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제>
제시문 [가], [나]와 [다], [라]는 서로 다른 삶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두 가지 중 하나의 입장을 선택하고 그 논지를 바탕으로 현대인의 바람직한 삶의 방식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 가 ]
양주(楊朱)의 중심 사상은 위아(爲我)이다. 이에 대해 맹자(孟子)는 "양주는 자기만을 위하는 입장을 취해서 털 한 올이라도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한다 하더라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였다. 반면 한비자(韓非子)는 "지금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다. 그는 위험한 성(城)에 들어가지 않으며, 군대가 있는 곳에 머물지 않으며, 세상의 큰 이익을 위해 자기의 정강이의 털 한 올도 바꾸지 않는다. 세상의 군주가 그를 따르고 예로 대하며 그의 지혜를 귀하게 여기고 그의 행동을 고상하게 여겨 사물(事物)을 가볍게 보고 생명을 중시하는 선비라고 생각한다"며 양주의 입장을 옹호하였다.
[ 나 ]
사랑의 개념을 여러 가지 대상에 적용하는 데는 아무런 반대도 나타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덕이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죄라는 신념이 널리 퍼져 있다. 이는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며, 자기애(自己愛)는 이기심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에서이다. 사랑과 자기애는 한 쪽이 커지면 커질수록 다른 쪽은 작아진다는 의미로 볼 때 상호 배타적이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사랑과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서로 배타적이라는 표현 속에 담긴 논리적 오류를 강조해 두어야 한다. 만일 내 이웃을 인간 존재로서 사랑하는 것이 덕이라면 나를 사랑하는 것도 악이 아니라 덕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도 역시 인간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인간 개념은 있을 수 없다. 나 자신을 배제하는 원리는 그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성서의 사상은 자기 자신의 통합성과 특이성에 대한 존경과,이해가 다른 개인에 대한 존경과 사랑,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사랑과 분리될 수 없는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대상'과 우리 자신 사이의 관계가 문제시되는 한 사랑은 원칙적으로 분할할 수 없는 것이다. 진실한 사랑은 생산성의 표현이며 보호,존경,책임,지식을 포함한다. 그것은 타인에 의해 생겨나는 '감정'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 근거하여 사랑받는 사람의 성장과 행복을 능동적으로 갈망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나 자신의 자아는 다른 사람처럼 내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자신의 생명과 행복, 성장과 자유에 대한 긍정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즉 보호와 존경과 책임,그리고 지식에 근거하고 있다. 만일 개인이 생산적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는 자기 자신도 사랑할 수 있다. 또 그가 다른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는 전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다.
[ 다 ]
혼란이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하면 서로 사랑하지 않는 데서 일어나는 것이다. 신하와 자식이 그의 임금이나 아버지에게 불효하는 것을 혼란이라 한다. 자식은 자신을 사랑하고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아버지를 해치고 자신만을 이롭게 한다. 아우는 자신을 사랑하고 형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형을 해치고 자신만을 이롭게 한다. 신하는 자신을 사랑하고 임금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임금을 해치고 자신만을 이롭게 한다. 이것을 일러 혼란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애롭지 않고 형이 아우에게 자애롭지 않고 임금이 신하에게 자애롭지 않은 것, 이것 역시 천하의 혼란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자신만 사랑하고 아들은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자식을 해치면서 자신을 이롭게 하고 형은 자신만 사랑하고 아우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아우를 해치면서 자신만 이롭게 한다. 임금은 자신을 사랑하고 신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신하를 해치면서 자신만 이롭게 한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모두 서로 사랑하지 않는 데서 일어나는 것이다.
부형과 임금 보기를 자기 몸과 같이 한다면 어찌 불효를 할 것이며, 또 자애롭지 않음이 있겠는가? 아우와 신하를 자기 몸과 같이 한다면 어찌 자애롭지 않으며, 불효와 자애롭지 않음이 있겠는가?
만약 온 천하로 하여금 모두 어울려 서로 사랑하게 한다면, 나라와 나라는 서로 공격하지 않고 집안과 집안은 서로 어지럽히지 않고 도적들마저 없어지고 임금과 신하와 아버지, 그리고 자식들은 모두 효도하고 자애로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온 천하가 모두 아울러 서로 사랑한다면 곧 질서가 잡히고 모두가 서로 미워하면 어지러워진다.
[ 라 ]
현대 철학에서 가장 첨예하게 쟁점이 된 주체의 해체와 탈중심화는 서양문화 전반에 깔려 있는 자아중심적 사고를 반성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문제는 해체 이후, 인간이 어떤 모습을 할 것인가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레비나스의 철학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철학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다.
레비나스는 서양 철학은 체질적으로 '다른 이'와 '다른 것'을 지배하려는 전체성의 철학, 또는 전쟁의 철학이라고 비판하면서 이에 대항하여 어떤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개인의 인격적 가치와 타자(他者)에 대한 책임을 보여주는 '타자성의 철학' 또는 '평화의 철학'을 구축하고자 한다.
그는 인간의 고통과 구체적인 삶에 관심을 기울여 이웃과 타인에 대한 연대를 강조하며 타자와의 윤리적 관계를 통해 얻어지는 주체성에 대해 말한다. 여기서 타자는 나와 똑같은 위치에 있지 않은 자로, 거주하며 노동하는 나에게 윤리적 요구로서 임하는 무한자로, 내가 어떠한 수단을 통해서도 지배할 수 없는 절대적 외재성으로 묘사된다. 타자의 출현과 더불어 내가 타자를 영입하고 대접할 때 진정한 의미의 주체성, 즉 '환대(歡待)로서의 주체성'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레비나스는 타자의 출현으로 인해서 첫 번째 의미의 주체성, 즉 '자기성' 혹은 '내재성'이 상실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하고 있다. 타자를 받아들이는 나는 다른 주체가 아니라 세계를 즐기고 거주하며 노동하는 주체이다. 그러나 바로 이 주체가 타자의 출현을 통해서 이기적인 욕망을 포기하고 타자에 대한 책임적인 주체로 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이 어떻게 자기의 이기적인 욕구를 제한하고 타자의 욕구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타행(利他行)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만일 나 자신 속에 있지 않다면, 어떻게 나는 나의 삶의 태도를 바꾸어 타자를 나의 존재의 무게 중심으로 삼을 수 있는가? 레비나스의 답은 타자의 얼굴의 현현(顯現)으로 나에게 '형이상학적인 욕망'이 창조되고 이 욕망으로 인해 인간은 이성적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 논술문제 해설 >
인간의 서로 다른 삶의 태도 "내 가치관은?"
선생님은 논제분석을 항상 강조해 왔어. 출제 의도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지. 출제 의도를 파악하면 채점 원칙을 알 수 있고 고득점 전략을 세울 수 있지. 즉 논제만 잘 분석해도 채점기준표의 70% 정도는 형식적으로는 충족시킬 수 있다고 볼 수 있어. 출제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면밀히 파악하고 나름의 주장과 논리를 개발해 채점 교수님을 설득해야겠지.
논제분석에 못지 않게 유의사항도 중요해. 논제의 요구사항을 준수하지 않으면 감점되지만 유의사항을 지키지 않은 경우 0점 처리될 수 있지. 경희대는 시험지에 (1)유의사항 (2)논제 (3)제시문 순서로 적을 정도로 유의사항을 강조하고 있어. 먼저 유의사항부터 살펴볼까.
1. 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100자~1200자 이내로 논술하시오.
일반적으로 요구된 답안 분량에서 20% 이상 초과 혹은 부족할 경우 불합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거야. 그리고 경희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90분 동안 1200자를 논술하는 것으로 원고지 250자 분량의 서론,700자 분량의 본론,250자 분량의 결론으로 작성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단락은 4~5개 정도로 구성하면 무난할 것이라고 해.
2. 제목은 쓰지 말고 특별한 표시를 하지 마시오.
'감사합니다''끝''대학에서 뵙겠습니다'등을 써 넣거나,원고지에 조그마한 그림이나 기호를 넣으면 특별한 표시를 하지 마시오를 지키지 않은 거야. 0점 처리될 가능성이 많아.
3. 제시문 속의 문장을 그대로 쓰지 마시오.
요약을 요구하는 논제의 경우에도 제시문을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해서 표현해야 하는 거지. 제시문의 주장이 좋다면 글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여서 활용하는 것이 좋겠어.
4. 반드시 본교에서 지급된 필기구를 사용하시오.
다른 친구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치러지는 것이니까 평소 여러 펜으로 써보는 연습이 필요할 거야.
논술은 대입 전형 요소이기 때문에 대학별로 채점 기준이 다르다고 봐야 해. 서울대 논술 출제위원장의 '좋은 논술' 이론이 경희대 논술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어. 따라서 경희대에서 발표한 채점 기준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어.
그리고 경희대는 정신세계와 물질문명의 조화를 통한 문화세계 창조라는 명확한 설립이념을 갖고 있고 실제로 그러한 창학이념이 어느 정도 구현된 문제를 출제하고 있어. 주역과 이진법,게놈을 각 제시문으로 활용한 2006년도 자연계 문제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어. 논술이 사고력 평가의 방법으로서 대학이 원하는 인재를 뽑겠다는 의지가 반영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것이지. 그렇기 때문에 수험생은 그러한 방향에 맞게 답안을 작성해야 할 거야.
그럼 본격적으로 논제를 분석해 보자.
<논제>
(1) 제시문 [가] [나]와 [다] [라]는 서로 다른 삶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2)이 두 가지 중 하나의 입장을 선택하고 그 논지를 바탕으로 (3)현대인의 (4)바람직한 삶의 방식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질문 (1)을 통해서 두 가지의 대립적인 삶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제시문을 읽지 않더라도 짐작할 수 있어. 네 개의 제시문을 서로 다른 필자가 쓴 글이므로 [가]와 [나] 그리고 [다]와 [라]의 취지가 비슷하더라도 세부 쟁점에서는 다소간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지만 질문 (2)가 두 가지 중 하나의 입장 선택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공통되는 부분에 좀 더 집중하고 제시문을 분석하면 되겠지. 그럼 제시문을 분석해 본 후 나머지 질문을 분석해보도록 하자.
제시문 [가]는 양주의 '위아(爲我)' 사상에 대한 맹자와 한비자의 평가를 설명하고 있어. 여기서 주의할 점은 제시문에서 분석할 내용이 질문 (1)에서 유구한 바와 같이 삶의 태도라는 거야. 맹자나 한비자의 주장은 양주의 삶의 태도에 대한 평가일 뿐 그 자체가 삶의 태도를 제시한다고 보기는 힘들어. 따라서 제시문 [가]에서 보여 지는 삶의 태도는 '위아(爲我)' 한단어로 정리가 가능해.
제시문 [나]는 남에 대한 사랑과 자기애가 상호배타적이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어. 인간 존재로서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덕이라면 인간 존재로서 나를 사랑하는 것도 덕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야. 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거야. 결국 제시문 [나]도 '자기애(自己愛)'라는 한단어로 정리할 수 있겠다.
제시문 [다]는 자신을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천하가 혼란한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제시문 [다]의 글쓴이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자신만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 주장하는데,때문에 자신의 몸을 사랑하듯이 남을 사랑할 것을 주장하고 있어. '서로 사랑하라'가 제시문 [다]가 종국적으로 주장하는 바야.
제시문 [라]는 레비나스의 주장을 요약한 것이라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겠어. 하지만 레비나스의 사상에 대해서 전혀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본 논제를 풀이하는 데 치명적이지는 않아. 레비나스는 '다른 이'를 지배하려는 전쟁의 철학을 비판하면서 타자에 대한 책임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는 평화의 철학을 주장하지. 그리고 타인을 사랑하고 타인과 연대할 것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이기적인 욕망을 포기하고 책임 있는 주체로 설 수 있다는 거야. 타인으로 인해서 형이상학적인 욕망이 창조되고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로 된다고 마무리 하고 있지. 이 짧은 지문으로 레비나스의 생각을 온전하게 이해하기는 불가능해. 다만 제시문 [라]의 의도와 제시문 [다]와의 관련 속에서 논제에 답하기 위한 최소한의 쟁점은 추출해낼 수 있을 것이고,그 정도면 충분한 거야.
네 개의 제시문 모두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제시문 [가]와 [나]는 시선을 자신에게 두고 있고,제시문 [다]와 [라]는 타인에게 두고 있는 것이 차이점이야. 이러한 삶의 태도를 '현대인'이 처한 상황에 비추어 보아 어떤 것이 '바람직한 삶의 방식'인지 논해야겠지. 여기서 '바람직한 삶의 방식'이라는 최종 질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옳다는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삶의 태도,당위로서의 삶의 태도를 묻는 것이야.
정리하자면 이 논제는 상이한 삶의 태도를 분석 및 정리해 내는 능력을 먼저 물은 후 현대인이 처한 삶의 환경을 분석해 어떤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진정으로 바람직한지에 대해서 묻고 있어. 거칠게 말해서 수험생의 가치관을 묻는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 물론 가치관 자체는 평가 대상이 아니야.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가치관을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는지,그리고 과정에서 현실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있었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없어. 논제의 의도와 제시문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이 되겠지.
▶두 가지 상이한 삶의 태도 = 자기애 VS 연대,이타주의
▶현대인이 처한 환경 = 세상에 대한 학생의 분석
▶바람직한 삶의 태도 = 본인의 가치관
결국 제시문에서 분석한 두 가지 가치관을 현대인이 처한 환경이라는 스펙트럼에 비추어봤을 때 어떤 가치관이 더 바림직한지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문제인 거야. 간단하지만 깊이가 있는 논제야. 현대인이 처한 환경 분석과 관련지어 반대편 가치관을 치밀하게 공격하고 자신이 선택한 가치관을 설득력 있게 구성해내는 것이 변별력이 될 거야.
이번 논제도 그렇지만 경희대 논술은 언제나 학생들의 분명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쌍을 이루어 대립하거나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주제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친구들과 토론하는 것은 경희대를 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거야.
예를 들어 민주주의와 자유가 서로 어울리는 개념인지,환경논리와 개발논리의 화해는 가능한지 등 쌍을 이루는 개념들에 대해 고민해 보는 거야. 수능 준비하느라 시간이 없다고? 토론과 논쟁이 시간 낭비인 것 같다고? 급할수록 편법을 찾게 되는 것이 사람의 심리이지만,급할수록 정석대로 공부하는 것이 옳아.
처음에 밝혔지만 논술은 사고력 평가의 방법이며,사고력은 편법으로 절대 늘지 않는 것이지. 그런데 안타깝게도 편법을 찾는 수험생의 심리에 기생해서 족집게를 내세우는 사기꾼들도 넘쳐나고 있지. 호랑이의 날카로운 눈으로 목표를 향하되,우직한 소의 걸음걸이로 과정에 충실한 호시우행(虎視牛行)의 자세로 준비하기를 바래.
남태균 Sㆍ논술원장 ok@nonsoul.com
제시문 [가], [나]와 [다], [라]는 서로 다른 삶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두 가지 중 하나의 입장을 선택하고 그 논지를 바탕으로 현대인의 바람직한 삶의 방식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 가 ]
양주(楊朱)의 중심 사상은 위아(爲我)이다. 이에 대해 맹자(孟子)는 "양주는 자기만을 위하는 입장을 취해서 털 한 올이라도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한다 하더라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였다. 반면 한비자(韓非子)는 "지금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다. 그는 위험한 성(城)에 들어가지 않으며, 군대가 있는 곳에 머물지 않으며, 세상의 큰 이익을 위해 자기의 정강이의 털 한 올도 바꾸지 않는다. 세상의 군주가 그를 따르고 예로 대하며 그의 지혜를 귀하게 여기고 그의 행동을 고상하게 여겨 사물(事物)을 가볍게 보고 생명을 중시하는 선비라고 생각한다"며 양주의 입장을 옹호하였다.
[ 나 ]
사랑의 개념을 여러 가지 대상에 적용하는 데는 아무런 반대도 나타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덕이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죄라는 신념이 널리 퍼져 있다. 이는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며, 자기애(自己愛)는 이기심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에서이다. 사랑과 자기애는 한 쪽이 커지면 커질수록 다른 쪽은 작아진다는 의미로 볼 때 상호 배타적이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사랑과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서로 배타적이라는 표현 속에 담긴 논리적 오류를 강조해 두어야 한다. 만일 내 이웃을 인간 존재로서 사랑하는 것이 덕이라면 나를 사랑하는 것도 악이 아니라 덕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도 역시 인간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인간 개념은 있을 수 없다. 나 자신을 배제하는 원리는 그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성서의 사상은 자기 자신의 통합성과 특이성에 대한 존경과,이해가 다른 개인에 대한 존경과 사랑,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사랑과 분리될 수 없는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대상'과 우리 자신 사이의 관계가 문제시되는 한 사랑은 원칙적으로 분할할 수 없는 것이다. 진실한 사랑은 생산성의 표현이며 보호,존경,책임,지식을 포함한다. 그것은 타인에 의해 생겨나는 '감정'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 근거하여 사랑받는 사람의 성장과 행복을 능동적으로 갈망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나 자신의 자아는 다른 사람처럼 내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자신의 생명과 행복, 성장과 자유에 대한 긍정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즉 보호와 존경과 책임,그리고 지식에 근거하고 있다. 만일 개인이 생산적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는 자기 자신도 사랑할 수 있다. 또 그가 다른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는 전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다.
[ 다 ]
혼란이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하면 서로 사랑하지 않는 데서 일어나는 것이다. 신하와 자식이 그의 임금이나 아버지에게 불효하는 것을 혼란이라 한다. 자식은 자신을 사랑하고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아버지를 해치고 자신만을 이롭게 한다. 아우는 자신을 사랑하고 형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형을 해치고 자신만을 이롭게 한다. 신하는 자신을 사랑하고 임금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임금을 해치고 자신만을 이롭게 한다. 이것을 일러 혼란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애롭지 않고 형이 아우에게 자애롭지 않고 임금이 신하에게 자애롭지 않은 것, 이것 역시 천하의 혼란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자신만 사랑하고 아들은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자식을 해치면서 자신을 이롭게 하고 형은 자신만 사랑하고 아우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아우를 해치면서 자신만 이롭게 한다. 임금은 자신을 사랑하고 신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신하를 해치면서 자신만 이롭게 한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모두 서로 사랑하지 않는 데서 일어나는 것이다.
부형과 임금 보기를 자기 몸과 같이 한다면 어찌 불효를 할 것이며, 또 자애롭지 않음이 있겠는가? 아우와 신하를 자기 몸과 같이 한다면 어찌 자애롭지 않으며, 불효와 자애롭지 않음이 있겠는가?
만약 온 천하로 하여금 모두 어울려 서로 사랑하게 한다면, 나라와 나라는 서로 공격하지 않고 집안과 집안은 서로 어지럽히지 않고 도적들마저 없어지고 임금과 신하와 아버지, 그리고 자식들은 모두 효도하고 자애로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온 천하가 모두 아울러 서로 사랑한다면 곧 질서가 잡히고 모두가 서로 미워하면 어지러워진다.
[ 라 ]
현대 철학에서 가장 첨예하게 쟁점이 된 주체의 해체와 탈중심화는 서양문화 전반에 깔려 있는 자아중심적 사고를 반성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문제는 해체 이후, 인간이 어떤 모습을 할 것인가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레비나스의 철학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철학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다.
레비나스는 서양 철학은 체질적으로 '다른 이'와 '다른 것'을 지배하려는 전체성의 철학, 또는 전쟁의 철학이라고 비판하면서 이에 대항하여 어떤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개인의 인격적 가치와 타자(他者)에 대한 책임을 보여주는 '타자성의 철학' 또는 '평화의 철학'을 구축하고자 한다.
그는 인간의 고통과 구체적인 삶에 관심을 기울여 이웃과 타인에 대한 연대를 강조하며 타자와의 윤리적 관계를 통해 얻어지는 주체성에 대해 말한다. 여기서 타자는 나와 똑같은 위치에 있지 않은 자로, 거주하며 노동하는 나에게 윤리적 요구로서 임하는 무한자로, 내가 어떠한 수단을 통해서도 지배할 수 없는 절대적 외재성으로 묘사된다. 타자의 출현과 더불어 내가 타자를 영입하고 대접할 때 진정한 의미의 주체성, 즉 '환대(歡待)로서의 주체성'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레비나스는 타자의 출현으로 인해서 첫 번째 의미의 주체성, 즉 '자기성' 혹은 '내재성'이 상실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하고 있다. 타자를 받아들이는 나는 다른 주체가 아니라 세계를 즐기고 거주하며 노동하는 주체이다. 그러나 바로 이 주체가 타자의 출현을 통해서 이기적인 욕망을 포기하고 타자에 대한 책임적인 주체로 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이 어떻게 자기의 이기적인 욕구를 제한하고 타자의 욕구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타행(利他行)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만일 나 자신 속에 있지 않다면, 어떻게 나는 나의 삶의 태도를 바꾸어 타자를 나의 존재의 무게 중심으로 삼을 수 있는가? 레비나스의 답은 타자의 얼굴의 현현(顯現)으로 나에게 '형이상학적인 욕망'이 창조되고 이 욕망으로 인해 인간은 이성적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 논술문제 해설 >
인간의 서로 다른 삶의 태도 "내 가치관은?"
선생님은 논제분석을 항상 강조해 왔어. 출제 의도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지. 출제 의도를 파악하면 채점 원칙을 알 수 있고 고득점 전략을 세울 수 있지. 즉 논제만 잘 분석해도 채점기준표의 70% 정도는 형식적으로는 충족시킬 수 있다고 볼 수 있어. 출제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면밀히 파악하고 나름의 주장과 논리를 개발해 채점 교수님을 설득해야겠지.
논제분석에 못지 않게 유의사항도 중요해. 논제의 요구사항을 준수하지 않으면 감점되지만 유의사항을 지키지 않은 경우 0점 처리될 수 있지. 경희대는 시험지에 (1)유의사항 (2)논제 (3)제시문 순서로 적을 정도로 유의사항을 강조하고 있어. 먼저 유의사항부터 살펴볼까.
1. 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100자~1200자 이내로 논술하시오.
일반적으로 요구된 답안 분량에서 20% 이상 초과 혹은 부족할 경우 불합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거야. 그리고 경희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90분 동안 1200자를 논술하는 것으로 원고지 250자 분량의 서론,700자 분량의 본론,250자 분량의 결론으로 작성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단락은 4~5개 정도로 구성하면 무난할 것이라고 해.
2. 제목은 쓰지 말고 특별한 표시를 하지 마시오.
'감사합니다''끝''대학에서 뵙겠습니다'등을 써 넣거나,원고지에 조그마한 그림이나 기호를 넣으면 특별한 표시를 하지 마시오를 지키지 않은 거야. 0점 처리될 가능성이 많아.
3. 제시문 속의 문장을 그대로 쓰지 마시오.
요약을 요구하는 논제의 경우에도 제시문을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해서 표현해야 하는 거지. 제시문의 주장이 좋다면 글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여서 활용하는 것이 좋겠어.
4. 반드시 본교에서 지급된 필기구를 사용하시오.
다른 친구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치러지는 것이니까 평소 여러 펜으로 써보는 연습이 필요할 거야.
논술은 대입 전형 요소이기 때문에 대학별로 채점 기준이 다르다고 봐야 해. 서울대 논술 출제위원장의 '좋은 논술' 이론이 경희대 논술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어. 따라서 경희대에서 발표한 채점 기준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어.
그리고 경희대는 정신세계와 물질문명의 조화를 통한 문화세계 창조라는 명확한 설립이념을 갖고 있고 실제로 그러한 창학이념이 어느 정도 구현된 문제를 출제하고 있어. 주역과 이진법,게놈을 각 제시문으로 활용한 2006년도 자연계 문제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어. 논술이 사고력 평가의 방법으로서 대학이 원하는 인재를 뽑겠다는 의지가 반영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것이지. 그렇기 때문에 수험생은 그러한 방향에 맞게 답안을 작성해야 할 거야.
그럼 본격적으로 논제를 분석해 보자.
<논제>
(1) 제시문 [가] [나]와 [다] [라]는 서로 다른 삶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2)이 두 가지 중 하나의 입장을 선택하고 그 논지를 바탕으로 (3)현대인의 (4)바람직한 삶의 방식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질문 (1)을 통해서 두 가지의 대립적인 삶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제시문을 읽지 않더라도 짐작할 수 있어. 네 개의 제시문을 서로 다른 필자가 쓴 글이므로 [가]와 [나] 그리고 [다]와 [라]의 취지가 비슷하더라도 세부 쟁점에서는 다소간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지만 질문 (2)가 두 가지 중 하나의 입장 선택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공통되는 부분에 좀 더 집중하고 제시문을 분석하면 되겠지. 그럼 제시문을 분석해 본 후 나머지 질문을 분석해보도록 하자.
제시문 [가]는 양주의 '위아(爲我)' 사상에 대한 맹자와 한비자의 평가를 설명하고 있어. 여기서 주의할 점은 제시문에서 분석할 내용이 질문 (1)에서 유구한 바와 같이 삶의 태도라는 거야. 맹자나 한비자의 주장은 양주의 삶의 태도에 대한 평가일 뿐 그 자체가 삶의 태도를 제시한다고 보기는 힘들어. 따라서 제시문 [가]에서 보여 지는 삶의 태도는 '위아(爲我)' 한단어로 정리가 가능해.
제시문 [나]는 남에 대한 사랑과 자기애가 상호배타적이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어. 인간 존재로서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덕이라면 인간 존재로서 나를 사랑하는 것도 덕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야. 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거야. 결국 제시문 [나]도 '자기애(自己愛)'라는 한단어로 정리할 수 있겠다.
제시문 [다]는 자신을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천하가 혼란한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제시문 [다]의 글쓴이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자신만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 주장하는데,때문에 자신의 몸을 사랑하듯이 남을 사랑할 것을 주장하고 있어. '서로 사랑하라'가 제시문 [다]가 종국적으로 주장하는 바야.
제시문 [라]는 레비나스의 주장을 요약한 것이라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겠어. 하지만 레비나스의 사상에 대해서 전혀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본 논제를 풀이하는 데 치명적이지는 않아. 레비나스는 '다른 이'를 지배하려는 전쟁의 철학을 비판하면서 타자에 대한 책임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는 평화의 철학을 주장하지. 그리고 타인을 사랑하고 타인과 연대할 것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이기적인 욕망을 포기하고 책임 있는 주체로 설 수 있다는 거야. 타인으로 인해서 형이상학적인 욕망이 창조되고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로 된다고 마무리 하고 있지. 이 짧은 지문으로 레비나스의 생각을 온전하게 이해하기는 불가능해. 다만 제시문 [라]의 의도와 제시문 [다]와의 관련 속에서 논제에 답하기 위한 최소한의 쟁점은 추출해낼 수 있을 것이고,그 정도면 충분한 거야.
네 개의 제시문 모두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제시문 [가]와 [나]는 시선을 자신에게 두고 있고,제시문 [다]와 [라]는 타인에게 두고 있는 것이 차이점이야. 이러한 삶의 태도를 '현대인'이 처한 상황에 비추어 보아 어떤 것이 '바람직한 삶의 방식'인지 논해야겠지. 여기서 '바람직한 삶의 방식'이라는 최종 질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옳다는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삶의 태도,당위로서의 삶의 태도를 묻는 것이야.
정리하자면 이 논제는 상이한 삶의 태도를 분석 및 정리해 내는 능력을 먼저 물은 후 현대인이 처한 삶의 환경을 분석해 어떤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진정으로 바람직한지에 대해서 묻고 있어. 거칠게 말해서 수험생의 가치관을 묻는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 물론 가치관 자체는 평가 대상이 아니야.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가치관을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는지,그리고 과정에서 현실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있었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없어. 논제의 의도와 제시문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이 되겠지.
▶두 가지 상이한 삶의 태도 = 자기애 VS 연대,이타주의
▶현대인이 처한 환경 = 세상에 대한 학생의 분석
▶바람직한 삶의 태도 = 본인의 가치관
결국 제시문에서 분석한 두 가지 가치관을 현대인이 처한 환경이라는 스펙트럼에 비추어봤을 때 어떤 가치관이 더 바림직한지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문제인 거야. 간단하지만 깊이가 있는 논제야. 현대인이 처한 환경 분석과 관련지어 반대편 가치관을 치밀하게 공격하고 자신이 선택한 가치관을 설득력 있게 구성해내는 것이 변별력이 될 거야.
이번 논제도 그렇지만 경희대 논술은 언제나 학생들의 분명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쌍을 이루어 대립하거나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주제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친구들과 토론하는 것은 경희대를 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거야.
예를 들어 민주주의와 자유가 서로 어울리는 개념인지,환경논리와 개발논리의 화해는 가능한지 등 쌍을 이루는 개념들에 대해 고민해 보는 거야. 수능 준비하느라 시간이 없다고? 토론과 논쟁이 시간 낭비인 것 같다고? 급할수록 편법을 찾게 되는 것이 사람의 심리이지만,급할수록 정석대로 공부하는 것이 옳아.
처음에 밝혔지만 논술은 사고력 평가의 방법이며,사고력은 편법으로 절대 늘지 않는 것이지. 그런데 안타깝게도 편법을 찾는 수험생의 심리에 기생해서 족집게를 내세우는 사기꾼들도 넘쳐나고 있지. 호랑이의 날카로운 눈으로 목표를 향하되,우직한 소의 걸음걸이로 과정에 충실한 호시우행(虎視牛行)의 자세로 준비하기를 바래.
남태균 Sㆍ논술원장 ok@nons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