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6월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한 남성을 성폭행한 피고인들이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사법부가 피해자인 성전환자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즉 성전환자의 바뀐 성을 인정해줄 것인지에 관심을 집중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고인에 대해 강간죄가 아닌 강제추행죄를 적용해 유죄판결을 내렸다.
현행법상 강간죄는 여성만을 피해자로 인정하고 강제추행죄는 남녀 모두를 피해자로 인정하는 점에 비춰보면 대법원은 성전환 수술을 한 피해자를 여성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했어도 여성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시대 변화에 따라 입장이 달라질 가능성도 열어 놓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사람의 성은 생물학적인 요소와 정신적·사회적 요소를 모두 고려해 최종적으로는 사회 통념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이 지난 2006년 6월,대법원은 마침내 사회 통념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사회 통념에 따라 성전환자의 호적상 성별 정정을 허용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성전환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의견도 여전히 존재한다. 기독교 불교 등 종교계는 이번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남녀 성은 신이 내린 창조물의 결과로서 이를 부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손지창과 이준기
1990년대 초반 젊은 여성들이 한 남자 연예인에 열광했다. 주인공은 손지창. 지금은 MBC 드라마 '주몽'에서 유화 역을 맡고 있는 탤런트 오연수의 남편 정도로만 기억되고 있지만 한때 그는 각종 CF는 물론 '느낌' '마지막 승부' 등 인기 드라마에 연이어 출연하며 젊은 여성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젊은 여성들과는 달리 그는 중년 여성들과 남성들로부터는 별 인기를 얻지 못했다. 요즘 말로 하면 '안티'였다. 문제는 그의 '곱상한' 외모 때문으로 남자라면 얼굴 생김새부터도 남자다워야 한다는 게 대다수 시청자들의 반응이었다.
10여년이 흐른 2006년 젊은 여성들이 다시 한 남자에 열광하고 있다. 주인공은 영화 '왕의 남자'에서 동성애 취향을 지닌 여성스러운 남자 공길 역을 연기한 신인 배우 이준기다. 그런데 이준기에 대해서는 별다른 안티가 생기지 않았다. 곱상하기로 할 것 같으면 손지창보다 한 수 위다. 게다가 그는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하는 동성애 코드까지 영화에서 표현했다.
○10년이면 남녀도 변한다
손지창보다 더 여자 같은 남자 이준기가 손지창보다 더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은 10년은 우리 사회에 '젠더(gender)'라는 새로운 성 개념이 등장한 10년과 대략 일치한다.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여성대회에서 처음 쓰인 '젠더'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관념,즉 사회적인 성을 의미하는 용어. 따라서 성 염색체(XX 또는 XY)로 결정짓는 생물학적 성을 가리키는 '섹스(sex)'와 구별지어진다. 젠더는 남녀 간의 차이를 타고난 것이 아닌 사회 구조와 관습 등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대등한 남녀 관계를 정립하자는 취지에서 도입한 용어였으나 성전환자 등 성적 소수자의 권리를 언급할 때도 쓰인다.
젠더 개념이 확산되면서 이제 여자 공군 조종사도 남자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익숙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됐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늘어난 반면,직장을 버리고 가정을 택한 '전업 남편'의 수도 꾸준히 늘고 있다.
손지창의 시대에 그 많던 안티가 이준기의 시대에는 사라진 10년,젠더가 섹스를 대체하며 퍼져 나간 10년은 곧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와 남자가 되고 싶은 여자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가 바뀐 10년이다.
○종교계의 반대
우리 사회의 각종 법과 제도는 성이 고정불변이라는 전제 아래 만들어졌다. 따라서 성전환 수술을 받고 법적으로 성을 바꾸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여러 가지 혼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종교계는 이런 혼란을 우려하며 성전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인간의 성은 창조주의 영역이며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계의 입장이다. 따라서 사회 여론이나 시대 상황이 달라졌다고 해서 성 정정을 허용해줄 수는 없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동양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도 대법원의 이번 결정은 우려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동양철학에서는 남자는 양(陽)의 기운을,여자는 음(陰)의 기운을 각각 타고난 것으로 본다. 즉 남녀는 태어날 때부터 서로 다른 기운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 같은 음과 양의 구별은 남녀,선악(善惡),득실(得失),상하(上下) 등 모든 사회 질서의 근간이라고 보는 것이 동양철학의 입장이다.
이 같은 각계의 우려를 의식,대법원도 성 정정을 허가하면서 후속 입법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에 관한 절차적 규정을 담은 법을 신설하는 것이 이상적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며 "성전환자의 권리가 법적 안정성의 틀 안에서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루 속히 입법조치가 이루어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유승호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기자 usho@hankyung.com
현행법상 강간죄는 여성만을 피해자로 인정하고 강제추행죄는 남녀 모두를 피해자로 인정하는 점에 비춰보면 대법원은 성전환 수술을 한 피해자를 여성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했어도 여성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시대 변화에 따라 입장이 달라질 가능성도 열어 놓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사람의 성은 생물학적인 요소와 정신적·사회적 요소를 모두 고려해 최종적으로는 사회 통념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이 지난 2006년 6월,대법원은 마침내 사회 통념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사회 통념에 따라 성전환자의 호적상 성별 정정을 허용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성전환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의견도 여전히 존재한다. 기독교 불교 등 종교계는 이번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남녀 성은 신이 내린 창조물의 결과로서 이를 부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손지창과 이준기
1990년대 초반 젊은 여성들이 한 남자 연예인에 열광했다. 주인공은 손지창. 지금은 MBC 드라마 '주몽'에서 유화 역을 맡고 있는 탤런트 오연수의 남편 정도로만 기억되고 있지만 한때 그는 각종 CF는 물론 '느낌' '마지막 승부' 등 인기 드라마에 연이어 출연하며 젊은 여성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젊은 여성들과는 달리 그는 중년 여성들과 남성들로부터는 별 인기를 얻지 못했다. 요즘 말로 하면 '안티'였다. 문제는 그의 '곱상한' 외모 때문으로 남자라면 얼굴 생김새부터도 남자다워야 한다는 게 대다수 시청자들의 반응이었다.
10여년이 흐른 2006년 젊은 여성들이 다시 한 남자에 열광하고 있다. 주인공은 영화 '왕의 남자'에서 동성애 취향을 지닌 여성스러운 남자 공길 역을 연기한 신인 배우 이준기다. 그런데 이준기에 대해서는 별다른 안티가 생기지 않았다. 곱상하기로 할 것 같으면 손지창보다 한 수 위다. 게다가 그는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하는 동성애 코드까지 영화에서 표현했다.
○10년이면 남녀도 변한다
손지창보다 더 여자 같은 남자 이준기가 손지창보다 더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은 10년은 우리 사회에 '젠더(gender)'라는 새로운 성 개념이 등장한 10년과 대략 일치한다.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여성대회에서 처음 쓰인 '젠더'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관념,즉 사회적인 성을 의미하는 용어. 따라서 성 염색체(XX 또는 XY)로 결정짓는 생물학적 성을 가리키는 '섹스(sex)'와 구별지어진다. 젠더는 남녀 간의 차이를 타고난 것이 아닌 사회 구조와 관습 등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대등한 남녀 관계를 정립하자는 취지에서 도입한 용어였으나 성전환자 등 성적 소수자의 권리를 언급할 때도 쓰인다.
젠더 개념이 확산되면서 이제 여자 공군 조종사도 남자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익숙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됐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늘어난 반면,직장을 버리고 가정을 택한 '전업 남편'의 수도 꾸준히 늘고 있다.
손지창의 시대에 그 많던 안티가 이준기의 시대에는 사라진 10년,젠더가 섹스를 대체하며 퍼져 나간 10년은 곧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와 남자가 되고 싶은 여자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가 바뀐 10년이다.
○종교계의 반대
우리 사회의 각종 법과 제도는 성이 고정불변이라는 전제 아래 만들어졌다. 따라서 성전환 수술을 받고 법적으로 성을 바꾸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여러 가지 혼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종교계는 이런 혼란을 우려하며 성전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인간의 성은 창조주의 영역이며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계의 입장이다. 따라서 사회 여론이나 시대 상황이 달라졌다고 해서 성 정정을 허용해줄 수는 없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동양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도 대법원의 이번 결정은 우려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동양철학에서는 남자는 양(陽)의 기운을,여자는 음(陰)의 기운을 각각 타고난 것으로 본다. 즉 남녀는 태어날 때부터 서로 다른 기운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 같은 음과 양의 구별은 남녀,선악(善惡),득실(得失),상하(上下) 등 모든 사회 질서의 근간이라고 보는 것이 동양철학의 입장이다.
이 같은 각계의 우려를 의식,대법원도 성 정정을 허가하면서 후속 입법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에 관한 절차적 규정을 담은 법을 신설하는 것이 이상적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며 "성전환자의 권리가 법적 안정성의 틀 안에서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루 속히 입법조치가 이루어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유승호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