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 김병연 서울대 교수 · 경제학 >

->한국경제신문 9월12일자 A38면

올해 초 미국 보스턴에서 개최된 미국경제학회 연례회의에서 기업가 정신의 중요성과 그 결정 요인을 다루는 여러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특히 한 세션에서는 이른바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가 고성장을 구가하는 것은 높은 기업가 정신 때문이라고 강조하면서 어떤 요인들이 이들 나라의 기업가 정신을 높였는지를 분석한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이 세션에는 조지프 슘페터의 대(代)를 이어 기업가 정신이 경제성장의 핵심 동인(動因)이라고 설파한 대(大)경제학자 윌리엄 보몰이 노구를 이끌고 참석해 후배 학자들을 격려했다.

사실 경제학에서 뿐만 아니라 역사학에서도 기업가 정신은 한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만큼 중요함을 발견한 연구성과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다른 나라가 아니라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된 중요한 원인으로 영국에서는 많은 인재들이 기업가를 유망 직종으로 선택한 반면 프랑스에서는 재능 있는 인재들 중 군인 및 관료 지망생들이 많았던 까닭이라고 한다.

이렇게 높은 기업가 정신으로 전성시대를 구가한 뒤 영국 경제가 점차 쇠퇴하자 그 이유를 영국 국민,특히 상류층의 반(反)기업정서에서 찾고 있는 연구도 있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국과 중국 일본의 수도(首都)에 거주하는 시민을 대상으로 자국에서의 기업 및 경제활동 인식을 설문조사한 결과 한국의 반기업정서는 이 3개국 중에서 가장 높았다고 한다.

이 결과는 그 이전에 전 세계적으로 실시한 세계 가치관조사의 결과와도 일맥상통한다. 즉 1999~2000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대상 51개국 중 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순위로 40위를 기록했다.

한국보다 기업 신뢰도가 낮은 나라는 남미,혹은 구(舊)사회주의 체제 이행국가가 대다수인 반면 주요 선진국뿐만 아니라 중국 대만 등의 기업 신뢰도도 한국을 앞섰다.

세계 가치관조사의 자료를 이용해 반기업정서가 장기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보면 기업 신뢰도가 10%포인트 증가할 때 연 평균 경제성장률은 0.45%포인트 증가한다. 이는 우리 국민의 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1981년의 54.3%에서 1999년 30.0%로 하락했기 때문에 연 평균 경제성장률이 1.1%포인트 감소했다는 의미다.

즉 국민들의 반기업정서가 부메랑이 되어 자신과 가족,그리고 이웃의 일자리 10만개를 없애버린 것이다. 이는 반기업정서로 인하여 기업가가 되려는 사람의 수가 감소하고 투자활동 등이 위축되며 인적 자원의 배분이 왜곡되기 때문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직시(直視)해야 한다. 정치가나 관료들은 기업이나 기업주를 소위 '손을 보거나' 규제의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을 교정해야 한다. 자신들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할지 모르나 선진국에 가서 공무원과 정치인들이 어떻게 기업을 대하는지 보고 배워야 한다.

심지어는 교수마저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 온갖 규제로 연구활동을 얽어매는 판에 기업에는 오죽하랴는 생각이 든다. 사전적으로 금지 활동을 조목조목 적시해 못하도록 막는 것보다 위법사실에 대해 사후적으로 엄격한 처벌을 가하는 것이 더 선진화되고 효과적인 규제다.

국민도 기업관을 바꾸어야 한다. 기업이 세금을 정직하게 내고 투명한 방식으로 이윤을 창출한다면 기업의 의무,비유컨대 대한민국 남자로서 국방의 의무를 다한 셈이다. 모든 군인에게 강재구 소령이 되거나 이순신 장군처럼 되어 전사하라고 한다면 누가 군대에 가려 하겠는가? 마찬가지로 기업주에게 사회에 봉사하기 위해 기업을 경영하라고 요구한다면 기업을 하려는 사람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기부 등으로 사회에 공헌하는 기업에는 기립 박수를 보낼 일이다. 그러나 기부는 못하더라도 이윤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종업원들의 일자리를 지키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나가는 한국의 많은 기업가에게도 진심어린 박수를 보내야 한다. 반기업정서는 기업가 정신을 죽여 경제를 파괴하는 독(毒)이다. 기업가 정신이 살아야 경제도,우리도 산다.


< 기업들 해외선 융숭한 대접 받는데 … >

삼성전자가 1995년 영국 윈야드에 복합가전공장을 지을 때 영국 정부는 도로를 닦아줬고,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직접 나와 준공 테이프를 끊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말레이시아를 방문했을 때 압둘라 말레이시아 총리가 현지 명물인 콸라룸푸르의 88층 쌍둥이빌딩(삼성)과 페낭교(현대)를 한국 기업이 건설했다며 거듭 칭찬해 우쭐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듯 우리나라 기업과 기업가들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훨씬 융숭한 대접과 평가를 받는다. 한국 기업의 해외 투자를 현지인들은 고용 창출과 국가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환영하기 때문이다. 특히 영국 아일랜드 말레이시아 등 기업이 대접받는 곳에는 경제에 활력이 느껴진다.

도전,창의,열정으로 요약되는 기업가 정신이 적극 발휘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줬기 때문이다. 그것이 해외가 아닌 우리나라면 더욱 바람직할텐데….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이 칼럼에서 우리 사회가 기업을 칭찬하는 데 너무 인색하다고 비판한다. 이른바 반기업정서가 기업을 '손 볼 대상'쯤으로 여기는 정치인,관료뿐 아니라 일반 국민 사이에도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이래서는 기업가 정신이 발휘되고 기업이 왕성하게 활동해 경제성장을 견인하길 기대하기 어렵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통과의례식으로 기업을 '동네 북'처럼 매도해선 곤란하다. 한창 도전의식에 불타야 할 젊은이들이 공무원시험 준비에 목을 매는 대신 기업가를 꿈꾸게 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국민의 상당수는 기업의 주된 역할이 사회공헌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여긴다. 이는 일찌기 아담 스미스가 갈파했듯이 국부(國富)는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된다는 기본적인 원리를 망각한 때문이다.

기업들이 이윤을 추구하면서 서로 경쟁할수록 최고의 품질과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게 마련이다. 그럴수록 우리 삶은 윤택해졌다. 바로 이 점이 몰락한 공산주의 독점경제와 구분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만의 뚜렷한 장점이다.

우리가 기업에 기대할 것은 한 마디로 정당한 이윤을 통해 세금을 내고,더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이 칼럼은 지적한다. 그 이상으로 사회에 기여해 준다면 금상첨화이지만 마치 맡긴 돈을 내놓으라는 식으로 기부를 요구할 대상은 아니란 이야기다. 그래야 나라가 살고 국민도 산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