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주제 외에 쓰게하는 '사이비 학원' 으론 안돼!!!

이화여자대 2007학년도 수시 1학기 문제는 언어와 수리가 통합된 통합형 논술은 아니었지만 교수님들 나름의 고민이 담긴 문제였어.

짧은 시간에 갑작스럽게 통합형 논술을 대비하기 어려운 수험생들의 현실에 대한 교수님들의 배려와 가급적 교과서 내의 자료를 활용해 정규 교과과정의 연관성을 보여줌으로써 고교 교육 정상화에도 일조하려는 이화여대측의 의도를 느낄 수 있었어.

문제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지만 문항 수가 많아서 힘들었을 거야.인문계열은 수리 문제 2개와 언어영역에 중점을 둔 6개로 총 8문제로 이루어져 있고,자연계열은 수리 영역에서 4개와 언어 영역에서 3개 등 총 7문제로 구성되었어.

이화여대에서 발표한 출제 의도처럼 언어적 사고력을 평가하기 위한 언어 영역의 2개의 문제 세트는 내용의 이해를 직접 묻는 단순한 질문이 아닌,한 지문의 부분 또는 전체와 다른 지문의 내용을 논리적으로 연관시키도록 해서 정확한 이해력과 논리적 구성력을 측정하려고 했어.또 문제 안에 별도의 제시문을 주고 이것을 제시문과 연관시켜서 비판적으로 검토하게 해서 비판적 사고력도 측정하려고 했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제에 특정한 조건을 주고 답안을 작성하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이는 특정 주제에 대해 외워서 쓰는 이른바 '학원 논술'을 걸러내겠다는 의도야.그러니까 주제가 같다는 이유로 어설픈 배경지식이나 어디서 주워들은 내용을 쏟아내는 미련한 짓을 하면 안 되겠지?

◆논제3 해설

3.제시문 (가)와 (나)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문자의 속성은 무엇이며,그것이 각각의 제시문에서 어떻게 다르게 이해되고 있는지 설명하시오.

이런 문제는 어떻게 푸는 것이 효과적일까? 당연히 제시문보다는 문제를 먼저 읽은 다음 '제시문 (가)와 (나)를 읽으면서 문자의 속성 중에 공통적인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다르게 이해되고 있는지를 찾아야겠구나'라는 생각을 정리해 놓고 제시문을 읽어야겠지? 그렇지 않고 제시문을 먼저 읽으면 문제를 읽은 다음 제시문을 또다시 읽어야 돼.그렇게 되면 문항 수가 많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하게 된다고.

제시문(가)와 (나),(다)는 말과 글,구술문화와 문자문화의 장단점을 다른 시각에서 분석한 글들이야.우선 제시문(가)는 플라톤의 '대화편'에 나오는 내용으로,소크라테스가 파이드로스에게 문자의 본질에 대해 얘기하고 있어.소크라테스는 말이 문자화됨으로써 가변성과 융통성을 잃고 획일적인 내용으로 고정될 뿐만 아니라 화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시간,장소,독자의 신분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에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말이라는 것이 문자화되면 그 본질이 훼손되거나 왜곡된다고 보고 있어.제시문(나)에서는 '문자의 독재'라는 말이 나오는데,이것은 문자성이 전반적으로 높아지고 문자 사용의 필요성이 일반화되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거야.그리고 이로 인한 지식의 대중화를 '앎의 민주주의'로 비유해서 문자의 대중적 사용이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보는 거지.3번 문제에서 요구하는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문자의 속성'은 제시문(가)에서는 "장소를 불문하고 그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자에게나,그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에게나 이리저리 마구 돌아다니게 되고"라는 부분과 제시문(나)에서는 "그러다가 급기야 모든 사람들이 책이란 걸 읽고,나아가 글줄까지 긁적거릴 줄 알게 된 일종의 개벽이었다"라는 부분을 통해 알 수 있어.즉 문자의 광범위하고 무차별,무제한적인 유통성이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문자의 속성인 거지.그리고 그것이 제시문(가)에서는 부정적으로 설명되고 어떤 폐해를 생기게 하는가를 서술했고,제시문(나)에서는 그것이 긍정적인 기능을 해서 어떠한 효과를 냈는지 쓰고 있어.

◆논제4 해설

4.조지 랜도우는 '인터넷과 같은 하이퍼미디어는 우리의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능력을 문자적 텍스트에 다시 결합시킴으로써 정보사회에서 구술문화의 장점을 되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토대로 제시문(다)의 논지를 반박하시오.

제시문(다)는 월터 옹(Walter Ong)의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에 나오는 내용이야.옹은 여기에서 인류는 문자가 도입되기 이전인 구술문화에서 더 미적이며 가치있고 생생한 언어생활이 가능했었다고 말하고 있어.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잠재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문자문화의 도입은 불가피한 것이었고,그렇게 됨으로써 구술문화만의 장점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고 보는 거지.구술문화가 문자문화보다 우수하다고 보는 면에서 제시문(가)와 같고,문자문화 보급의 불가피성에 대한 내용은 제시문(다)와 공통돼.

문제를 다시 보자.뭘 물어보고 있지? 제시문(다)의 논지를 반박하라는 거지.근데 그냥 반박하라는 게 아니라 조지 랜도우의 주장을 토대로 반박하라고 조건이 주어졌어.그러니까 논술문에 들어갈 내용은 제시문(다)의 논지와 이를 조지 랜도우의 견해로 반박하는 내용이야.가끔 보면 조지 랜도우의 견해를 가지고 반박만 하고 끝내는 아이들이 있는데 이건 큰 문제야.

왜냐하면 반박하려면 반드시 제시문(다)의 논지를 써줘야 한다구.어떻게 제시문(다)의 논지를 밝히지도 않고 그 논지를 반박할 수 있겠어.그러니까 전자적 통신매체 환경이 문자문화의 장점을 잃지 않으면서도 구술문화의 특성을 되살릴 수 있다는 정보사회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에서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의 공존은 불가능하다는 제시문(다)의 논지를 반박하라는 거야.

논술은 배경지식을 묻는 시험이 아니야.그러니까 내가 아는 내용이나 배운 내용이 나왔다고 좋아하면 안 돼.그럴수록 더 긴장해야 한다고.그렇지 않으면 문제에서 요구하는 내용이 아니라 자신이 아는 내용을 쓰고 나오게 되는데,그게 바로 논점 일탈이야.논술 시험에서는 그렇게 배경지식을 외운 이른바 '학원 논술'을 한 아이들을 걸러내려고 조건을 많이 주는 거야.왜냐하면 조건에 맞지 않으면 그렇게 외운 배경지식은 쓸모없는 것이 되거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특정한 시각이나 조건이 주어졌을 때는 반드시 그 시각이나 조건을 명확히 이해한 다음 논술해야 해.가끔 보면 제시문이나 논제가 애매해서 쟁점이나 시각을 못 찾겠다거나 못 쓰겠다는 아이들이 있는데,오해하지 말라고.애매하니까 애매한 것을 찾아내고,명확하게 해 보라고 문제를 내는 거야.그게 바로 논술 시험인 거라고! 나머지 문제는 다음 주에 살펴보도록 하자.

김경환 Sㆍ논술청담점 원장 pass@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