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전역이 지정학적 혹은 정치적 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란 핵문제와 북한 미사일 발사 문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중동지역에서는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공격하면서 전쟁 발발의 위기감마저 떠오르고 있다.

인도에선 무장 반군의 소행으로 보이는 열차 폭탄 테러가 발생했고,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에선 송유관 파괴 행위가 빈발하는 등 종족·종교 간 갈등도 끊이지 않고 있다.

브라질과 멕시코 등 남미지역에서도 대형 조직폭력 및 선거 후유증으로 나라 전체가 시끄러운 상황이다.

이러한 지정학적 불안이 겹쳐 일어나면서 국제 유가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고 세계 증시는 동반 하락하는 등 국제 금융 시장도 매우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지구촌의 분쟁들이 우리나라 경제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전운이 느껴지는 중동

이스라엘과 레바논 내 헤즈볼라(시아파 민병 조직) 간의 전투가 심상치 않다.

이스라엘은 최근 레바논 수도인 베이루트 중심가를 폭격하는 등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헤즈볼라 역시 이스라엘과의 전면전을 선언하고 나섰다.

이번 분쟁은 지난 12일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병사 두 명을 납치한 데서 비롯됐다.

이스라엘은 즉각 헤즈볼라의 본거지인 레바논을 공습하면서 보복에 나섰고 양측의 치고받는 싸움으로 수백명의 사망자가 나오는 등 피해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국제사회의 중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의 입장이 상반된 데다 프랑스는 이란이 핵 문제를 둘러싼 관심을 분산시키기 위해 이번 사태를 조장했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등 각국이 제각기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바논 사태 해결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이집트 카이로에서 긴급 소집된 아랍권 외무장관 회의에서도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에 우호적인 국가들(사우디아라비아 등)과 헤즈볼라를 편드는 국가(시리아 등) 간의 의견 대립으로 파행적 양상을 보였다.

중동 불안이 고조되자 각국 정부는 레바논 거주 자국민과 관광객을 인근 시리아와 키프로스로 대피시키고 있다.

영국은 자국민 대피를 위해 군 선박을 중동 지역으로 급파했고,스페인은 자국민을 군 수송기로 공수하는 등 발빠른 모습을 보였다.

일부에선 헤즈볼라를 지지하고 있는 시리아 이란 등이 이번 사건에 개입할 경우 전면적인 중동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그럴 경우 국제 유가 상승과 함께 국제 금융 시장의 혼란은 명백한 상황이다.

◆만만치 않은 이란과 북한 문제

잠시 잠잠하던 이란 문제도 다시 불안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핵 협상단이 이란의 핵 프로그램 포기를 대가로 제시한 '포괄적 인센티브안'을 이란이 사실상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독일로 구성된 핵 협상단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결의안을 채택,이란에 대한 국제적 제재에 들어가기 위한 방안을 논의 중이다.

협상단은 그러나 이란으로 하여금 인센티브안을 수용하도록 하기 위한 마지막 설득 작업도 병행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북한 미사일 문제는 유엔 안보리가 대북 결의안까지 채택하고 나섰지만 아직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북한이 유엔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고 향후 미사일 추가 발사 의도까지 내보이고 있어 시장의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북한 문제는 특히 우리나라 금융시장에 중요 변수가 되고 있다.

◆남미지역도 분쟁 중

불안하기는 남미도 마찬가지다.

브라질은 범죄조직의 초대형 테러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2개월 전 상파울루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범죄 조직인 '제1수도군 사령부(PCC)'는 지난 12일 자신들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 다시 대(對) 정부 테러를 시작했다.

PCC는 버스 은행 상가를 목표로 삼아 하루 만에 19개 도시에서 75회의 테러를 일으키며 브라질 전체를 공포에 빠뜨렸다.

더구나 테러 목표가 경찰이 아닌 일반 시민이어서 불안감은 더욱 큰 상황이다.

대선 후유증을 앓고 있는 멕시코도 혼란의 소용돌이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좌파인 민주혁명당(PRD)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후보가 '대선 결과 불복'을 선언하면서 그의 지지자들이 전국적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12일부터는 지지자들이 300개 선거구 본부에서 각각 집회를 열고 수도 멕시코시티를 향해 행진하는 가두 시위를 시작했다.

이 밖에 '자원 무기화'를 선언한 베네수엘라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석유회사 시트고는 최근 1800여개 미국 내 주유소에 대한 휘발유 판매를 중단키로 결정하는 등 자원 전쟁도 계속되고 있다.

◆안전자산 선호 경향

이렇게 지역 분쟁이 심화하면서 국제 금융 시장에서는 불안감과 함께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경향'(flight to quality)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일단 위험을 피하고 보자는 심리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우선 주식시장에서 달러화 표시 채권이나 현금성 자산으로 자금이 이동하고 있는 데서도 확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면서 글로벌 증시는 일제히 급락했고,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의 통화를 팔고 달러화를 매입하는 추세도 확산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 이후 이스라엘 쉐켈화는 가치가 급락했다.

주변국인 터키 리라화도 떨어졌다.

이 때문에 달러화 가치는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는 무역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 달러화 약세를 유도하는 미국의 정책과는 반대 방향의 흐름이다.

따라서 시간이 흐르면서 국가 간 통화 분쟁이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

또 국제 투기자금도 원유와 금 등으로 급속히 흘러가고 있다.

국제 금융 전문가들은 "최근 중동과 극동지역의 취약성이 한꺼번에 드러나 금융시장이 위험 회피 심리에 사로잡혀 있다"며 "안전자산 선호 경향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정락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