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과 아랍인들은 언제부터 대립했을까.
이에 관한 흥미 있는 기록이 구약성경에 있다.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 이삭이라는 두 아들을 두었다.
이스마엘이 장자였는데 그는 이집트 출신의 몸종이 낳은 서자(庶子)였다.
족장 계승 과정에서 적자(嫡子)인 이삭이 왕이 되고 이스마엘은 이집트인 어머니와 함께 쫓겨나게 된다.
바로 이 사람,이스마엘이 아랍민족의 조상이라고 여겨지는 인물이다.
현재 원수처럼 지내고 있는 유대인과 아랍인이 사실은 같은 아버지를 둔 형제였다는 것이다.
오랜 역사 동안 아랍과 유대인 간의 관계가 지금처럼 폭력으로 점철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유대인은 아랍 문명이 아닌 기독교 문명으로부터 가장 큰 핍박을 받았다.
기독교가 한창 번성했던 중세 시대에 이탈리아 등 유럽 곳곳엔 '게토'라는 유대인 격리 시설이 생겼고 전체 인구의 3분의 2가 인멸되는 20세기 최악의 '홀로코스트'도 독일 게르만족의 소행이었다.
◆유대,이슬람은 원래부터 대립?
유대인들이 아랍 세력으로부터 핍박을 받은 시기는 모세의 지도 아래 홍해를 건너기 이전인 기원전 12세기 무렵 400여년 동안 이집트의 노예로 생활했을 때와 기원전 5세기께 바빌론으로 끌려가 유폐생활을 했던 때를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이슬람교가 기원후 6세기 후반에 탄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초에는 유대교와 이슬람의 대립,즉 종교의 대립이라기보다는 지역의 정치지형에 따라 물고 물리는 갈등관계였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오히려 유대인들은 이슬람 문명의 보호 속에서 황금기를 누렸다.
이슬람 세력이 기독교에 대립하면서 아라비아 반도와 북아프리카 지역을 휩쓸기 시작한 8세기께 당시 스페인을 지배했던 이슬람 무어 제국은 기독교인보다 유대인들을 우대했다.
타종교의 지배 아래 생활하는 오랜 습관이 몸에 밴 유대인들이 아랍의 비위에 덜 거슬렸을 것이고 이슬람 사람들 역시 유대인의 경제 관리능력을 높게 평가한 덕분이었다.
무어 제국 시대에는 제국 내 여러 지역에 유대인 민족학교격인 '예시바'가 설립됐을 정도로 정당한 대우를 받았다.
수학 천문학 철학 의학 문학 등 이슬람 문화의 꽃이 활짝 피어오른 시절 이슬람 역사 속엔 유다 할라비,모세스 마이모니데스 등 유능한 유대인들의 이름도 더불어 빛났다.
1096년에 시작된 기독교 문명의 십자군 전쟁은 유대인의 적은 아랍이 아니라 기독교인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슬람 세력이 장악한 예루살렘 고토를 회복한다는 명분 아래 시작된 전쟁에서 유대인들은 십자군 원정대의 첫 번째 약탈 대상이었다.
세련된 금융 지식을 바탕으로 부를 거머쥔 유대인들이 눈엣가시였던 것.예루살렘이 고드푸르아 드 부용이란 기사에 의해 점령당했을 당시,4만여명에 이르는 이슬람교도와 유대인은 모두 똑같이 기독교도들의 서슬퍼런 창날에 희생당했다.
◆역사 속 팔레스타인의 주인들
팔레스타인은 2000여 년의 역사를 거치면서 여러 민족이 거쳐간 지역이다.
동·서양을 잇는 지리적인 매력으로 인해 지역 강자들은 언제나 팔레스타인을 손 안의 계란처럼 쥐락펴락했다.
예루살렘의 운명은 특히나 비극적이다.
예루살렘엔 바위의 돔(Dome of the Rock)이라는 오래된 유적이 있는데 이곳은 유대교와 이슬람교 양 종단에서 신성시하는 성지다.
이슬람 전설에 따르면 이슬람교 창시자인 예언자 무함마드(마호메트)가 이곳에서 하늘로 올라갔고 유대교의 전통에서 보면 히브리 민족의 시조이자 초대 족장이었던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쳤던 장소이기도 했다.
역사 속 기록을 보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팔레스타인에 먼저 정착한 쪽은 유대인이었다.
기원전 약 1000년 께로 아랍인들은 이보다 1600여년이나 뒤인 AD 648년 이 지역에 처음 진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대인들은 이 시기에 이스라엘(기원전 931∼722년),유다왕국(기원전 931∼586년),유데아(기원전 10∼기원후 70년) 등의 왕국을 건설했다.
사울,다윗,솔로몬 등 익히 들어온 유대인 왕들이 이때 배출됐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AD 70년 로마제국에 의해 완전히 짓밟힌 이래 '디아스포라'로 일컬어지는 집단 유랑 세월을 근 2000여년간 했으므로 팔레스타인은 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영국령이 되기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아랍 민족의 주도권 아래 있었다.
이 기간에 팔레스타인은 유대인과 아랍인들이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나름대로 평화가 유지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건국 이후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박동휘 한국경제신문 생활경제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
이에 관한 흥미 있는 기록이 구약성경에 있다.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 이삭이라는 두 아들을 두었다.
이스마엘이 장자였는데 그는 이집트 출신의 몸종이 낳은 서자(庶子)였다.
족장 계승 과정에서 적자(嫡子)인 이삭이 왕이 되고 이스마엘은 이집트인 어머니와 함께 쫓겨나게 된다.
바로 이 사람,이스마엘이 아랍민족의 조상이라고 여겨지는 인물이다.
현재 원수처럼 지내고 있는 유대인과 아랍인이 사실은 같은 아버지를 둔 형제였다는 것이다.
오랜 역사 동안 아랍과 유대인 간의 관계가 지금처럼 폭력으로 점철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유대인은 아랍 문명이 아닌 기독교 문명으로부터 가장 큰 핍박을 받았다.
기독교가 한창 번성했던 중세 시대에 이탈리아 등 유럽 곳곳엔 '게토'라는 유대인 격리 시설이 생겼고 전체 인구의 3분의 2가 인멸되는 20세기 최악의 '홀로코스트'도 독일 게르만족의 소행이었다.
◆유대,이슬람은 원래부터 대립?
유대인들이 아랍 세력으로부터 핍박을 받은 시기는 모세의 지도 아래 홍해를 건너기 이전인 기원전 12세기 무렵 400여년 동안 이집트의 노예로 생활했을 때와 기원전 5세기께 바빌론으로 끌려가 유폐생활을 했던 때를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이슬람교가 기원후 6세기 후반에 탄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초에는 유대교와 이슬람의 대립,즉 종교의 대립이라기보다는 지역의 정치지형에 따라 물고 물리는 갈등관계였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오히려 유대인들은 이슬람 문명의 보호 속에서 황금기를 누렸다.
이슬람 세력이 기독교에 대립하면서 아라비아 반도와 북아프리카 지역을 휩쓸기 시작한 8세기께 당시 스페인을 지배했던 이슬람 무어 제국은 기독교인보다 유대인들을 우대했다.
타종교의 지배 아래 생활하는 오랜 습관이 몸에 밴 유대인들이 아랍의 비위에 덜 거슬렸을 것이고 이슬람 사람들 역시 유대인의 경제 관리능력을 높게 평가한 덕분이었다.
무어 제국 시대에는 제국 내 여러 지역에 유대인 민족학교격인 '예시바'가 설립됐을 정도로 정당한 대우를 받았다.
수학 천문학 철학 의학 문학 등 이슬람 문화의 꽃이 활짝 피어오른 시절 이슬람 역사 속엔 유다 할라비,모세스 마이모니데스 등 유능한 유대인들의 이름도 더불어 빛났다.
1096년에 시작된 기독교 문명의 십자군 전쟁은 유대인의 적은 아랍이 아니라 기독교인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슬람 세력이 장악한 예루살렘 고토를 회복한다는 명분 아래 시작된 전쟁에서 유대인들은 십자군 원정대의 첫 번째 약탈 대상이었다.
세련된 금융 지식을 바탕으로 부를 거머쥔 유대인들이 눈엣가시였던 것.예루살렘이 고드푸르아 드 부용이란 기사에 의해 점령당했을 당시,4만여명에 이르는 이슬람교도와 유대인은 모두 똑같이 기독교도들의 서슬퍼런 창날에 희생당했다.
◆역사 속 팔레스타인의 주인들
팔레스타인은 2000여 년의 역사를 거치면서 여러 민족이 거쳐간 지역이다.
동·서양을 잇는 지리적인 매력으로 인해 지역 강자들은 언제나 팔레스타인을 손 안의 계란처럼 쥐락펴락했다.
예루살렘의 운명은 특히나 비극적이다.
예루살렘엔 바위의 돔(Dome of the Rock)이라는 오래된 유적이 있는데 이곳은 유대교와 이슬람교 양 종단에서 신성시하는 성지다.
이슬람 전설에 따르면 이슬람교 창시자인 예언자 무함마드(마호메트)가 이곳에서 하늘로 올라갔고 유대교의 전통에서 보면 히브리 민족의 시조이자 초대 족장이었던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쳤던 장소이기도 했다.
역사 속 기록을 보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팔레스타인에 먼저 정착한 쪽은 유대인이었다.
기원전 약 1000년 께로 아랍인들은 이보다 1600여년이나 뒤인 AD 648년 이 지역에 처음 진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대인들은 이 시기에 이스라엘(기원전 931∼722년),유다왕국(기원전 931∼586년),유데아(기원전 10∼기원후 70년) 등의 왕국을 건설했다.
사울,다윗,솔로몬 등 익히 들어온 유대인 왕들이 이때 배출됐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AD 70년 로마제국에 의해 완전히 짓밟힌 이래 '디아스포라'로 일컬어지는 집단 유랑 세월을 근 2000여년간 했으므로 팔레스타인은 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영국령이 되기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아랍 민족의 주도권 아래 있었다.
이 기간에 팔레스타인은 유대인과 아랍인들이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나름대로 평화가 유지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건국 이후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박동휘 한국경제신문 생활경제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