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학자인 비외른 롬보르가 '회의적 환경주의자'란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매우 역설적이다.

당초 롬보르 자신도 그린피스의 일원이었고 환경을 등한시하는 성장론자들을 공격하기 위해 각종 환경관련 통계 자료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연구가 거듭될수록 성장론자들의 주장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연히 책의 내용은 애초의 연구목적과는 정반대로 좌파 환경 보호론자들을 공격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사이먼과 엘릭의 내기

1972년 세계적 미래연구기관인 로마클럽은 '성장의 한계'(The Limit To Growth)란 보고서를 출간했다.

이 보고서는 "금 은 석유 등 재생 불가능한 자원은 조만간 고갈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 분통을 터트린 경제학자가 있었다.

미국의 경제학자 줄리언 사이먼이었다.

그는 1980년 "어떤 물질이든 적어도 1년 후 가격이 지금보다 더 떨어져 있을 것이란 데 1만달러를 걸겠다"고 선언했다.

품목은 상대방이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는 조건도 달았다.

이 제안을 받아들인 사람은 '인구 폭탄'(Population Bomb)이란 책의 저자로 잘 알려진 폴 엘릭 미 스탠퍼드대 교수였다.

그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어찌 놓칠 수 있겠느냐"며 그 도전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크롬 구리 니켈 주석 텅스텐 등 5가지 자원을 내기 품목으로 선택했다.

기간은 10년으로 정했다.

10년이 지난 1990년 9월 내기에 이긴 쪽은 뜻밖에 엘릭이 아니라 사이먼이었다.

5가지 품목의 가격은 평균 60% 가까이 떨어졌다.

크롬의 가격은 5%,주석의 가격은 74%나 하락했다.

◆환경 운동가의 변심

1997년 2월 내기에서 이긴 사이먼 교수의 인터뷰 기사가 '와이어드'(Wierd)지에 실렸다.

사이먼 교수는 "환경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잘못된 통계 자료와 선입관에 기초하고 있다"며 "환경 파괴 때문에 세상이 멸망할 것이란 식의 주장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누구든 공식적인 통계를 쉽게 구해서 자신의 주장을 확인해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로스앤젤레스의 한 서점에서 이 인터뷰 기사를 보던 34세의 젊은이는 화가 났다.

그가 바로 덴마크 오르후스대학에서 통계학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의 회원으로 활동하던 비외른 롬보르였다.

롬보르는 사이먼의 주장이 개발론자와 우익집단을 대변하는 궤변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이먼 교수의 오류를 낱낱이 가려내 망신을 주겠다고 결심했다.

1997년 가을 롬보르는 그가 가르치던 우수한 학생 10명으로 연구그룹을 만들어 세계적 연구기관으로 부터 통계 자료를 수집해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연구가 계속될수록 기존의 신념과 지식에 배치되는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선진국의 대기오염은 심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선되고 있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굶주리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었다.

에너지 위기가 닥쳐올 가능성도 낮았다.

결국 롬보르의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1998년 롬보르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덴마크 신문에 4차례 기고했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롬보르는 2001년 '회의적 환경주의자'란 제목으로 책을 출간했다.

일부 서구언론들은 이 책이 1962년 레이첼 카슨이 내놓은 '침묵의 봄' 이래 환경분야의 최대 역작이란 극찬을 쏟아냈다.

이 책은 2003년 우리나라에도 번역돼 소개됐다.

조성근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기자 trut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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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보호론자 과장 드러났다" vs "통계 가지고 장난쳤다" 팽팽

◆ 회의적 환경주의자를 둘러싼 논란

'회의적 환경주의자'가 출간된 이후 서구 선진국에선 환경위기가 사실인가 과장인가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국내도 예외는 아니어서 2003년 이 책이 번역·출간된 뒤 학계와 언론이 양편으로 갈려 한바탕 논란을 벌였다.

양측의 논리가 어떤 것들이었는지 알아보자.

◆환경 보호론자들의 과장 드러나

회의적 환경론자들은 좌파 환경 보호론자들이 통계를 과장하거나 왜곡했음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그린피스,월드워치연구소,세계자연보호기금 등 내로라하는 환경단체들은 사실을 왜곡하기 위해 특정지역에서 일어난 일을 마치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인 양,또는 특정 시간대에 일어난 일을 지속적인 일인 것처럼 호도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꼬집었다.

예를 들어 환경전망2000은 "농경지 황폐화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계속된다면 앞으로 40년 안에 곡물 수확량이 절반으로 줄어들 수도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 전망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농경지를 대상으로 하는 단 한 건의 미발표 연구 결과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보호론자들이 이 같은 과장을 서슴지 않은 것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였다고 경제 성장론자들은 비난했다.

환경단체도 결국은 하나의 이익단체일 뿐이다.

이들이 돈을 모으고 발언권을 확대하기 위해 환경의 심각성을 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경제성장론자들도 환경 보호론자들의 활약이 환경을 개선시키는데 기여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비관적 경고 때문에 대체물질을 개발하고 산아제한을 하는 등의 대책이 나오고 그것이 현실을 개선시켰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는다.

◆"통계의 장난에 불과" 반론도

환경 보호론자들은 롬보르가 통계를 이용해 장난을 쳤다고 주장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생물학과 스티븐 슈나이더 교수는 "롬보르가 낙관적 전망을 뒷받침하는 수치만 인용하고 환경과 관련된 전문적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해석상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표본 선정이나 분석 방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불완전한 통계에 의존해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롬보르의 논리는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선 통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왔다.

세계자원기구의 알렌 해몬드 박사는 "롬보르 교수의 낙관적 견해는 옳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선진국에만 해당되는 논리"라고 지적했다.

서구 사회가 누리는 풍족한 생활과 깨끗한 환경은 제3세계의 희생위에 서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 전체의 운명과 관련된 일에선 단 한 번의 실수가 일어나도 파국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이 나왔다.

만약 롬보르의 예측이 틀려 지구온난화가 엄청난 기상이변을 야기한다면 인류는 멸망하게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