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하면 떠오르는 여성이 있다.

9년 동안 아르헨티나의 퍼스트 레이디였던 에바 페론(1919∼1952년)이다.

아르헨티나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배우를 꿈꿨던 에바는 24살 때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당대 실력자인 '통일 장교단'의 리더 후안 페론을 만난다.

당시 후안은 페론주의라는 새로운 기치를 걸고 정치적 입지를 다져가고 있었다.

페론주의는 산업의 국유화,외국 자본의 축출,노동자 위주의 사회정책 등을 핵심으로 한다.

에바와 후안이 동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후안에게는 정치적 시련이 닥친다.

반 페론주의자들이 정권을 획득한 뒤 그를 구금해버린 것.그러나 이 시련은 에바의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재능을 발현시킨다.

선동적이고 남을 설득할 줄 아는 그녀의 재능이 후안의 석방운동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에바는 후안을 위해 노동자들을 부추겨 총파업을 일으킨다.

파업 10일 만에 후안은 노동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풀려나 에바와 정식으로 결혼한다.

둘은 자신들의 인기를 포퓰리즘으로 이끌어 나갔다.

1946년 에바의 도움으로 대통령이 된 후안은 대중이 좋아할만한 정책을 내세우며 정권을 유지하려 했다.

페론 치세의 정치 상황은 겉으로는 노동자와 여성 등 약자를 위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속은 전혀 없었다.

페론 부부에게 반대하는 민주적인 비판세력은 모두 제거됐다.

그 결과 사회는 경직되고 페론과 군부를 중심으로 하는 독재가 이뤄졌다.

에바는 33살에 백혈병과 자궁암에 걸려 세상을 떠난다.