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시계'로 촉발된 가짜 명품의 세계가 드러나면서 한국 사회에 퍼진 '명품 신드롬'이 주목받고 있다.
검찰은 과소비를 조장하는 허위 광고에 대해 전면전을 선언하고 나섰고 학계에서는 엇나간 소비 지상주의의 산물이라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 사회의 '명품병'은 과연 어느 정도나 곪아 있을까.
'A급 짝퉁'을 사기 위해 여고생들이 계를 만들고 홍콩의 짝퉁 시장에서는 한국 고객이 '큰손'으로 평가받는다고 하니 우려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을 만하다.
실제 올 상반기 백화점 부문별 매출 증가율 순위를 보면 루이 비통 등 수입 명품이 21.1%로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판 '피프스 애비뉴(뉴욕 명품 거리)'의 세계
나이 33세.직업 국내 유통업체 MD(merchandiser).표준적인 한국 직장 여성이라 할 만한 한희은씨(가명)의 사례를 보면 한국인의 명품 선호 현상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우선 그녀가 한 달에 명품 브랜드에 지출하는 금액은 월급의 60%가량이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덕분이죠. 월급은 사실 용돈처럼 쓰고 있어요." 그녀는 "직업상 해외 여행이 잦기 때문에 프랑스 이탈리아 홍콩 미국 등에 가면 명품 한두 개씩은 꼭 사는 편"이라고 말했다.
1년 이상 팔리지 않아 '악성 재고'로 분류되는 명품 브랜드도 세일 때면 아침부터 구매하려는 이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유행이 지난 명품들은 수입사들이 '패밀리 세일(직원 세일)' 형태로 시중 판매가(더 이상 시중에서는 팔 수 없으므로 사실 의미는 없다)보다 80∼90% 할인한 행사로 처분하고 있는데 명품 마니아들 사이에선 꼭 챙겨봐야 할 행사로 통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고국 프랑스에서 고전하는 루이 비통 등 명품 브랜드들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에서 톡톡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한국판 '피프스 애비뉴'를 꿈꾸는 청담동 명품 거리.명품족들의 동향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해외 희귀 브랜드들은 대부분 이곳을 통해 들어온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곳에 연예인을 초청해 매장을 열고 30만원짜리 중국산 시계를 1억여원 남짓한 가격에 판 '빈센트 시계' 사건이 발생할 수 있었던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 담당은 "최근 강남 고객들이 주로 구매하는 명품을 보면 로고가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그 브랜드의 이미지를 가장 확실히 보여주는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수 십년 동안 신분 상징물 노릇을 해왔던 C자를 맞대어 놓은 샤넬의 도안,랄프 로렌의 폴로 선수 도안,루이 비통의 머리글자 등은 이제 접힌 옷깃 속이나 작은 단추,꿰맨 자리 등으로 자취를 숨기고 있다.
◆'허영 마케팅'의 역사
이 같은 현상은 비단 우리만의 일은 아니다.
수제 셔츠가 남성 호사품의 최고로 여겨졌던 1950년대 미국 사회로 돌아가 보자.기계화로 대량 생산이 시작되기 전인 데다 하얀 셔츠를 입을 만한 직업도 드물어 셔츠는 모든 남성들의 선망 대상이었다.
당시 데이비드 오길비가 제작한 해더웨이 셔츠 광고는 '빈센트 시계' 사건을 떠올릴 만한 과장성으로 가득차 있다.
"해더웨이 셔츠는 120년 장인 정신을 계승한 기능공들에 의해 생산됩니다.
단추는 자개 단추를 사용하며 재봉은 남북전쟁 이전 시대의 우아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 셔츠가 1837년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지만 1950년에 나온 제품은 장인(匠人)이 아닌 여성 기능공들이 만들었다는 사실은 화려함 앞에 사라지고 말았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베블렌을 비롯해 명품 소비에 비판적인 학자들이 지적해온 명품의 허구성은 이처럼 지역과 시대를 막론하고 '홍역'처럼 자본주의 사회를 괴롭혀 왔다.
명품이란 그 물건 자체가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셔츠의 가슴에,혹은 핸드백의 겉면에 랄프 로렌,토미 힐피거,샤넬,구치 등의 로고를 새겨 넣을 때 비로소 명품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꿈을 판다.
전 세계 어디서나 텔레비전을 통해 패션쇼를 보면서 사람들은 꿈을 산다.
크리스티안 디올 상점에 들어가서 립스틱을 살 때 돈 주고 살 수 있는 물건을 산 것에 불과한 것 같지만 거기에는 꿈이 함께 실려 간다." 세계 최대의 명품 그룹인 LVMH(루이 비통 모엣 헤네시)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처럼 우리는 꿈을 좇는 데 수조원의 돈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박동휘 기자 한국경제신문 생활경제부 donghuip@hankyung.com
검찰은 과소비를 조장하는 허위 광고에 대해 전면전을 선언하고 나섰고 학계에서는 엇나간 소비 지상주의의 산물이라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 사회의 '명품병'은 과연 어느 정도나 곪아 있을까.
'A급 짝퉁'을 사기 위해 여고생들이 계를 만들고 홍콩의 짝퉁 시장에서는 한국 고객이 '큰손'으로 평가받는다고 하니 우려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을 만하다.
실제 올 상반기 백화점 부문별 매출 증가율 순위를 보면 루이 비통 등 수입 명품이 21.1%로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판 '피프스 애비뉴(뉴욕 명품 거리)'의 세계
나이 33세.직업 국내 유통업체 MD(merchandiser).표준적인 한국 직장 여성이라 할 만한 한희은씨(가명)의 사례를 보면 한국인의 명품 선호 현상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우선 그녀가 한 달에 명품 브랜드에 지출하는 금액은 월급의 60%가량이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덕분이죠. 월급은 사실 용돈처럼 쓰고 있어요." 그녀는 "직업상 해외 여행이 잦기 때문에 프랑스 이탈리아 홍콩 미국 등에 가면 명품 한두 개씩은 꼭 사는 편"이라고 말했다.
1년 이상 팔리지 않아 '악성 재고'로 분류되는 명품 브랜드도 세일 때면 아침부터 구매하려는 이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유행이 지난 명품들은 수입사들이 '패밀리 세일(직원 세일)' 형태로 시중 판매가(더 이상 시중에서는 팔 수 없으므로 사실 의미는 없다)보다 80∼90% 할인한 행사로 처분하고 있는데 명품 마니아들 사이에선 꼭 챙겨봐야 할 행사로 통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고국 프랑스에서 고전하는 루이 비통 등 명품 브랜드들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에서 톡톡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한국판 '피프스 애비뉴'를 꿈꾸는 청담동 명품 거리.명품족들의 동향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해외 희귀 브랜드들은 대부분 이곳을 통해 들어온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곳에 연예인을 초청해 매장을 열고 30만원짜리 중국산 시계를 1억여원 남짓한 가격에 판 '빈센트 시계' 사건이 발생할 수 있었던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 담당은 "최근 강남 고객들이 주로 구매하는 명품을 보면 로고가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그 브랜드의 이미지를 가장 확실히 보여주는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수 십년 동안 신분 상징물 노릇을 해왔던 C자를 맞대어 놓은 샤넬의 도안,랄프 로렌의 폴로 선수 도안,루이 비통의 머리글자 등은 이제 접힌 옷깃 속이나 작은 단추,꿰맨 자리 등으로 자취를 숨기고 있다.
◆'허영 마케팅'의 역사
이 같은 현상은 비단 우리만의 일은 아니다.
수제 셔츠가 남성 호사품의 최고로 여겨졌던 1950년대 미국 사회로 돌아가 보자.기계화로 대량 생산이 시작되기 전인 데다 하얀 셔츠를 입을 만한 직업도 드물어 셔츠는 모든 남성들의 선망 대상이었다.
당시 데이비드 오길비가 제작한 해더웨이 셔츠 광고는 '빈센트 시계' 사건을 떠올릴 만한 과장성으로 가득차 있다.
"해더웨이 셔츠는 120년 장인 정신을 계승한 기능공들에 의해 생산됩니다.
단추는 자개 단추를 사용하며 재봉은 남북전쟁 이전 시대의 우아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 셔츠가 1837년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지만 1950년에 나온 제품은 장인(匠人)이 아닌 여성 기능공들이 만들었다는 사실은 화려함 앞에 사라지고 말았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베블렌을 비롯해 명품 소비에 비판적인 학자들이 지적해온 명품의 허구성은 이처럼 지역과 시대를 막론하고 '홍역'처럼 자본주의 사회를 괴롭혀 왔다.
명품이란 그 물건 자체가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셔츠의 가슴에,혹은 핸드백의 겉면에 랄프 로렌,토미 힐피거,샤넬,구치 등의 로고를 새겨 넣을 때 비로소 명품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꿈을 판다.
전 세계 어디서나 텔레비전을 통해 패션쇼를 보면서 사람들은 꿈을 산다.
크리스티안 디올 상점에 들어가서 립스틱을 살 때 돈 주고 살 수 있는 물건을 산 것에 불과한 것 같지만 거기에는 꿈이 함께 실려 간다." 세계 최대의 명품 그룹인 LVMH(루이 비통 모엣 헤네시)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처럼 우리는 꿈을 좇는 데 수조원의 돈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박동휘 기자 한국경제신문 생활경제부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