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이후 미국 경제 ‥ 뉴욕 떠났던 투자자 다시 맨해튼行
미국에서 9·11 테러가 발생한 지 만 5년이 지났다.

많은 전문가들은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할 당시 향후 미국 경제가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지난 5년 동안의 미국 경제는 당시의 우려와 달리 견실한 성장세를 지속해 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9·11 이후 정상을 되찾은 미국 경제'라는 특집기사를 통해 "5년 전 미국이 공격당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미국 경제가 활력을 잃고 기업들의 보안 비용 등이 증가할 것으로 우려했지만 실제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효율성이 더 높아지고 미국 경제는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해 왔다"고 보도했다.

WSJ는 9·11 테러 발생 후 단기적으로는 항공산업과 자동차산업이 충격을 받고 국제 유가가 급등하는 등 부정적 영향이 나타났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 인하와 부시 행정부의 감세 정책 등에 힘입어 미국 경제가 곧 회복세로 돌아섰다고 분석했다.


○빠르게 회복하는 미국 경제

9·11 이후 추가 테러가 두려워 뉴욕을 떠났던 내로라하는 회사들도 다시 맨해튼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테러 이후 텅 비었던 오피스 건물들이 속속 들어차고 있는 것.9·11 테러 이전 4%에 불과했던 맨해튼 오피스 건물의 공실률(空室率)은 2003년에는 12%로 높아졌다가 올 6월 말에는 6%대로 낮아졌다.

또 미국 기업들의 영업이익도 2001년 이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미국 기업의 영업이익이 처음으로 1조2500억달러를 넘어섰으며,미국 항만을 경유한 컨테이너 물량 역시 2001년 대비 36.8% 증가했다.

9·11 이후 미국 기업들의 테러 관련 보험비용도 크게 낮아졌다.

보안이 대폭 강화되면서 그간 미국 본토를 겨냥한 테러가 전혀 없었고,이 같은 영향으로 올 들어 미국 기업들의 테러 보험비용은 전년 대비 2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미국 기업 최고 재무책임자(CFO)들을 상대로 기업 경영의 위협요인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테러리즘'을 꼽은 응답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경제도 함께 살아나

미국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경제도 되살아나고 있다.

전 세계 외국인 투자 규모가 2001년에 절반으로 줄어들 정도로 투자의욕이 꺾이고,국경 경계 강화와 상품 유·출입에 대한 검색 강화로 세계화 추세가 급속히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지만 정상을 회복하는 데는 5년이면 충분했다.

2000년 8조달러에서 2001년 7조8000억달러로 줄었던 세계 교역규모는 2005년 12조달러로 증가했다.

세계 관광객 수도 2001년 연인원 6억8800여만명에서 지난해엔 8억800여만명으로 늘어났다.

역설적으로 테러 특수(特需)도 나타났다.

9·11 테러가 터지자마자 미 FRB는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했다.

계속된 금리인하로 2003년엔 사상 최저인 연 1.0%까지 떨어뜨렸다.

미 의회에서 논란을 빚던 부시 행정부의 감세정책도 탄력을 받았고,미국으로의 수출량이 불어난 국가들은 톡톡히 특수를 맛보았다.


○테러의 잔해는 남아 있어

그렇다고 테러의 상흔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도처에 깔린 경찰은 여전히 테러와의 전쟁 중임을 느끼게 한다.

웬만한 빌딩에 들어갈 때면 공항 검색대 못지 않은 까다로운 검색 과정을 거쳐야 한다.

월가를 아예 요새화한다는 계획도 추진되고 있다.

미국엔 재정적자와 무역적자 등 쌍둥이 적자 심화라는 잔해도 남겨졌다.

불붙은 소비 열기로 무역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져 지난해엔 7000억달러를 넘어섰다.

국방비도 2001년 3250억달러에서 올해 4410억달러로 36%나 증가해 고스란히 재정적자로 쌓이고 있다.

9·11 테러는 미국이 추진하는 세계 무역질서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테러 전만 해도 중남미와 자유무역지대를 설치하는 데 중점을 뒀다.

그러나 테러 이후 세계경제를 포용하는 정책으로 바뀌면서 이른바 '도하 라운드'라는 다자 간 무역 협상 카드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도하 라운드가 선·후진국 간의 갈등으로 협상이 중단돼 미국의 정책을 진퇴양난으로 빠뜨리는 등 국가 간 갈등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안정락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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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투자자들은‥금.헤지펀드 등 안전자산.위험분산 선호 ]

9·11 테러가 발생한 지 5년이 지난 현재 미국 투자자들의 행태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미국의 경제 주간지 배런스는 최근 "미국 투자자들이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보다는 금과 같은 안전자산과 위험을 분산시키는 헤지펀드 등을 선호하게 됐다"며 "세계 최고의 금융 시장인 뉴욕의 명성이 크게 추락하는 변화가 생겨났다"고 보도했다.

배런스에 따르면 9·11 당시 주식시장이 한 주 동안 11.6%나 폭락하자 투자자들이 위험자산보다는 안전자산인 금과 현금을 선호하게 됐고 기업 역시 현금 보유비중을 늘리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테러 직전인 2001년 9월10일 온스당 273달러였던 금값은 올초 온스당 725달러까지 급등했다.

또 미국 투자자들은 예전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해외펀드 투자를 늘리기 시작해 현재 그 투자비율이 국내 투자자산 대비 30%에 육박하고 있다.

위험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파생상품시장도 급속도로 성장했다.

대출자산의 가치를 감소시키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손실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보전해 주는 파생상품인 '신용디폴트스와프(CDS)'는 테러 이전만 해도 시장규모가 미미했으나 지난해 말에는 17조달러 규모로 급성장했다.

맞춤형 투자가 가능한 헤지펀드 자산도 테러 이전 대비 2배로 늘어났다.

이와 함께 배런스는 9·11 테러 이후 가장 우려할 만한 변화로 주택시장 거품을 들었다.

테러 이후 초저금리 기조가 실물자산 선호 현상과 맞물리면서 주택시장의 과열을 초래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