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조업은 외국 기업의 거센 도전을 받아 비틀거리고 있다.'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른 중국이 대미 무역흑자를 갈수록 키워가고 있고,일본 도요타 한국 현대 등 아시아 자동차업체들이 미국 자동차업체의 시장을 계속 빼앗는 걸 보면 쉽게 수긍이 가는 주장이다.

특히 세계 1위 자동차 회사인 제너럴모터스(GM)가 경영위기를 맞으면서 미국 제조업의 위기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더욱 큰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1908년 설립 이후 뷰익 캐딜락 시보레 등을 잇따라 인수하며 '미국의 자존심'으로 불렸던 자동차 왕국 GM은 이제 일본의 닛산과 프랑스 르노가 제휴의 손을 내밀 정도로 위상이 추락했다. 기업 사냥꾼에서 먹잇감으로 전락한 GM은 내년 1월까지 3만5000명의 직원을 명예퇴직시킬 예정이고 자동차부품업체 델파이도 최근 1만2600명의 명예퇴직을 단행키로 하는 등 미국 제조업의 심장인 자동차산업에서 대규모 감원이 이뤄지고 있다. 과연 미국 제조업의 위기가 현실화되는 것일까.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이 질문에 대해 '노(NO)'라고 답했다. 이 잡지는 실제 대부분의 미국 제조업체들이 계속되는 생산성 향상으로 번창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계속되는 생산성 향상

미 제조업체들의 순이익은 2001년 불황 이후 매년 9%씩 증가했다. 이 기간 중 제조업체의 생산성 향상이 어느 경기확장기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제조업 생산성은 1995~2000년 연평균 4%씩 상승률을 나타내면서 다른 선진국을 앞질렀다. 생산성은 2000년 이후 한 단계 더 도약해 매년 5.1%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지난 2년 동안 생산성 증가세가 다소 둔화되기는 했지만 앞으로도 견조한 성장을 이어갈 전망이다. 하버드대 교수 데일 요르겐슨과 뉴욕 연방은행의 분석가 케빈 스티로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995~2000년 생산성 향상은 정보기술(IT) 붐에 힘입은 것이었다.

IT 붐이 가져온 생산성 개선 효과가 최근 서서히 사라지고 있지만 기업들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을 찾아내고 있기 때문에 향후 생산성 증가율이 1995년 이전 20여년 동안 달성한 것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이들은 전망했다.

이들은 10년 동안 민간 기업의 생산성이 매년 2.6%씩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생산성이 높아지는 분야가 제조업을 뛰어넘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술력과 혁신이 비결

높은 생산성은 기술력과 혁신에서 나왔다. 미국의 수백여개 자동차 부품 회사들은 GM과 델파이의 고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기술력을 바탕으로 도요타 혼다 등 미국에 공장을 지은 외국 자동차업체들에 부품을 공급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다.

제너럴일렉트릭(GE) 보잉 캐터필러 등 주요 대기업들은 견조한 실적을 유지하면서 전체 제조업에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매사추세츠에 있는 싱크탱크인 린(Lean)기업연구소의 제임스 워맥은 "이들 대기업이 탄탄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제품에 뛰어난 기술력이 녹아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기술력은 기업 부활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몇년 전 실적부진으로 고전하고 있던 보잉은 기술력을 회생의 발판으로 삼아 다시 일어섰다.

미국 제조업체들이 중단 없이 혁신을 계속하고 있는 것도 생산성 향상을 가능케하는 요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일리노이의 퓨즈 생산업체인 리틀퓨즈를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했다.

리틀퓨즈는 재고 부품을 최소화하는 저스트인타임(JIT) 방식을 도입,쓸모없는 부품까지 산더미처럼 쌓아두느라 낭비요인이었던 창고 건물에 새로운 생산라인을 깔았다.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인 고든 헌터는 "혁신을 장려하는 기업 환경 덕분에 미국 기업들이 계속해서 생산성을 높여 제조업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장경영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