업인들이 제대로 어깨를 펴고 적극적으로 투자하고,해외시장을 공략하고,합작계약을 성사시키기 어렵게 된다. 반면 외국인들이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로 꼽는 강성 노조의 불법시위나 노동단체가 해외 투자유치 설명회에 원정시위까지 감행한 데 대해선 수수방관한다고 김 교수는 꼬집는다.

정부가 국책금융기관의 민영화 계획을 슬그머니 접고 관료들의 영향력을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면 그 자체가 경제의 암초다. 또한 부동산문제도 정부가 일부 인기지역 집값을 잡으려다 결국 서민들의 전셋값 급등을 몰고 왔다고 김 교수는 비판한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정부는 정책을 펴면서 말(의도)로만 서민을 위한다고 할 게 아니라 그 결과도 반드시 서민에게 이로워야 '서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판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