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 같은 물줄기들이 흐르며 또 물을 불러 모아 작은 도랑물을 만든다. …이렇게 키운 섬진강 물줄기는…수마이산 봉우리에서 생긴 또 한 가닥의 도랑을 만나 비로소 시내를 이루며…."

섬진강 시인으로 유명한 김용택씨의 산문집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의 한 대목이다.

우리말 운동가인 남영신 국어문화운동본부 회장은 이 대목을 가리켜 우리말에 대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도랑물이 몸을 불려 개울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시내를 이룬다고 한 것은 아쉽다는 것이다.('안 써서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우리말')

문학적 표현과 언어의 과학적 사용에는 간극이 있게 마련이지만,사실을 묘사하는 데 적확한 말의 사용을 굳이 외면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도랑'이란 '폭이 좁은 작은 개울'을 말한다.

가령 논밭에 물을 대는,건너뛸 수 있을 정도의 폭을 가진 물길을 도랑이라 한다.

또 시골에서 수챗물 흐르는 길도 도랑이다.

지저분하고 더러운 이런 도랑을 특히 '도랑창'이라 부른다.

'도랑 치고 가재 잡다'라고 하면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우선 '한 가지 일로 두 가지 이득을 보다'란 뜻으로 많이 쓰인다.

우리말에는 이 표현과 비슷한 뜻을 담은 여러 관용구가 있어 다양하게 바꿔 쓸 수 있다.

'꿩 먹고 알 먹고''누이 좋고 매부 좋고''임도 보고 뽕도 따고''굿 보고 떡 먹고' 모두 사전에 오른 말이므로 얼마든지 쓸 수 있다.

하지만 '마당 쓸고 돈 줍고'나 '피박에 싹쓸이' 같은 말은 우스갯소리로나 통하지 아직 글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표현이다.

이 밖에 한자어로 '일거양득''일석이조'도 같은 의미다.

또 다른 쓰임새는 일의 순서가 잘못돼 애쓴 보람이 나타나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가리킨다.

이는 본래 도랑을 치고 나면 돌 틈이나 밑에 숨어 살던 가재를 잡을 수 없으므로 일의 우선순위가 잘못됐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이 도랑이 좀더 커져 멱을 감을 정도가 되면 '개울'이다.

개울은 골짜기나 들에 흐르는 작은 물줄기다.

개울 중 좀 작다 싶은 게 '실개울'이다.

실개천이나 소류(小流)는 같은 말이다.

개울이 커지거나 평지로 나오면 '시내'가 된다.

어원적으로 '시'는 '가느다란,썩 작은,엷은'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실'에서 온 말로서 시내는 아직 배를 띄우기에는 작은 물길이다.

시내가 넓어져 비로소 나룻배 정도가 다닐 수 있을 폭이 되면 '내'이다.

'개천' 또는 '하천'이라고도 한다.

'내'가 더욱 커져 넓고 길게 흐르면 '강'이다.

내 중에 가장 아름다운 내는 미리내가 아닐까.

미리내는 '은하수'를 가리키는 우리말 이름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직 방언으로 처리돼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말 자체는 표준어 못지않은 언어세력을 갖고 있다.

'미리'는 용의 경상·제주 방언이다.

그러니 '용이 사는 내'가 미리내이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