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경제신문 8월25일자 A2면


청와대 인사 방식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참여정부 초반부터 지적이 나온 '코드 인사'는 차치하고서라도 최근에는 낙선한 특정 정치인에 대한 연이은 보은 인사,청와대 출신 직원들의 무더기 낙하산 인사 등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공석 중인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 이사장에 이재용 전 환경부 장관(52)을 23일 임명했다.

정태호 대변인은 "재정 지출구조 합리화 등 현안이 많은 건보공단에는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고,중앙 행정조직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검증된 사람이 필요하다"며 "이 전 장관은 그런 면에서 적임이고,치과의사 출신으로 보건의료 분야에 대한 전문성도 갖췄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 장관의 건보공단 이사장 임명은 김병준 교육부총리 인사 파동에 이어 참여정부의 또 다른 '오기 인사'로 지적받는다.

이 전 장관 내정설이 돌면서 적지 않은 비판과 반대 여론이 일었지만 결국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이심기 한국경제신문 정치부 기자 sglee@hankyung.com



정부 산하기관관리기본법(정산법)에 따라 이뤄지고 있는 기관장 공모제를 둘러싸고 '낙하산인사'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정부는 이재용 전 환경부 장관을 건강보험관리공단 이사장에 임명한 데 이어 또 다시 김완기 전 대통령 인사 수석비서관을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이사장에 앉혔다.

물론 참여정부 들어 정치권이나 시민단체 출신 등이 기관장으로 임명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부 출범 이후 지난해 말까지 정부 산하기관 등에 낙하산으로 부임한 임원이 282명에 이르고 있을 뿐 아니라 청와대를 퇴직한 4급 이상 196명 가운데 3분의 1가량인 61명이 낙하산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김병준 교육부총리 인사 파동과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 경질 파문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그것도 국민정서와 여론을 무시하는 인사를 밀어붙였다는 점이다.

공모제는 인사의 투명성을 높이고 유능한 인재를 초빙하기 위한 것으로, 참여정부 인사 개혁의 핵심임은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공모를 위한 공고가 나가기도 전부터 내정 소문이 나도는가 하면,유능한 인물이 들러리 서는 것을 우려해 응모를 기피하는 등 문제점을 드러내왔다.

참여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도입한 기관장 공모제가 왜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는가.

대통령과 뜻을 함께하는 인물 임명은 당연

청와대 측은 정부가 국민에게 약속한 정책과제들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선 대통령과 국정운영에 대해 뜻을 같이하며 능력과 인품을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임명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주장한다.

참여정부는 합리적이고 공정·투명한 절차를 거쳐 각 분야에서 성실하게 활동하면서 역량을 다져온 인물을 선발,임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민간인으로 구성된 기관장추천위원회가 심사 등 모든 공모과정을 관장해 공정하게 후보자를 선발 추천하며,청와대 추천 후에도 다시 검증과 평가,심사를 거친다는 것이다.

정치권이나 관료 출신 인사의 경우에도 어떠한 기득권을 인정해주지 않고 공정하게 경쟁토록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낙하산'이란 용어를 거론하며 산하기관 인사를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재공모가 자주 이뤄지고 있는 것은 윗선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기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적격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공모는 낙하산 인사를 포장한 것에 불과

이에 대해 야당과 언론 등에서는 참여정부가 치적처럼 내세워 온 공모제가 실은 '인사 공모(共謀)'에 지나지 않는다며 일축한다.

청와대가 의중에 둔 인물이 사장추천위를 통과하지 못해 다른 사람들이 후보군으로 올라오면 "적임자가 없다"며 비토를 놓고,인사압력 의혹이 불거지면 '정당한 협의'라고 둘러댄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천공항공사 사장의 경우 네 번이나 공모가 반복되면서 최고경영자(CEO) 자리가 5개월이나 공석 사태를 빚는가 하면,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을 뽑을 당시에는 후보추천위원들이 사퇴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사정들로 인해 산하 기관장을 외부 공모로 선출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나긴 했지만 학식과 덕망을 갖춘 진짜 참신한 인물은 응모 자체를 기피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형식적으로는 공모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코드에 맞는 사람을 앉히고 있다는 것이고 보면 낙하산 인사를 공모인 것처럼 포장한 데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정실 인사를 배제하고,공정하고 투명한 인사를 하겠다고 도입한 공모제가 허울만 남았다는 얘기다.

명실상부한 공모제 정착시켜 나가야

정부 산하기관장을 임명제에서 공모제로 바꾼 까닭은 전문성 없는 인사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과거 정부 때 폐단을 시정하기 위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도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도 정부 산하기관과 공기업 경영의 효율화는 시급한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공모제가 낙하산 인사의 눈속임용으로 더 이상 악용돼선 결코 안 될 일이다.

특히 임기 말이 다가오면서 코드 인사가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실정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정부당국은 코드에 맞는 사람을 사전에 내정,낙점하고 다른 후보를 들러리 서게 한다든지,급이 떨어지는 인물을 '추천'과 '협의'로 청탁하다가 잘 안 되면 재공모한다든지,기관장추천위원회를 무력화하는 등 파행을 중단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질과 능력,전문성이 기준이 되는 인사시스템을 확립함으로써 명실상부한 공모제를 정착시켜 나가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hankyung.com


■ 용어풀이

◆정부 산하기관장 공모제=기획예산처가 정부나 청와대에서 일방적으로 낙점하는 임명제의 폐단을 없애고 공기업 경영을 혁신하기 위해 1999년에 처음으로 도입했다.

참여정부 들어 낙하산 인사를 배제하고 외부의 유능한 인재를 영입한다는 취지로 정부 산하기관으로까지 이를 확대 적용했다.

◆낙하산 인사=권력을 가진 사람이 특정한 자리에 특정 인물을 앉히는 것.고위 공직 출신자가 관련 민간기업의 장 등으로 재취업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아마쿠다리(天降り 또는 天下り)=일본에서 '낙하산 인사'를 일컫는 표현으로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의미다.

◆회전문 인사(revolving door)=기업을 대변하는 압력단체가 합법화돼 있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전문용어(jargon). 공직자가 이전에 몸담은 부처와 관련돼 있는 기업이나 업계를 대변하는 이익단체의 로비스트가 돼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엽관제(spoil system)=정당에 대한 공헌도나 인사권자와의 개인적인 관계를 기준으로 공무원을 임용하는 인사행정제도.정치적 신조나 정당관계가 임용의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인사권자와의 개인적 신임이나 친소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정실주의(patronage system)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