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말은 말의 시장에서 효용가치가 상대적으로 높다. 같은 의미를 담아내는 한 편리성 때문에 짧은 말이 선호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준말이 본딧말을 밀어내고 표준어가 되는 사례도 많다. '무우'와 '무'가 함께 쓰이다가 오늘날 '무'만 표준어가 된 게 그런 경우다. 이 말은 원래 중세 국어에서 '무ㅿㅜ'였던 것이 '△'이 소멸하면서 '무우'로 변한 것인데,나중에 준말 '무'가 더 널리 쓰임에 따라 '무우'는 버리고 '무'가 표준어가 됐다.

준말은 일상에서 매우 흔히 볼 수 있다. "야 임마!" "오랫만에." "이런 쑥맥 같으니라고." "흉칙하게스리" "남사스럽다." "애인에게 채였다." "내꺼야!" "서툴은 방식으로." "이거 얼마에요?" 이런 말들에 모두 준말이 쓰였다. 그런데 여기 쓰인 준말은 모두 바른 표기가 아니다.

준말의 유형에는 고정된 틀은 없지만 크게 보면 '어제그제(본말)→엊그제(준말)''바깥벽→밭벽' '(세금을)거두다→걷다'처럼 본딧말의 잔형이 남아있는 모습을 띠는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임마'가 익숙해 보일지 몰라도 이 말은 '인마'가 바른 말이다.

수많은 표준어를 일일이 외우기는 버겁지만 논리적으로 들여다보면 훨씬 이해하기가 쉽다. 이 말은 '이놈아'가 준말인데 '놈'의 초성과 종성이 남아있는 형태가 '인마'다. '이 녀석아→인석아'의 관계를 떠올리면 기억하기 쉽다. '오래간만'이 줄면 '오랫만'이 아니라 '오랜만'으로 된다는 것도 같은 이치다. 흔히 쓰는 말 '남사스럽다'도 근거가 없기 때문에 표준어가 되지 못했다. 이 말의 본딧말은 '남우세스럽다'이다. '남우세'란 '남에게 비웃음과 조롱을 받는 것. 또는 그 비웃음이나 조롱'을 뜻한다. '남우세'는 '남+우세'로 분석되는데 여기서 '우세'는 어원이 확실히 규명된 것은 아니지만 그 형태와 의미상 '웃다'와 관련된 말로 풀이된다. 이 '남우세스럽다'가 줄어든 말이 '남세스럽다'이다.

비록 '남사스럽다'가 입말에서 많이 쓰이곤 있지만 '남우세'가 '남사'로 형태를 바꿔가며 줄어드는 근거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이를 표준으로 인정치 않는 것이다.

'사이→새''마음→맘''싸움→쌈''선보이다→선뵈다''도리어→되레' 따위가 모두 둘 이상의 음절로 된 말이 줄어 만들어진 말들이다.

준말의 사례는 워낙 다양해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기는 불가능하다. 가령 '올해'가 줄어 '올'이 되는 것처럼 아예 일부 음절이 탈락하는 경우도 있다. 사리 분별을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 '숙맥'은 '숙맥불변(菽麥不辨:콩인지 보리인지 모른다는 뜻)'이 준말이다. 이 말은 '쑥맥'으로 잘못 알고 쓰기 쉬우므로 주의해야 한다. '흉칙하다'라고 쓰는 사람이 있다면 본딧말 '흉악망측(凶惡罔測)'을 기억해 두면 된다. 준말은 당연히 '흉측'이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