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양조장 주인,빵집 주인의 자비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익에 대한 그들의 관심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간성에 호소하지 않고 이기심에 호소하며,그들에게 우리 자신의 필요를 이야기하지 않고,그들의 이익을 이야기한다." -애덤 스미스,<국부론> 中에서-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경제 활동의 원리를 이처럼 인간의 '이기심'에서 찾았다.

◆희소한 자원을 배분하는 가격원리

경제의 근원적 문제는 '희소한 자원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배분할 것인가'로 요약된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한 반면,그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수단(자원)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시장경제는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며 △자율적 의사결정에 따라 △희소한 자원을 △각자가 지불하고자 하는 가격에 따라 배분할 때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본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의사결정권을 가지기보다 다양한 의견이 반영될 때 최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견해다.

이 '보이지 않는 손'은 인간의 본성인 이기심,즉 '사익추구'에 의해 작동한다.

개별 경제주체들이 각자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도록 시장에서 자유로운 거래를 허용하다보면 경제 및 사회 전체로도 최적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 원리는 무엇일까?

수요와 공급이 가격을 결정하고 자유경쟁이 벌어지는 시장경제 체제에서 개인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재화나 서비스가 '적절한 가격'에 '최고의 품질'을 담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이다.

소비자들은 덕분에 '좋은 제품'을 '적절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동네 빵집을 예로 들어보자.동네에 하나뿐이던 빵집이 세 곳,네 곳으로 늘어났다면? 빵가게 주인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빵을 더 맛있게 구워 옆집보다 더 싼 값에 팔려고 애쓸 것이다.

서비스 경쟁도 불붙는다.

그 결과 우리는 맛있는 빵을 친절한 점원으로부터 싼 값에 사먹을 수 있게 된다.

개인의 이익 추구가 사회적 이익으로 확대재생산되는 셈이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빵을 가장 낮은 가격에 제공하는 매우 이타적인 빵집 주인이 결국 가장 돈을 많이 버는 보상을 받는다.

타인에게 베풀어 준 것이 아무것도 없으면 그는 자신의 욕구도 채우지 못하게 된다.

말하자면 자기가 잘되려면 남에게 많이 베풀어야 한다.

문제는 빵집 경쟁에서 실패한 사람의 문제다.

시장경제를 나쁘게 보는 사람들은 바로 이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오해다.

빵집 경쟁에서 실패한 이 사람은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 사람은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그 무언가를 제공해줄 다른 기회를 빨리 찾아내야 한다.

자신의 남은 돈을 그곳에 새롭게 투자하면서 희소한 자원을 가장 유용하게 사용하는 길을 새롭게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힘들지만 이것에 성공하면 그는 충분히 보상받는다.

또 사회는 그 과정에서 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향유할 수 있게 된다.

바로 실패가 있기 때문에 시장경제는 더욱 역동적으로 돌아가고 어떤 사회보다 더욱 큰 부를 창출하게 된다.

만일 실패의 위험이 없다면? 물론 아무도 열심히 일하지 않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에서는 이것이 안될까?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를 예로 들어보자.사회주의 정부하에서는 아무도 밤을 세워 윈도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않는다.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월급을 준다면,그리고 빌 게이츠처럼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데 돈이 달랑달랑하지 않았다면 보다 느긋하게 일을 할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모두가 같이 가난하게 된다.

북한이 바로 그런 모습의 전형이다.

그러나 시장경제에서 살고 있는 빌 게이츠는 잠을 줄여가며 열심히 일을 했고 결국 윈도를 개발해 인류에게 엄청난 혜택을 주었다.

엄청난 숫자의 컴맹들에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해준 이타적 공로가 컸던 만큼 빌 게이츠는 세계 최대의 갑부가 됐던 것이다.

결국 돈을 벌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해주어야 한다.

다시 말해 시장경제는 이타적 행동을 많이 하도록 장려하는 제도다.

◆선의의 종착역은 지옥

시장경제의 활력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사상가인 하이에크(1899~1992년)의 핵심 사상인 '자생석 질서'와도 통한다.

하이에크에 따르면 가장 정상적인 사회모델은 '만들어 내는 질서'(Made Order)와 같은 조직의 질서가 아닌 '자연적으로 생겨난 질서'다.

'선의'(善意)에 기반한 사회주의가 실패한 원인도 마찬가지다.

사회주의는 약자를 향한 따뜻한 마음,즉 선의에서 출발한 체제다.

인간사회를 '유토피아'(이상사회)로 이끌어가겠다는 게 사회주의의 근본사상이다.

하지만 개인의 이기적 동기를 애써 무시하고 공평한 분배를 추구한 결과 끝내 붕괴하고 말았다.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본 사회주의가 개인,개인의 자유,개인이 참여하는 시장,개인소유권,사유재산제를 부정했고 경제의 활력이 나오는 자생적 싹을 짓밟은 결과다.

"선의의 종착역은 지옥"이라는 영국 속담은 사회주의 '필멸'(必滅)원인을 설명하는 데도 아주 적합하다.


[ 시장경제가 그래도 윤리적 ]

시장경제는 때로 비정하고 반도덕적인 것처럼 보인다.

경쟁에 기반을 두고 개인의 경쟁력에 따라 도태되거나 살아남는다.

그러나 일한 만큼 버는 것이 실은 더욱 윤리적이다.

기여한 것보다 더 큰 소득을 바라는 것은 비윤리적 행동이다.

소위 도둑놈 심보다.

경쟁이 제한되면 더욱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고 희소한 자원이 낭비된다.

재미있는 것은 마르크스가 쓴 '공산당 선언'(1848)에서 조차 시장경제의 경탄스러운 발전과 활력이 분명히 묘사돼 있다는 점이다.

"부르주아지는 그들의 백년도 안되는 계급 지배 속에서 지난 인류 역사의 모든 세대들이 이뤄놓은 것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엄청난 생산력을 창조해냈다.

" 마르크스가 사망한 후에도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다양한 수정을 거듭하며 괄목할만한 성장을 일궈왔다.

물론 시장도 때론 실패한다.

하지만 "시장경제가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최선의 시스템'"(하이에크 <굴종의 길>)이라는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