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권 뭐길래 시끄러운가] 물건을 미리 판매 … 잘 쓰면 '소비 윤활유'
최근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는 '바다이야기'는 성인용 도박게임장이다.

대박을 터뜨리면 한번에 수백만원을 딸 수 있다는 유혹에 빠져든 사람들이 인생을 역전시키기는커녕 많은 돈을 잃고,심지어는 모든 재산을 탕진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있다.

성인오락실 정도로 운영돼야 했을 게임장들이 도박장으로 변질된 데는 '경품용 상품권'이 큰 몫을 했다.

경품용 상품권 발행업체로 지정되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었고 조직폭력배와 정치권이 개입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경품용 상품권에 어떤 마력이 있길래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 된 것일까.

경제학의 시각으로 이 문제를 풀어보자.

이번에 문제가 된 경품용 상품권을 다루기에 앞서 '정상적인 의미'의 상품권이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본래의 상품권은 '표기된 금액만큼 상품과 교환할 수 있는 무기명 채권'쯤으로 정의할 수 있다.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상품권은 너무 많아서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가장 대표적인 상품권은 백화점 할인점 등 유통업체에서 발행한 것이다.

구두상품권이나 주유상품권,외식상품권,제과상품권 등도 전국적인 체인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꽤 인기가 높다.

이 밖에 성형외과나 미용실 등 개별 점포에서 발행하는 상품권들도 있다.

상품권을 발행한 업체 입장에서 보면 상품권은 '물건을 미리 판매'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상품권을 소지한 사람들은 언젠가 물건으로 바꾸러 오기 때문에 상품권 판매는 일종의 선(先) 판매다.

돈을 미리 받아두면 이자 수입까지 챙길 수 있다.

그러나 상품권 발행에 비용이 들어가는 데다 할인해 발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금 판매보다는 수입액이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체들이 상품권을 많이 유통시키는 이유는 매출을 늘릴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상품권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옷을 선물로 받으면 색상이나 크기가 맞지 않을 수 있지만,상품권으로 받으면 원하는 스타일의 옷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

선택의 폭이 그만큼 넓어진다는 얘기다.

상품권의 가치는 어떻게 정해질까.

교환할 수 있는 물건이 얼마나 많으냐에 달려있다.

할인점이나 백화점 같은 유통업체에서 아무 물건이나 살 수 있는 상품권은 사실상 현금이다.

반면 사용처가 제한된 상품권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

사채시장에서 할인돼 거래되는 금액을 비교해보면 상품권 가치의 차이를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경품용 상품권의 가치는 어떨까.

경품용 상품권으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100곳 이상의 가맹점을 둬야 하는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러나 경품용 상품권 가맹점의 대부분은 소비자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곳들이다.

예컨대 강원도 산골의 꽃집,전라도의 외진 농촌에 있는 미용실,경상도 시골의 음식점,제주도 횟집 등을 가맹점으로 두는 식이다.

이 같은 가맹점 가운데 상당수가 "경품용 상품권을 구경해본 적도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지정 요건을 갖추기 위해 허위로 가맹점을 만들었다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상품 교환이라는 본질적 측면에서 가치가 매우 낮은 경품용 상품권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무려 26조원어치나 발행됐다.

게임장에서 대박을 터뜨려 상품권을 손에 쥐게 된 사람들이 '상품'으로 바꿔 소비하는 게 아니라 도박장 옆 환전소로 곧바로 달려가 돈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무늬만 상품권일 뿐 실제로는 도박용 칩(chip)이었다는 얘기다.

경품용 상품권은 따라서 수익을 얻는 구조도 일반 상품권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일반 상품권은 상품 매출을 통해 수익을 발생시키지만 경품용 상품권은 10~20%의 환전수수료로 막대한 이득을 얻는다.

경품용 상품권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비밀은 바로 '환전하는 과정'에 있다.

게임장 고객이 5000원짜리 상품권을 환전소에 주면 4500원만 내준다.

환전소는 장당 500원(10%)의 수수료를 챙긴다.

회수된 상품권은 게임기에서 한번밖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환전소는 발행업체를 통해 새 상품권으로 교환해야 하는데,교환 비용으로 장당 50~70원의 수수료를 낸다.

이 수수료가 바로 경품용 상품권 발행업체가 이득을 챙기는 원천이다.

상품권 인쇄 비용은 장당 30~40원 정도이기 때문에 발행업체는 장당 20~40원의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19개 발행업체가 지난 11개월 동안 26조원어치의 상품권을 발행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1000억~2000억원 정도 차익을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업체당 50억~100억원의 차익을 남겼다는 얘기다.

경품용 상품권을 발행하는 업체들이 얻는 또다른 이득이 있다.

'화폐 주조 차익'을 뜻하는 세이녀리지(seigniorage),즉 발행차익이다.

원래 세이녀리지는 한국은행과 같은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해서 얻는 이득을 말한다.

예컨대 1만원짜리 돈을 찍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100원이라면 한국은행은 1만원짜리 한장을 찍어내 9900원의 발행차익을 얻게 된다.

실제로 일부 업체들은 경품용 상품권 발행으로 들어온 돈의 일부를 챙겼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상품권을 환전할 수 없기 때문에 상품권 부도가 날 수 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상품권을 지급보증한 서울보증보험은 예치금을 받아두긴 했지만,부도나는 상품권이 예치금보다 많으면 서울보증보험이 떠안아야 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서울보증보험의 부담은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현승윤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