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인문대생 82명 전과 신청,이 중 59명 승인받아 법대 경영대 등 인기학과로.'

지난 2월 서울대가 발표한 '2006학년도 전과 현황'은 그동안 제기돼 온 '인문학 위기'의 실태를 잘 보여준다. 인문대생 중 전과 가능한 학생의 약 23%가 전공을 바꿨다. 장학금 혜택마저 마다하며 인문대를 외면하는 실정이다.

그나마 국립대학인 서울대는 인문학과의 명맥이라도 유지하고 있으나 웬만한 사립대에도 인문대 내의 개설학과는 크게 부족하다. 대학들이 철학·사학계열 등 신입생 없는 학과의 문을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2001년에 호서대 철학과가,2003년엔 경원대 역사철학부 등이 폐지됐다.

학생들은 인문학이 소위 '돈 안 되는' 학문이기 때문에 기피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경영대 경제학과 등에 진학해 실무를 익히는 것이 취업에 더 도움되지 않느냐는 입장이다.

"취업난이 심각하기 때문에 졸업 후 빨리 직장을 얻어야 합니다. 기업이 인문학 전공자보다는 법대나 경영대 출신을 선호할 텐데 굳이 밥그릇 걱정해야 하는 과를 가야 하나요." 왜 인문학이라면 도리질하느냐는 물음에 대한 학생들의 하소연이다.

그러나 인문학은 현실적인 학문이 아니라고 간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인문학이란 인간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므로 인간이 사는 현실과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문대 진학을 희망하는 신수진 학생(부산국제외고 3)은 "인문학은 인간과 사회 전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모든 학문의 기본이 된다"며 "돈이 안 된다는 통념만으로 기본을 무조건 외면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인문학은 실용학보다 더 가까이에서 현실을 반영한다. 철학을 기반으로 한 과학 기술은 한층 진보돼 활용될 수 있다. 경희대 도정일 교수는 "역사상 인문학이 현실과 분리됐던 적이 없었는데 현대인들은 신자유주의의 급격함 속에서 인문학을 떼 놓으려 한다"며 이대로라면 "행복하기 위해 물질문명을 추구하다 막상 그렇게 되지도 못하고 '역설의 시대'에 살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술의 발달로 점점 메마르게 될 사회를 인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인문학이다. 한 때 지식인들의 열띤 학문의 장,사회의 중심이었지만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인문학. 이제 그 가치가 재조명돼야 할 때다.

정지혜 생글 기자 (부산 국제외고 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