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 자동차 산업 사상 최대의 '빅뱅'이 시작됐다.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이지만 경영난에 봉착한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르노-닛산차(세계 4위)의 투자를 받아들여 서로 손잡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화들짝 놀란 일본의 도요타자동차(2위)도 늦기 전에 르노-닛산차를 제치고 GM과 제휴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상 시나리오는 미국 포드자동차(3위)와 르노-닛산차의 제휴 가능성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한마디로 세계 자동차 업계에 '합종연횡'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것이다.



◆‘짝짓기’ 나선 세계 자동차 산업

업계 판도 변화의 핵은 단연 GM이다.GM이 세계 1위(판매량 기준)를 유지한다면 르노-닛산과 동맹을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다.문제는 GM이 80년 가까이 유지해 온 1위 자리를 올해 드디어 도요타에게 내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따라서 GM은 상당량의 주식을 팔아서라도 3각동맹(미국 GM-프랑스 르노-일본 닛산)을 결성하고 1위를 수성,산업내 지배력을 공고히 유지하려는 필요성이 생겨난 것이다.

이번 GM-르노 닛산 제휴는 월가의 ‘기업사냥꾼’ 커크 커코리안이 GM 주식 9.9%를 사들여 4대 주주로 등장한 것이 계기가 됐다.투자차익을 노린 커코리안은 르노-닛산에 GM 투자를 요청하면서 GM 이사회에는 이 투자를 받아들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이에 따라 GM은 앞으로 90일간 르노-닛산 제휴과 제휴할 경우의 득실을 집중적으로 검토키로 합의했다.

도요타의 견제는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세계적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최근 도요타 관계자의 말을 인용,도요타가 GM에 손을 잡자고 제안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도요타는 다만 제휴를 추진하되 상대 주식을 교환하는 자본제휴보다는 합작투자의 확대나 신차 개발 및 기술공조 등을 선호할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GM과 도요타가 제휴하면 연간 판매량(2005년기준)은 1650만대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공룡 자동차 기업’이 된다.GM-르노-닛산 연합의 판매량도 1450만대에 달한다.3,4위인 포드와 르노-닛산간 제휴가 성사되더라도 판매량이 1230만대에 달해 GM을 제치고 세계 1위 업체로 올라서게 된다.어떤 조합이 되더라도 대규모 지각변동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미국 기업의 경영난이 주 요인

자동차 산업의 합종연횡은 GM과 포드 등 미국 기업의 경영난에서 비롯됐다.GM은 작년에 무려 105억6000만달러(10조246억원)의 대규모 적자를 냈다.1980년대 43.3%에 달했던 GM의 미국 자동차 시장 점유율이 지난해 25.8%로 급락했다.지난 1분기에도 11억달러의 적자를 기록, 분기 실적으로 12년만에 최악을 보였다.

실적악화의 주범은 과도한 복지비용 지출로 인한 ‘고비용-저효율’ 구조로 지목된다.GM은 노조원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막대한 의료비와 연금 때문에 차량 1대를 만드는데 2200달러의 추가 비용을 들이고 있다.

이에 따라 GM과 포드는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GM은 2008년까지 북미 지역에 있는 12개 공장을 폐쇄해 생산직 3만5000명을 줄이기로 했다.포드도 2008년까지 북미 공장 6개를 폐쇄하고 2012년까지 8개 공장을 추가 폐쇄한다는 방침이다.

만약 GM이 르노-닛산과 손을 잡는다면 이는 무섭게 추격하고 있는 도요타를 견제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도요타가 일종의 ‘공공의 적’이 됐고 세계 자동차업계의 재편에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위기와 중국의 부상

세계 자동차 업계의 지각변동은 우리나라 기업들에겐 위협으로 다가올 전망이다.세계 5대 자동차 회사로 도약하기 위해 속도경영을 펴온 현대·기아차로선 감당하기 힘든 ‘골리앗’을 만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미국과 유럽의 시장이 포화상태에 접어들었고 ,원화 강세,중국 인도 등 이머징 마켓의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도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최근엔 비자금 파문으로 신뢰도에 손상을 입었으며 계속되는 파업으로 인한 대외 이미지 실추도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깎아내릴 것으로 보인다.

중국 자동차 회사들의 급성장도 잠재적 위협 요인이다.중국 토종 자동차 회사인 난징자동차는 영국에 이어 미국에도 공장을 짓겠다고 선언해 우리 기업들을 긴장시키고 있다.중국 최대 자동차 메이커인 상하이차도 앞으로 5년간 30개의 자체 브랜드 차량을 만들어 수출할 계획이어서 중·소형차 분야에서 상당한 경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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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 크라이슬러 인수하려 하기도 ]

커코리안은 누구?

세계 자동차산업을 재편시킬 수 있는 소용돌이는 '기업사냥꾼' 커크 커코리안(89)이 몰고 왔다. 그는 지난해 5월 GM 주식을 공개 매수하겠다고 선언,미국 자동차 업계를 긴장시켰다.

1990년대 크라이슬러를 적대적으로 인수하려 한 '전력'을 가진 그는 M&A업계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처음 공개 매수 선언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그가 당연히 GM 경영권을 인수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는 전혀 뜻밖의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르노-닛산과 GM의 3각 동맹을 추진한 것.

큰 그림을 그리는 그의 남다른 사업 아이디어는 오랫동안 M&A시장에서 몸담아 온 경력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는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큰 돈을 모았다.

아르메니아 출신 이민자를 부모로 둔 그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아마추어 권투 선수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2차 대전 때 영국 공군으로 참전한 인연으로 전후 항공여객기 사업을 시작했고 이 때 모은 돈이 사업의 종잣돈이 됐다.

1960년대엔 네바다 사막의 땅을 사들이고 카지노를 매입,그 유명한 'MGM 미라지' 호텔로 성장시켰다.

미국 영화사 MGM도 세 차례나 팔고 사들였으며 이 지분을 일본 소니에 매각해 무려 31억달러를 벌어들였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또 한 번 뛰어든 'GM 대전'을 어떻게 치를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