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사회에서 통계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 중요성과 유용성을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

수많은 수치와 정보를 편리하고 적절한 형태로 요약해주는 통계는 국가나 회사의 중요한 정책결정에서부터 개인의 사적인 결정에 이르기까지 널리 이용된다.

이제 개인이나 조직이 올바르게 통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주어진 정보를 제대로 평가할 수도 없고,그로부터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도 어렵다.

한 나라가 얼마나 발전되었는가는 그 나라에서 만들어 내는 다양한 통계의 종류와 그 활용도에 의해서 판단할 수도 있다.

국민들의 수(數)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정도(識數:numeracy)가 과학화.정보화 시대에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文盲)과 더불어 수(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수문맹(數文盲:inumeracy)도 한 나라의 문명의 척도가 된 세상이다.


그러나 이처럼 유용한 통계에 대한 일반인의 신뢰는 높지 않은 것 같다. 일반인의 낮은 신뢰는 통계에 대한 많은 냉소적인 독설에서 입증이 된다. 통계와 관련된 독설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통계를 거짓말의 범주에 포함시킨 것이다.

"거짓말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거짓말,새빨간 거짓말,그리고 통계."

(There are three kinds of lies : lies, damn lies, and statistics)

세 가지 거짓말은 그 정도가 약한 것에서부터 심한 것으로 배열이 되어 있으므로 통계는 새빨간 거짓말보다 더한 거짓말로 표현돼 있다. 여기에서 통계란 통계 그 자체는 아니고 통계를 빙자한 숫자놀음을 말한다. 이 말을 누가 맨 처음 했을까? 전(前) 영국수상 디즈레일리(Disraeli)라는 설과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이라는 설이 있다. 드물기는 하지만 그 외에도 여러 다른 사람을 인용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작자미상(author unidentified)'이라고 인용한 책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처음의 두 사람을 각기 인용하고 있다.

"거짓말에는 세 가지가 있다. 보통 거짓말과 못된 거짓말,그리고 통계숫자다." 언젠가 디즈레일리 영국총리가 이렇게 말했다 한다 ….

(조선일보, 1993. 10. 8. 1면, 만물상 중 일부)

마크 트웨인은 거짓말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했다. "그냥 거짓말과 지독한 거짓말,그리고 통계."

(중앙일보, 1995. 8. 12. 5면, 분수대 중 일부)

우선 마크 트웨인은 이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이 아니다. 마크 트웨인의 자서전에 이 말이 나와 있어서 그가 한 말로 인용이 되곤 하지만 그 자서전을 꼼꼼히 읽어보면 마크 트웨인은 이 말이 디즈레일리가 한 말이라고 하면서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디즈레일리가 한 말일까? 유명인의 어록(語錄) 조사가인 존 비비(John Bibby)에 따르면 정작 디즈레일리의 전기(Disraeli and His Day by Sir William Fraser)의 어느 구석에도 이 말이 들어있지 않다고 한다. 따라서 디즈레일리도 주인공이 아닐 공산이 크다. 그럼 과연 누가 이 조크의 주인공일까? 아마도 어떤 상황을 간단하게 조크(joke)로서 풍자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말도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말일 것이다.

예를 들어 요즘의 남편을 이런 식으로 표현해 본다면,"남편에는 세 종류가 있다. 애처가,공처가,그리고 간 큰 남자가 그것이다."

러시아인들은 정치에 대한 불신이 높은지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고 한다. "거짓말에는 세 가지가 있다. 작은 거짓말과 큰 거짓말,그리고 정치다."

통계에 대한 독설로는 또 이런 말이 있다. "사람들은 마치 비틀거리는 술주정꾼이 가로등을 이용하듯이 통계를 이용한다." 앤드루 랭(Andrew Lang)의 말이다. 술 취한 사람들은 조명을 위해 서있는 가로등을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는데 이용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도 사실을 밝히기 위해 통계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통계를 이용한다는 의미다.

통계의 유용성과 중요도를 생각할 때 이러한 독설은 너무 냉소적인 듯 여겨진다. 통계의 사회에 대한 공헌을 고려한다면 통계는 이보다도 나은 대접을 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그동안 통계가 공정성을 잃고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조작.왜곡되어온 결과이므로 모두가 책임을 느껴야 한다.

복잡한 통계는 일반인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숫자놀음을 통한 사실의 왜곡이나 논리의 비약으로 자기의 주장을 합리화하려 한다면 통계에 대한 불신은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다음의 말들은 통계에 대한 불신이 통계 그 자체보다는 통계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짓말쟁이들은 숫자를 이용할 궁리를 한다. (Figures don't lie, but liars can figure)

통계로 무엇이든지 증명할 수 있다. 그러므로 통계는 그 어떤 것도 증명할 수 없다.

통계는 법정에서의 증인과 같다. 원고나 피고 어느 쪽을 위해서도 증언하도록 부를 수 있다.

숫자를 싫어하고 두려워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빨리 숫자와 친해지는,숫자를 좋아하는 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숫자를 두려워하고,숫자에 속게 되고 그래서 더욱 숫자를 싫어하게 되는 악순환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숫자와 친해지는 일은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그렇게 어려운 일이 결코 아니다. 숫자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수학자가 될 필요는 없으며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수많은 숫자들은 우리가 중학교 때까지 배운 수학의 지식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에 대한 안목을 높일 때 통계를 만드는 사람들은 합리적이고 타당한 방법으로 통계를 만들어 내고 통계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주관적인 왜곡 없이 원칙에 따른 정보제공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웰스(H G Wells)는 이런 말을 했다. "통계적인 사고는 언젠가 읽기나 쓰기와 마찬가지로 유능한 시민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 언젠가가 바로 오늘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과학의 바탕이 되는 수학공부에 오랫동안 많은 시간을 투자했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숫자에 두려움을 느끼는 수문맹인 사실은 불행한 일이다. 숫자화 사회 속에서 통계는 항상 우리들 가까이에 있을 것이다. 따라서 수문맹에서 벗어나 숫자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유능한 시민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폴록(J Pollock)은 이런 말을 했다. "새로운 언어는 우리가 그것을 정복하기 전까지는 골칫거리다. 그러나 통달하고 난 뒤에는 손 안에 쥔 커다란 힘이 된다."

전혀 새롭지도 않은 우리의 묵은 언어,숫자의 정복을 위해 이 칼럼을 썼다. 이 칼럼을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이 숫자놀음에 더 이상 속지 않고 숫자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커다란 힘(능력)을 손안에 쥘 수 있게 되길 바란다.

jhkim@knd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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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교수의 '재미있는 통계'는 이번 호로 막을 내립니다. 좋은 글을 써 주신 김 교수님과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